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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프로 마치 Jan 15. 2019

13. 아프리카에도 빛나는 역사가 있었다

2018년 8월 10일 ~ 16일

AFP / 토요일, 베냉에는식민 시대 전 다호메니 왕국의 통치자 후손 다흐  데드잘라그니 아골리-아그보(Dah Dedjalagni Agoli-Agbo) 장례식에 문상객이 모였다



-아프리카마치의 단상-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에 위치한 베냉의 옛 이름 다호메니 왕국을 접한 순간, 아프리카의 역사와 우리의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사실 아프리카 역사라고 하면 기껏해야 노예무역, 식민지배, 독재정치라는 부정적인 단어들만 떠오르고 좋은 것은 전혀 생각나질 않는다. 그보다 앞선 역사, 이른바 고대, 중세 역사는 깜깜한 빈 공간, 아예 없는 것으로 느껴질 뿐이다. 솔직히 나는 아프리카에 역사가 있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더 신랄하게 말하자면, 아프리카 공부를 하기 전까지 그곳은 내게 미개하고 열등하고 무가치한 대륙, 위험하고 가난하고 고통으로 신음하는 곳, 생각으로도 떠올리기 싫은 곳, 그곳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인 곳이었다.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배척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 서구세계가 투영하는 아프리카가 나도 모르게 내면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가서 살아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아프리카를 서구인들이 만든 방송, 영화, 소설 등을 통해서야 겨우 만나볼 수 있다. 아프리카를 식민 통치하고 노예무역을 감행한 이들, 자신을 아프리카의 통치자이자 주인이라 믿으며 아프리카인들을 피지배자, 노예로 취급했던 이들의 후손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부지불식간에 서구인의 시선을 답습한 우리는 아프리카를 우리보다 열등한 곳, 자기만의 역사가 없는 미개한 곳으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나 헤겔 같은 서구의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에는 역사가 없다’, ‘아프리카는 세계사에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고, 이는 아프리카를 타자화하고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 데 충실한 근거가 되었다. 미개한 아프리카의 사람들을 차별하고 학대해도 된다는 논리의 바탕이 된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자치(自治)의 역사와 문명 발전의 역사가 있었다. 서구인들이 아프리카를 ‘강제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곳으로서 이 세상에 드러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프리카에도 막강한 통치체제와 건실한 경제체제를 갖추고 흥망성쇠를 거듭했던 고대 왕국과 중세 왕국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표적인 국가들로 서아프리카에서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번창했던 가나 제국, 13세기부터 14세기의 말리 제국, 15세기부터 17세기의 송가이  제국, 그리고  사진 속 주인공으로 15세기부터 19세기(정확히는 1904년)까지  존재했던 다호메이 왕국*이 있다. 한편 동아프리카에서는 도시국가들이 발전하면서 스와힐리 문명이 태동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아프리카의 왕국들은 사하라 횡단 교역로를 통해 유럽과 동등한 위치에서 황금, 소금, 노예(시민권과 재산권을 가진 당시 노예들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노예와 전혀 달랐다) 등을 교역하고 문물을 교환하면서 문명을 꽃피웠고,  동아프리카의 도시국가들 역시 인도양 무역로를 통해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과 활발히 교역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이렇게 아프리카는 세계사의 중심에 당당히 존재했다. 우리가 아프리카를 우리보다 열등하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아프리카에 잘못이 있다면, 아프리카의 풍요로움을 질시하여 침략과 찬탈을 감행했던 영악한 서구인들에게 무력하게도 모든 것을 내줘버린 것일 테다. 안타깝게도 그런 현상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이미 아프리카의 천연자원 대부분은 외세의 손에 들어갔다. 아프리카 발전이라는 미명으로 시작된 원조는 아프리카로 하여금 서구를 비롯한 원조 국가들의 눈치를 살피게 만들었다. 심지어 원조금은 국가 발전을 위해 쓰이지 않고 위정자들의 주머니에 들어가기 일쑤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는 여전히 피식민 상태다.  


아프리카인들은 자신이 세계사의 당당한 주역이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을까? 아니, 오랜 식민지배와 식민교육의 여파로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자신을 부정하고 뭘 해도 안 된다는 패배감에 빠져 무력하게 지낸다면 그 어떤 것도 되찾지 못하고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감히 아프리카인들에게 하고 있지만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와 관련해서 너무 오랫동안 슬픈 이야기, 슬픈 장면들만 접해왔다. 그래서 아프리카가 세계사의 주역으로 굳건하게 다시 서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내 마음은 간절하기만 하다.
 
  

*다호메이는 1894년부터는 프랑스령 다호메이로, 독립을 한 1960년부터 다호메이 공화국으로 불렸다가, 1975년에 베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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