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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진영 Mar 10. 2021

남편의 홈베이킹, 30일의 여정

어디로 가든 내가 같이 갈게.. 발효빵의 길이 험난하여도..


파운드케이크가 그렇게 만들기 쉽대.
밀가루, 버터, 설탕, 달걀이 각각 1파운드씩 들어가서 파운드케이크이래.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파운드케이크를 구워보겠다고 한다. 나는 뭐... 그러려니... 뭐든지 해 본다는 건 좋은 일이니깐. 성공하면 맛있는 거고, 망쳐도 뭐... 손해 볼 일은 없는 거니깐. 그렇게 남편이 베이킹을 시작했다.



남편의 일상에 파운드케이크가 들어왔다.


# 02/07/2021, 첫 번째 파운드케이크

집에 밀가루가 없어서 우선 동네 식료품점 '알디 ALDI'에서 밀가루를 사 왔다.

1파운드는 453.6그램. 네 가지의 재료가 1파운드씩 총 4 파운드면... 총 1,814.4그램.(헐! 그 칼로리는 다 어쩔?) 비록 믹스지만 케이크를 구워본 몇 번의 경험이 있어 1파운드씩이면 너무 많은 양일 테니 100그램씩만 넣자고 제안했다. 남편도 베이킹은 처음이라 나의 의견에 동의,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부엌에서 혼자 한참을 달그락달그락거리더니 반죽을 완성했다. 근데 이걸 어디에 넣어 굽지? 케이크 혹은 빵틀이 없으니, 무쇠 팬에 넣어 오븐에서 굽기로 했다. 남편 말로는 40분을 구우면 된다고... 한 25분쯤 지났을까? 고소함을 넘어선 탄내가 풍기기 시작했다. 순간, 아차차! 재료의 양이 줄었으니 분명 베이킹 시간도 줄텐데...  레시피를 믿는 남편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했고 결국 내가 오븐을 확인했다. 흑! 케이크이라 보기 어려운 비주얼... 급하게 오븐에서 꺼내 잠시 식혔다가 맛을 봤다. 탄내 나는 달콤한 쿠키 같은... 뭐 그런 느낌.

실패의 요인은 무엇인가? 우리는 첫 작품에 대한 품평회를 가졌다. 반죽의 양에 비해 너무나 큰 팬을 사용했다는 점, 무쇠 팬의 특성상 오븐에서 가열된 열기로 팬의 온도가 사정없이 올라갈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한마디로 베이킹을 위한 도구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 베이킹 장비 쇼핑을 위해 '타겟 Target'(식료품 및 생활용품을 파는 마켓)으로 향했다.

케이크 틀을 쇼핑하면서 아... 오븐에 넣을 수 있는 유리그릇을 틀로 사용하면 된다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었다. 유리와 사기그릇을 사랑하는 나인지라, 우리 집엔 유리그릇과 사기그릇이 제법 갖춰져 있는데 한 번도 그것들을 오븐에 넣어 사용 가능한지 살펴보지 않았다.

쇼핑이 생각 외로 가볍게 끝날 수 있겠단 생각을 하는데, 남편은 어느새 핸드믹서 쇼핑에 정신이 팔린 듯.... 베이킹을 위해 핸드믹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나는 "믹서는 비타믹스 Vitamix. 좋은 거 사."라고 한마디. 결국 남편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려 150불 가까이하는 비타믹스 핸드블랜더를 질렀다. 왠지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이 느낌은 뭐지?


# 02/08/2021, 두 번째 파운드케이크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남편의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다. 오븐에 사용할 수 있는 유리그릇을 틀로 사용하고, 미니오븐을 이용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어메이징 한 파운드케이크의 탄생. 솔직히 말하면... 밀가루 끊은 지 180여 일째인데... 어쩔 수 없다, 이 남자의 정성을 내가 어찌 맛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편은 핸드블랜더가 도착하는 내일을 고대하고 있다.


# 02/09/2021, 세 번째 파운드케이크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블랜더 왔음'.  그리고 한참 후에 날아온 사진은 속이 텅 빈, 마치 모자같이 생긴 그.. 어떤 것. 사실, 처음 봤을 땐 뭔지도 몰랐다. 집에 왔더니, 사진 봤냐며... 망했다며... 남편은 반죽을 블랜더로 너무 많이 돌린 것이 실패의 원인 같다고. 큰돈을 들여 투자한 블랜더였지만, 블랜더의 형태가 베이킹에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허허허. 그냥 웃지요. (내 돈으로 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파운드케이크 굽기 2-3주 차,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다.


#02/14/2021, 네 번째 파운드케이크 on 밸런타인데이

지난주 남편이 출근하지 않는 3일 간, 어찌 되었든 파운드케이크를 맛볼 수 있었다. 이후 4일 동안 안 먹었더니, 파운드케이크 생각이 간절하다. 오늘은 남편이 쉬는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파운드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우와.. 이럴 수 있는 거임? 인생 케이크 같은 느낌. 밸런타인데이임을 서로 의식하지 않았을 텐데(우리 부부는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같은 것을 챙겨본 적이 없다) 결과적으로 밸런타인데이에 최고로 달달구리  사랑을 받은 느낌? 케이크 굽는 남자가  로맨틱하다. 고마워 남편.


#02/15/2021, 다섯 번째 파운드케이크 with 코코아 파우더

오늘의 파운드케이크는 색이 예술이다. 집에 있는 코코아 파우더를 섞어 보았다고 한다. 케이크의 양은 여전히 각각의 재료를 100그램씩 유지하고 있다. 커피 한잔에, 둘이 나눠먹기 딱 좋은 양이다.

이쯤 되니, 칼로리가 어느 정도 일지 궁금하긴 하다. 남편이 쓰는 재료에 표기된 칼로리를 확인해 보았다. 밀가루가 30g에 110 칼로리, 버터가 14g에 100 칼로리, 설탕이 4g에 15 칼로리, 달걀 1개가 60g 정도인데 80 칼로리. 각 재료가 각각 100g 일 경우로 환산을 해보니, 음... 총량이 1,591 칼로리다. 남편과 내가 반반씩 먹으니, 앉은자리에서 800 칼로리씩... 30-49세 하루 에너지 필요 추정량이 남자는 2,400 칼로리, 여자는 1,900 칼로리라고 하는데 (한국영양학회 자료 기준) 흠. 거뜬하게 한 끼의 칼로리 량을 뛰어넘는구나. 맛있게 먹고 좀 더 움직이고, 다른 먹거리를 줄이자고 다짐한다. 파운드케이크는 나의 다이어트 인생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아참, 그리고 남편은 보다 정교한 레시피를 시전 하기 위해 전자저울, 밀대를 써야 하는 빵에 도전하기 위해 밀대를 구입했다. 그리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한 끝에, 160 여불 상당의 스탠드 믹서를 주문하였다. 그의 제과제빵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02/16/2021, 여섯 번째 파운드케이크 with 초코칩&우유

케이크를 나누며 항상 품평회를 한다. 오늘은 초코칩과 우유를 소량 넣어보았다고 한다. 케이크를 잘라보니, 초코칩이 케이크 아래쪽으로 전부 가라앉아있다. 왜 그렇지? 맛이야 뭐, 끝내주지.


#02/21/2021, 일곱 번째 파운드케이크 with 크랜베리&씨앗들

케이크가 화려해지고 있다. 주로 샐러드에 얹어 먹는 말린 크랜베리와 해바라기씨, 호박씨 등등의 견과류를 올려 케이크의 폭신한 맛에 씹는 재미를 추가했다. 남편의 파운드케이크에 대한 열정은 하늘을 찌른다.


#02/22/2021, 여덟 번째 파운드케이크 on 18주년 결혼기념일

지난주 밸런타인데이에 이어, 오늘은 우리의 열여덟 번째 결혼기념일. 그의 파운드케이크는 계속된다. 어제 만든 레시피(크랜베리와 씨앗류의 견과류)에 시나몬 파우더를 추가했다. 우와, 맛있다, 맛있어. 매일 조금씩 다른 파운드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야. 케이크는 조금 특별하다 싶은 날 먹는 것이었는데, 매일매일이 조금씩 색다르고 특별하단 느낌? 결혼 생활 18년 차, 새로운 느낌의 즐거움이다. 아이고, 좋아라!


#02/23/2021, 아홉 번째 파운드케이크 with 레몬 제스트&퍼피 시드

파운드케이크를 구운 날이면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물론 내가. 남편의 친구들은 가끔 댓글을 남기는데, 그중 한 친구가 레몬 제스트와 퍼피 시드를 넣어보라고. 도전! 레몬 제스트는 레몬을 깨끗하게 씻어 필러로 노란색 부분의 껍질만 벗겨 낸 후, 그 껍질을 다져서 케이크 반죽에 넣어 향을 첨가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물어봤다, 레몬 제스트 알아? 놀랍게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한다. 흠.. 믿을 수 있겠어. 사실 남편은 세계적인 셰프 고든 램지의 모든 프로그램을 섭렵했다. 요리도 하지 않으면서 저 프로그램을 왜 저렇게 열심히 볼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 효과가 이렇게 나타나나 싶어 믿음이 갔다  

우와, 케이크가 익어가는 냄새가, 냄새가.. 이렇게 강력할 수가 없다. 레몬향이 부엌 전체를 감싸는데... 향이 이 정도니, 맛은 과연 어떨까? 기대감이 급 상승한다. 그동안 구운 케이크와 비슷하게 오븐 온도와 시간을 설정하고, 케이크가 완성되기만을 기다렸다. 40분이 지난 후 케이크를 오븐에서 꺼냈는데, 뭔가 다르다. 수분이 너무 많아서 뭉쳐지지 않은, 덜 익은 느낌? 결국 다시 오븐에 넣었다. 오븐 안을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글지글하며 뭔가가 끓는 소리가 들린다. 케이크 익는 소리가 이랬던가...??

남편은 레몬을 씻은 후, 한 개를 통째로 비타믹스 블랜더로 갈았다고 한다. 으흠? 오케이. 그러니깐 레몬 제스트라기보다는, 껍질을 포함해서 간 레몬이 하나 전부 다 들어갔다는 이야기. 아무튼 이렇게 저렇게 수습을 해서 남편의 아홉 번째 파운드케이크를 맛보았다. 씁쓰름과 쌉싸름 어디쯤의 레몬맛, 좋다는 거다. 세상에서 맛보기 힘든 매우 유니크한 레몬맛, 내가 레몬을 무지하게 좋아했으니 망정이지... 하하하.. 맛있다, 남편.



장비 빨을 세우는 것, 베이킹에 득인가 독인가?


#02/24/2021, 열 번째 파운드케이크 by 스탠드 믹서

역시나, 일을 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문자 한 통과 사진이 날아왔다. 스탠드 믹서 앞에 파운드케이크가 예쁘게 놓여있다. 반죽에 들어가는 시간과 힘, 그리고 버려지는 반죽의 양을 급격히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이젠 매일 파운드케이크를 구울 수 있다고 좋아라 하는 남편. 오늘의 파운드케이크에는 특별히 바닐라 엑스트랙이 들어갔다고 한다. (니돈니산, 스탠드 믹서. 열심히 쓰길 바래.)

집에 가서 갓 구운 파운드케이크에 커피 한잔을 할 생각을 하니 빨리 일을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케이크를 좋아했던가.


#02/25/2021, 열한 번째 베이킹; 벽돌을 구웠다.

이쯤 해서, 나는 남편의 베이킹 열정에 색다른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식빵이나 사워도우 Sourdough 빵 같은, 발효된 빵이 먹고 싶다고. 베이킹을 위한 본격 장비도 갖추었으니, 도전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집안 가득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오늘은 뭘까? 식탁 위를 살펴보니... 웬 벽돌 한 장이 똬악!! 그런데 이 벽돌, 엄청 질긴데 고소하고 담백하다. 나니깐 먹어준다는 생각도... 하하하. 베이커 팀강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정하고도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 것인가? 베이커 팀강을 응원합니다!  다 포기하지 마~ 또 다른 모습에~~


#02/26/2021, 열두 번째 베이킹; 다시 파운드케이크 with 레몬 제스트, 퍼피 시드&이스트

벽돌 한 장이 준 충격파가 제법 컸을 텐데,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마켓에서 베이킹을 위한 장을 봐왔다. 우선 레몬 제스트가 들어간 파운드케이크를 다시 만들어보기 위해 레몬을 하나 사 왔다. 벽돌에 대한 자체 분석으로 어제 반죽에 들어간 이스트가 순수한 이스트가 아니었다며, 순수한 이스트도 한봉 사 왔다. 뭐든 좋아.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파운드케이크는 아주 익숙하게 만드는 듯. 그런데 이스트가 들어갔다고 하는데, 더 단단한 느낌은 왜 그럴까?



남편의 베이킹은 어디로 가는 중일까?


#02/28/2021, 열세 번째 베이킹; 소보루를 닮은.. 그 무엇

오늘도 식탁 위엔 무엇인가가 놓여있다. 남편은 언제부터인지 굽기만 하고, 나머지는 내 몫이 되었다. 케이크 커팅식을 하고, 사진을 찍고, 맛을 보고,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등등. 손바닥 크기만 한 이 녀석, 표면을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을까? 의도한 것인지, 우연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솔직히 우연이라고 생각한다.ㅋ) 맛은... 그냥 밀가루 맛. 그나마 밀가루는 유기농이라는 위안으로, 다이어터로서 밀가루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으려 애쓴다.


#03/01/2021, 열네 번째 베이킹; 구운 도넛

이스트를 넣어도 부풀지 않는 반죽. 이것이 남편의 고민인 듯. 뭐 그런 고민이야 베이커의 몫이고, 오늘도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한다. 겉은 바삭하면서 파운드케이크 같은 부드러운 촉감의, 겉바속촉의 도넛이 생각나는 오늘이다. 하지만 기름에 튀겨서는 안 된다, 다이어터의 규칙에 위배되는 레시피니깐. 남편은 투덜거리면서도 또 부탁하는 건 대부분 해주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유독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연신 투덜투덜, 궁시렁궁시렁. 도넛이 문제인가, 구운 도넛이 문제인가? 도넛이라는 것은 남편의 베이킹 카테고리에 없던 계획인데, 갑자기 툭 튀어나온 돌연변이 같은 녀석이었던 것일까? 결국 나는, 그런 남편의 행동을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뾰족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왜, 내가 베이킹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런 마음으로 할 거면 하지 마."

무엇을 하든, 그 행위를 하는 당사자의 마음이, 정성이, 태도가 그 행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데, 그렇게 투덜투덜 궁시렁궁시렁거리면, 그 음식이 어떻겠는가. 먹다가 체하지 않으면 다행일 거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그럼에도 도넛은 완성되었다. 도넛과 함께 남편은 메이플 시럽과 시나몬 파우더를 같이 내준다. 깨달았나? 사랑이라는 가장 중요한 재료가 모자라 달달함이 덜할 것이라는 걸? 나는 메이플 시럽 와 시나몬 파우더를 잔뜩 뿌려 먹었다.

그렇게 얻은 깨달음, 역시나 요구하지 말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그저 격려해주고 응원해주자. 잘하고 있어, 남편(왠지 남편 대신 '아들'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거 같다). 계속 도전!


#03/03/2021, 열다섯 번째 베이킹; 다시 달달구리 파운드케이크

달달구리 파운드케이크가 돌아왔다. 인근 유기농 마켓, 스프라우트 Sprout에서 산 유기농 코코아 파우더가 들어갔다고 한다. 파운드케이크 색이 어느 때보다 진하다. 음, 훌륭해, 훌륭해. 파운드케이크라서 맛있는 건지, 코코아 파우더가 들어가서 맛있는 건지, 남편의 사랑과 정성이 듬뿍 들어가서 맛있는 건지. 그렇지! 이 모든 것의 완벽한 하모니로 손을 뗄 수 없는 파운드케이크가 탄생한 것이다.


#03/04/2021, 열여섯 번째 베이킹; 새로운 치즈빵의 등장

오늘 베이킹의 냄새는 또 다르다, 비주얼도 매우 다르다. 표면은 페스츄리처럼 윤기가 자르르르 돈다. 남편을 베이킹의 세계로 인도한 스승께서 반죽을 하지 않는 치즈빵 레시피를 하사하셨다고. 이건 제과점에서 사 먹을 법한 치즈빵. 아쉽게도 빵이 좀 질기긴 하다. 좋게 표현하자면 쫀득쫀득? 무늬는 빵, 실제는 떡에 가까운 수준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 텐데 말이다.


#03/06/2021, 열일곱 번째 베이킹; 식빵(이라 쓰고, 떡이라 읽겠다)

다시 발효에 도전! 누구보다도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는 남편이 마음에 든다. 폭신하게 부풀어서 나와야 할 식빵인데, 떡이 나왔다는 자평. 나는 분명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떡 색깔이 갈색인 이유를 묻자, 남편은 우리가 사용하는 밀가루와 설탕의 특성 때문에 갈색이 나온다고. 굽자마자 먹어서 그런지, 맛은 담백한 것이 계속 당긴다. 지금은 맛있는데, 아마 내일이 되면 떡에서 돌로 변신해 있겠지?



어디로 가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03/07/2021,  열여덟 번째 베이킹; 치즈치즈치즈빵

3일 전에 구운 치즈빵의 업그레이드 버전, 처음의 치즈빵에 비해 치즈를 2배 이상 더 넣은 치즈치즈치즈빵이다. 체다치즈, 크림치즈, 모차렐라 치즈가 엄청나게 들어갔다. 보통은 빵, 케이크 굽는 과정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시간대가 맞아 보게 되었다. 베이킹 과정을 보며 내심 긴장, 저 칼로리를 다 어쩌나. 하하하. 열여섯 번째 치즈빵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양새. 남편은 계란옷도 위에 입혔는데, 부침개 같은 모양새가 나왔다는 자평. 그의 자평만 모아도 그가 만든 빵의 특성을 알 수 있을 듯. 모양새야 뭐 아쉽지만, 맛은 끝내준다. 당연하겠지, 치즈치즈치즈빵인데. 이 아이는 아껴서 아껴서 3일 동안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혹은 칼로리가 부담돼서.


#03/08/2021, 발효 실험

늦은 시간인데 부엌에서 무언가를 꼼지락꼼지락 거리는 남편, 뭐하냐는 물음에 발효 실험을 한다고 한다. 엄청나게 힘을 쏟아부으며 손반죽을 하더니, 동그란 밀가루 공을 만들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처음에는 뜨거운 물에 반죽을 올려놨다가, 반응이 없자 전기밥솥에 넣어본다. 1시간 후 반죽을 살펴봤으나 크기의 변화가 거의 없다. 반죽 과정에서 이스트가 죽어버린 건가? 이스트가 문제인지, 반죽 과정이 문제인지.. 도대체 문제가 무엇인지! 남편의 발효 실험을 보고 있다가,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로 한다. 친구인 '파티시에 강'에게 전화를 했다. 반죽이 매우 중요하다는 조언과 함께 그가 베이킹을 처음 시작했을 때 바이블로 삼는 책을 받기로 했다. 남편은 베이킹을 하는데 공부를 해야 하는 거냐며 한숨을 쉰다. 응, 아마도.. 공부를 해야 할 거야.





30일 동안, 남편은 열두 번의 파운드케이크, 세 번의 발효빵, 두 번의 치즈빵, 그리고 한 번의 도넛을 구웠다. 남편의 소셜미디어에 어떤 이가 '요즘 제빵에 취미를'이라는 댓글에 남편은 '나름 마음을 다스리는데도 좋아서'라고 답한다. 어느 날인가는 나도 물었다, '일하고 오면 피곤할 텐데 또 구웠네?' 남편은 '베이킹은 안 힘들어'라고 한다. 나는 거의 매일 케이크와 빵을 먹었다. 나에게 밀가루는 금지식품인데, 남편의 케이크와 빵은 아주아주 행복하게 즐겼다. 그런 그가 첫 번째 허들 앞에 이르렀다. 선택은 그의 몫, 그가 어떻게 지나 갈지 나는 그저 지켜볼 참이다. 다만, 그가 어디로 가든 함께 가 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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