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기도가 통한 것일까? 모든 상황이 미나리를 돕고 있다는 느낌적 느낌
I Prayed! I Prayed!
내가 기도했어요! 내가 기도했어요!
"This one here, she's the reason I made this film. "
7살 딸과 함께 골든글로브 시상식 화면에 등장한 정이삭 감독은 이 아이가 영화 미나리를 만든 이유라며 딸을 꼭 껴안았다. 어찌 이리도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한 인터뷰에서 정이삭 감독은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으로 딸아이가 태어난 후 딸의 성장을 함께 하며 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자신이 딸의 나이 즈음에 느꼈던 것을 되새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적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각조각으로 꺼낸 기억이 80여 개 정도였다고. 트레일러로 된 집, 동네 교회, 할머니가 오고 난 후, 모든 것이 불타버린 농장, 그 와중에 남아있던 미나리밭 등. 어렸을 적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Moving Forward'에 대한 이야기를 딸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7살 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 딸을 위해 만든 영화가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Minari is about a family. It's a family trying to learn how to speak a language of its own. It goes deeper than any American language and any foreign language; it's a language of the heart."
정이삭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미나리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는 가족의 이야기"라 했다. "그 언어는 그 어떤 미국의 언어나 외국의 언어보다 깊은 마음의 언어”라고 한다.
내가 주변에서 목격한 미국 이민 1세대인 부모와 미국에서 태어나 자식들 이민 2세대 간에는 (물리적인) 언어만으로는 소통하기 어려운 세대 간의 차이가 크게 존재한다.
부모 세대는 모국어가 훨씬 편하며 언어, 문화, 사고방식 등 대부분의 것들에서 모국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반면 2세대들의 모국어는 영어다. 유치원과 학교를 다니며 영어로 의사소통하고 미국인으로서 교육을 받는다. 미국 사회와 문화 속에서 성장하며 미국인으로서 시각을 형성하게 되는데, 가정에서는 부모의 모국 문화와 사고방식 속에서 살게 된다. 여기서 정체성에 대한 충돌이 일어난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 이민가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남미, 유럽,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중동 등 모든 이민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 세대 간의 갈등으로 확장된다. 2세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정체성과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는데, 여기서 부모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부모가 어떻게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다양성을 존중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미국인으로, 유창한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세계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실제로 한국계 미국인인데 한국말을 잘 못하거나, 중국계 미국인인데 중국어를 잘 못하거나, 멕시코계 미국인인데 스페인어를 잘 못하는 경우 등 부모 세대의 모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민 2세대가 매우 많은데, 나는 이런 경우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돈을 내서라도 배우려고 하는 것이 언어인데, 달랑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들.
할머니에게 한국 냄새가 나서, 남자 트렁크 팬티를 입고, 욕도 잘하고, 보통 미국 할머니들처럼 쿠키도 굽지 않는다고 불평하던 손자 데이비드는 어느새 할머니에게 배운 화투를 친구에게 가르치며 어깨를 으쓱해하고, 함께 물가에 미나리를 심고 알아서 쑥쑥 크는 미나리를 지켜본다.
"데이빗아, 보이는 게 안 보이는 것보다 더 나은 거야. 숨어 있는 거가 더 위험하고 무서운 거란다." 라며 오랜 삶의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손자에게 일깨워주는 할머니. 그들은 하루하루를 함께 보내며 세대를 뛰어넘는다.
정이삭 감독이 말한 '그들 자신만의 언어', '마음의 언어'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한다.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의 가족문화에서 다분히 물리적으로 구분되는 부모의 언어와 자식의 언어, 이를 초월하는 가족의 언어, 마음의 언어는 그 가족만의 독특하고 특별하게 형성될 수 있는 문화와 가치관이 아닐까?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성별 감별사로 10년을 일하던 남편 제이콥은 '빅 가든'을 만들어 그가 그리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에서 가장 기름진 땅이라고 생각하는 아칸소로 이사한다.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머나먼 미국 땅으로 왔는데, 어찌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병아리 똥구멍만 바라볼 수 있겠으랴. 아내 모니카는 언제부터인지 그런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렵사리 남의 나라에 와서 사는 마당에, 직업을 따질 여력이 있겠는가? 이 놈의 촌구석까지 와서 고생을 사서 하기보단, 안정적인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제이콥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삶을 일궈나가는 가치관에 대한 차이를 보이는 이 부부의 갈등은 우리 부부의 상황을 보는 듯 격하게 공감이 갔다. 그런데 이런 삶이, 꼭 이민자들의 삶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어떻게 살든,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되고, 그렇게 앞으로 나가다가, 막다른 길을 만나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고는 다시 길을 찾아 앞으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한국의 대배우, 세상 쿨한 윤여정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정이삭 감독의 진심을 느껴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정한다. 스티븐 연은 작품의 주연 배우로 출연할 뿐만 아니라, 한국계 미국 이민 1.5세대로서 이야기에 공감하는 바가 커서 영화 제작에까지 참여한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미나리'는 미국 영화인들과 관객들에게도 큰 감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20년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공개돼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받은 미나리는 현재까지 미국 안팎에서 총 77관왕(2021. 3.1 기준) 수상 기록을 달성 중이다.
이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미나리는 무엇보다도, 영화 스토리와 주제가 갖고 있는 힘이 어마어마하다. 사실, 미국 원주민을 제외한 모든 미국인은 이민자들의 후손이다. 이민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어느 한 시점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띤다. 둘째로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7살 꼬마 주인공과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가진 할머니가 만드는 앙상블이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이다. 이 가족만의 언어는 손자와 할머니의 세대 차이를 어느새 훌쩍 뛰어넘는다. 또한 인종차별에 대한 시선조차도 아이의 호기심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아들 데이비드와 또래 백인 소년 조니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통해 다름에 대한 것을 배타적인 시각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아름답게 녹여낸다. 감독이 자신의 조국 미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딸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화이다.
2020년과 2021년,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세계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자가격리라는 표현을 초등학생도 알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나는 '미나리'가 그런 위로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삶은 지속되니까,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기쁨을 구한다. 삶에 ‘희망’이라는 빛이 보이지 않을 때... 정해진 답은 없다. 각자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 나선다.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땅을 바로 보고, 온 힘을 다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최선의 길이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지금, '반아시안 증오범죄'와 싸우고 있다. 2020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 Black lives matter MOVEMENT'에 이어, 2021년 '아시안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Asian lives matter MOVEMENT'가 일어나고 있다. 반아시안 증오 범죄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2003년 사스가 확산되었을 때도, 911 테러 사건 이후에도, 트럼트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발생한 범죄이다. 그런데 2020년에 들어서면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의 원인제공을 이유로 중국, 한국, 일본 등의 아시안계 미국인들, 특히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적 증오범죄와 폭력이 상당히 노골적이다.
차별, 혐오, 무시, 증오범죄에 대해 민감한 시대, 아카데미상(오스카)과 함께 미국의 가장 큰 영화상인 골든글로브상은 '미나리'를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로 올렸다. 결과적으로 '미나리'는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나, 골든글로브상의 '인종차별'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CNN은 오늘날 미국 가정에서는 350개 이상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며 외국 언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또한 인구조사 자료의 내용을 근거로 하여 '미국 인구의 20% 이상이 집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시대'에 우리가 갖고 있는 언어에 대한 편견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논란은 영화 '미나리'에 대한 정체성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정이삭 감독과 스티븐 연은 미국 영화인지, 한국영화인지를 구분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이러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일이라고 말한다. 과연 오스카는 어떤 행보를 보여줄 것인가가 나의 관심사이자 세간의 관심사인 듯.
'미나리'를 '기생충'의 연장선 상에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미국에서 '기생충' 덕에 '미나리'가 흥하는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미국 사회 내에서 한국 영화, 한국 음악, 한국 문화, 한국 사람에 대한 관심은 기생충(과 BTS)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리'와 '기생충'은 전혀 다른 태생의 영화다.
'기생충'이 핏빛 낭자한 스릴러이자 냉소로 가득 찬 블랙코미디라면, '미나리'는 너무나 따뜻한 시선으로 점철된, 잔잔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가족드라마이다. '기생충'이 한국사회의 맥락을 기본 뼈대로 삼고 있음과 동시에 빈부격차로부터 오는 삶의 방식으로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 영화라면, '미나리'는 미국 사회의 맥락을 기본 뼈대고 삼고 있으며 가족 간,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에 대한 이야기로 모든 이들에게 아름답고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 영화다. 어쨌든 내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애정 하는 두 영화가 세계인의 집중을 받고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 신나는 일이다.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 미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