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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Oct 10. 2023

'있는 그대로 날 사랑해줘'라니?

수련회에서 가장 먼저 일어났던 아이에 대한 생각 변화

중고등학교 때 수련회를 가면 꼭 기상시간보다 1~2시간 일찍 일어나는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가 바뀌고 반이 바뀌어도 비슷한 부류의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기상 시간에 맞춰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 미적대던 아이로, 1~2시간 먼저 일어나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굳이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고 생각했다.


보통 1~2시간 먼저 일어나는 아이들은 북적대는 화장실이 싫어 먼저 혼자 씻고, 고데기 등을 챙겨 와 머리를 만지곤 했다. 나는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이빨만 닦고 머리를 질끈 묶고 아침을 먹은 후 자유시간에 이후 씻고 꾸미는 편을 택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자신을 꾸며대지?’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반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나를 꾸미는 것에 관심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옷을 좋아했지만 화장을 하거나 고데기를 풍성하게 넣은 머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연스러운’ 멋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나는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자신을 꾸미고 지어내는(?) 사람에게 반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회사에 다니면서 9시에 출근을 하는데도 ‘풀세팅’이 된 사람을 보고 ‘대단하다’고 느끼는 편이다.


나는 9시에 맞춰 사무실에 들어오기도 헐레벌떡하는데 어떤 이들은 출근 시간보다 훨씬 먼저 일어나 씻고 머리를 말리고 머리에 또 고데기를 하고 옷도 정성 들여 입었던 것이다. 아마 이 부류는 중고등학생 때 수련회에서 기상시간보다 1~2시간 일어났던 아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꼭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억지로 일어나는 게 아닌, 자신이 필요한 시간에 일어날 줄 아는 사람은 다 멋있다.


꼭 외모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깔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나 열정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나 그런 많은 종류의 꾸밈 모두를 포함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렸을 적엔 자신을 너무 꾸며내거나 지어내는 사람에 반감을 느꼈지만, 지금은 가족관계에서조차 일정 부분의 꾸며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꼭 외모뿐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에 대해 신경 쓰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멋지다는 것이다.      


내가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부류 중 하나가 ‘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아?’라면서 명백한 단점을 보완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단점을 보완하지 못하는 게으름 정도는 나 역시 똑같으니깐 당연히 이해하지만, 그것을 왜 사랑하지 못하냐며 적반하장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런 내 생각을 깨달은 계기가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는 길고 길었던 취업준비생 시절 면접을 준비하던 시기다.


당시 나는 어떤 근거 없는 자신감에 취해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 좋아할 회사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근거 없는 자신감을 넘어 오만하고 게으른 생각일 뿐이었다. 그다지 뛰어난 것도 없으면서 그딴 식으로 생각하니 그렇게 취업 기간이 길어졌던 것일 테다.     


이언 레슬리의 책 ‘타고난 거짓말쟁이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식물도 속임수를 쓴다. 북아프리카의 거울난은 잠재적인 수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작은 꽃들을 피운다. 이 꽃에는 꿀이 없지만 거울난은 조심성 없는 것들을 유혹하는 특별한 계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을 수분시켜 주는 말벌종의 암컷 흉내다. 꽃의 푸르스름한 보랏빛 중심부가 마치 쉬고 있는 말벌 암컷의 날개를 닮았다. 길고 수북한 빨간 털은 이 곤충의 배에 난 털과 비슷하다. 그게 미끼다. 흥분한 말벌 수컷을 위한 곤충판 포르노인 것이다.     


생존을 위해 거짓말은 필수이고, 이것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두가 행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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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도 인생의 수많은 순간 갈림길에서 핵심은 얼마나 ‘잘 지어내느냐’다.


사실 인생의 수많은 결정들의 이유는 별다른 게 없다. 당신은 왜 OO가 되고 싶나요? 왜 그렇게 살고 싶나요? 왜 그를 사랑하나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들은 대부분 제대로 대답되지 않는다. ‘그냥.’ ‘살다 보니.’ ‘모르겠어.’ 많은 이들이 할 수 있는 솔직한 대답이다.


취업 준비에서도 대부분 ‘왜 이 회사를 선택했나요?’라는 질문에 ‘돈 벌고 싶어서’ 정도가 가장 솔직한 대답일 거다. 면접장에서, 상견례 자리에서, 사랑하는 이의 얼굴 앞에서 ‘그냥’ 따위의 대답을 하는 건 환영받기 어렵다. 환영은커녕 탈락과 실망감만이 남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지어내야만 한다. 잘 지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책을 읽고, 남들과 토론하여 잘 지어낸 답을 만들어낸다. 그 답을 노트에 적는다. 프린트를 한다. 질문을 하는 자 앞에서 또박또박 말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한다. 그들 앞에 선다. 평가를 받는다.      


삶은 이러한 것들의 연속이다. 이 일련의 과정들을 누가 더 치열하게, 많은 시간 매달렸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거의 2년에 달하던 나의 취업 준비 기간을 끝낸 그 면접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나의 백수생활을 보다 못한 엄마가 면접 이틀 전부터 ‘자신을 면접관으로 생각하라’며 연습을 시켜댄 덕이다. 사실 우리 엄마는 그다지 나의 선택이나 인생(?)에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그 면접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지 이틀 전부터 ‘연극’에 참여해 주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먹고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루하루 좋은 거짓말 -꾸밈-을 지어내고 그것을 남들에게 자신의 모습임을 믿게 만들기 위해 애쓴다.


이 과정은 남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스스로 좋아하고 싶은 나의 발버둥이다. 이언 레슬리의 말처럼 인간은 후천적 거짓말쟁이다. 그것도 아주 고단한 과정을 거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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