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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리기

산이여 오라

나도 나이가 들었나

by 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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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과 함께 온 취미가 하나 있는데 바로 등산이다.


등산과 러닝은 사실 떼려야 뗄 수 없는데,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산을 타는 트레일러닝에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게임을 해도 그렇지 않은가. 계속 맵이 바뀌고 새로운 도전과제가 추가돼야 게임을 계속할 맛이 난다. 러닝도 마찬가지다.


몇 년을 달리고 나서야 트레일러닝은 별로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긴 했지만, 여전히 10km 정도의 트레일 코스를 뛰는 건 좋아한다. 산을 오를 때면 평탄한 주로를 달릴 때와 다른 근육을 쓰게 된다. 그래서 뛰고난 뒤 평소와 다른 곳이 욱신거리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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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닝 대회엔 잘 나가지 않지만, 산에는 종종 가곤 한다. 집 근처 높지 않은 산은 약수터까지 혼자 슬슬 올라갔다 오기도 하고, 풍경 좋다는 산을 찾아 일부러 지인들과 여행을 가는 경우도 있다.


설악산, 북한산, 관악산 등 유명한 산들은 물론 사는 지역 근처의 산들도 여럿 섭렵했다. 정상까지 간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정상에 갈 컨디션이 아니라고 느껴지면 과감하게 중도에서 포기한 적도 한, 두 번 있었다. 포기하는 건 여전히 어렵지만 가끔씩은 해볼만하다.


산이 좋은 건 계절마다 풍경이 확 바뀐다는 점에 있다. 꽃이 피고 단풍이 들 때는 물론 바람과 냉기가 가득할 무렵엔 또 그맘때만 볼 수 있는 경치가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설악산이다. 아무래도 집에서 거리가 조금 있다 보니 산 근처에 숙소를 잡아 여행을 겸했는데, 그 경험이 색달랐다. 산이 바로 보이는 호텔이라 창문만 봐도 한폭의 그림 같았다. 특히 조식을 먹는 식당에서 봤던 푸르른 풍경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찍은 사진들은 보기만 해도 절로 공기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별도의 보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쨍한 색감이 미소를 짓게 한다. 경치 좋고 공기 좋은데 있다 보니 사진 속 내 표정도 순하고 좋다.


한창 달리기로 몸이 만들어져 있던 때에 설악산을 찾아서인지 등반 속도도 괜찮았다. 딱히 속도를 내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데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물론 등산의 백미는 하산 후 먹는 막걸리 한 잔 아닐까. 파전에 막걸리를 기울이고 있자니 이곳이 무릉도원이요 내가 바로 신선이었다. 속리산 등산 때는 내려와서 먹은 더덕구이 한상이 참 향긋하고 좋았다.

photo_2024-11-04_15-42-42.jpg 산에서 본 전쟁의 흔적

동네 봉재산을 갔을 때는 전쟁 때 썼던 참호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바로 집 근처에서 6.25 전쟁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외국 친구들이 놀러 오면 같이 산을 타며 이런저런 역사 이야기를 나눠도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에는 100대 명산이 있고, 꼭 100군데 안에 들지 못 했더라도 저마다의 개성과 이야기를 가진 산들이 많다. 제주도에 가면 오름엘 한 번 올라 보고, 공주나 계룡에 가면 그 유명한 계룡산에 가서 도대체 기운이 얼마나 좋은지를 한 번 느껴본다면 여행의 맛이 한층 더 살아날 것이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평지에서 벗어나 정상에 앉았을 때의 그 감성이란. 때론 내가 있던 곳에서 벗어났을 때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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