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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진영 Feb 20. 2021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씩씩하고 용감하게, 자유롭고 담담하게, 맑고 아름답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이 시詩는 내 삶의 지향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를 깨우쳐 준다.


[Daily Drawing] 반짝반짝 빛나는, 나의 삶은 매일매일이 새롭고 아름답다.


지금까지의 삶에 네 분의 스승님이 계신데, 그중의 두 분이 부처님과 법륜 스님이다. 불기 2554년 7월 11일,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계율을 지키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하며 법륜 스님께 '무애화 無碍華'라는 불명을 받았다. '장애가 없어, 거리낄 것이 없어, 빛나다'는 뜻이니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운 수행자로 살라고 당부하셨다.

“불명이란 부처의 이름을 뜻합니다. 한량없는 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부처님이 출현하셨어요. 팔만대장경에 그 이름이 기록된 부처님이 만 명이 계세요. 그 만 명 가운데 나와 인연이 있는 부처님이 있습니다. 인연이 있는 부처님의 이름을 따서 불명을 지어준 거예요. 또 내가 비록 지금은 중생이지만 오늘 이렇게 발심하면 미래세에 성불을 하게 될 테니 그때의 부처님 이름을 오늘 미리 받은 것입니다. 이름이 좋다 나쁘다 말하기도 합니다만, 불명에는 좋고 나쁜 게 없어요. 여러분이 받은 모든 불명은 다 팔만대장경에 나온 부처의 이름입니다.”  
_법륜스님의 법문 중, 정토회 www.jungho.org


나에게 불교는 할머니의 종교였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 '부처님 오신 날'이면 온 가족이 아빠의 고향에 있는 절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는 동생들과 함께 절 주변을 돌아다니며 싱아를 따 먹으며 놀던 기억이 있다. 종교를 강요하는 집안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종교를 갖지 않았으며, 대학 이후에는 무신론자로 살았다.


2009년 여름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쉬지 않고 달려온 직장 생활을 접고 잠시 숨을 고르던 시기, 몽골에 갈 기회가 생겼다. 그곳에서 한국 무당 한 분을 만났는데, 초면인 나에게 대뜸 "너는 불교와 인연이 깊은 아이이니, 절에 열심히 다니며 봉사하고 살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처음 맞는 휴식기를 어떻게 지낼까 하던 차, 마음공부 삼아, 철학 공부 삼아 불교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곳이 정토회 불교대학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는 듣기 싫어하는 고집쟁이 아내'였고, '에미 마음은 몰라주고, 바른 소리만 하는 큰 딸년'이며, '자기 일 하느라, 얼굴 보기 힘든 바쁜 친구'였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핑계로 정작 내 주변은 둘러보지 못하고 살았다.


법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불교대학, 깨달음의 장, 경전공부, 봉사활동, 명상수련, 인도 성지순례에 이르기까지. 불교공부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온갖 상을 스스로 만들어, 거기에 맞춰 나를 내세우고 상대방에 대해 옳다 그르다 판단하며 살아온 삶을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도와준 수많은 인연들,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도 헛된 것이 없음을 알게 되고,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별일 없이 사는 것에 감사하며, 수행자로 사는 것에 감사하며, 인연 따라 자유롭고 가벼운 삶, 스스로 주인 되는 오늘을 살 수 있는 힘을 배우게 되었다. 진정으로 나를 아끼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덕분에, 용감하게도, 지금 나는, 남편과 단 둘이, 이 낯선 땅,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다.




그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씩씩하고 용감하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담담하게.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맑고 아름답게.


한발 한발 내딛는 삶.


그래서 나의 삶은 매일매일이 새롭고 아름답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벗을 멀리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고매하고 총명한 친구와 사귀라

온갖 이로운 일을 알고 의혹을 떠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또는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처자도 부모도 재산도 곡식도

친척이나 모든 욕망까지도

다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한 맛도 적고 괴로움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로구나'

이와 같이 깨닫고

현자賢者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관感官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키라

번뇌에 휩쓸리지 말고

번뇌의 불에 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져버린 파리찻타나무처럼

재가자의 모든 표적을 버리고

출가하여 가사를 걸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러 가지 맛에

탐착하지 말고 요구하지도 말며

남을 양육하지도 말라

문전마다 밥을 빌고

어느 집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속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기고

온갖 번뇌를 없애 의지하지 않으며

애욕의 허물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에 경험했던

즐거움과 괴로움을 내던져버리고

또 쾌락과 우수를 떨쳐버리고

맑은 고요와 안식을 얻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 정진하여

몸과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앉아 선정禪定을 버리지 말고

모든 일에 항상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이 우환인지를 똑똑히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라

학문을 닦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를 분명히 알며

자제自制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 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들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적당한 때를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의 헤매임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벗을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벗은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Sutta-nipata>, 불교의 경전 중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경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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