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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리기

우리는 왜 이럴까?

달릴 때는 당연히 누구나 힘들다

by 정진영

얼마 전 JTBC 마라톤에 나갔던 러너들과 뒤풀이를 했다. 아쉽게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 한 주자도 있었고 만족할만한 기록으로 기분 좋게 뒤풀이에 온 주자도 있었다.


워낙 큰 대회다 보니 뒤풀이 내내 JTBC 마라톤과 곧 있을 동아 마라톤 이야기가 오갔다. 이날 경기에 나가지 않았던 사람들도 응원단으로 주로 곳곳에 포진해 있던 터라 이야깃거리가 풍성했다.


한 사람은 뿌리는 파스와 레몬 등을 들고 주로에 있었는데, 몇몇 러너들이 다급하게 "파스!"를 외치면서 다가왔다고 했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풀마라톤을 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고. 그는 아직 풀마라톤 완주 전이다.


그런데 풀마라톤을 뛰었던 사람이라고 해서 42.195km가 손쉽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이날 막 마라톤을 마치고 온 사람들도 다들 힘든 고비를 넘겼다고 입을 모았다.


마라톤 참가비가 한두푼도 아니고 왜 수만원 돈을 내고 고통을 자처할까. 풀마라톤에 한 번 나가려면 몸을 만드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끝난 뒤에 몸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 역시 시간이 걸린다. 즉 하루 힘들고 마는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안 뛰어본 사람은 모른다. 내 두 다리로 42.195, 아니 1km라도 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가 뛰라고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안 하며 살 수 있는 그 긴 길을 왜 러너들은 뛰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좋아한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어쩌면 그 행위가 끝난 이후에 알게 되는 것일 수 있다. 달릴 때는 누구나 힘들다. 서브3 주자도 수십년간 달려온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러너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풀마라톤을 뛸 때마다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고 자신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야기하지 않았나.


다만 다 뛰고 났을 때 느끼는 화려한 감정은 무엇에 비견하기 어렵다. 일단 주어진 거리를 다 주파하고 나면 '이제 그만 뛰어도 된다'는 기쁨과 '힘들었지만 잘 달려왔다'는 안도감, 무언가 해낸 것 같다는 성취감이 버무려진 복합적인 무언가가 마음 속에 피어난다. 그런 감정이 차오를 때면 '역시 다시 달리고 싶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photo_2024-11-06_21-18-12.jpg 다 뛰고났을 때의 표정이 내가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걸 말해준다.

너무 과한 비유인가 싶지만, 피아니스트라고 해서 피아노를 치는 모든 순간이 좋겠는가. 운동선수가 운동하는 모든 순간을 즐기겠는가. 나는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독서나 퀴즈 풀기, 어떤 때는 게임조차 마찬가지다. 생각처럼 잘 되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는 전반적인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느꼈다면 그것을 '좋아하는 것'이라 명명한다.


살다가 어느 때는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상황이 나아지곤 있는 건가', '내가 발전하고 있는 건가', '똑바로 가고 있는 게 맞나', '계속 하는 게 맞는 건가' 오만 생각이 다 든다. 그럴 때 주어지는 옵션은 실상 별로 없다. 다시 눈을 뜨고 하루를 살아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달릴 때도 마찬가지다. 정말 힘들어서 주저 앉고 싶을 때 택할 수 있는 옵션은 딱 두 가지다. 계속 다리를 움직이거나 포기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면 갑자기 모든 게 심플해진다. 힘들게 꾸역꾸역 다음 발걸음을 내딛어 결승선에 도달하고 나면 그 모든 과정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수 없다.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달한 결승선이기에 더욱 스스로가 대견하다.


빠르게 큰다는 상추도 30일은 키워야 하고, 묵은지는 3년은 익혀야 하고, 대학 입시 시험을 치르기 전엔 12년이나 공부를 해야 하는데 풀코스 기준으로 8시간 정도인 마라톤은 꽤 보상이 빠른 미션인지 모른다. 이렇게 보면 안 달릴 이유가 없어 보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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