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민경 Sep 06. 2023

그놈의 '성장' 타령에 대한 고찰

사람이 나무도 아닌데

*참고로 나 역시 성장 갈망형 인간이다.


나를 포함해 요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돈' 아니면 '성장'이 아닐까 싶다. 자산을 키우는 일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커리어에서의 성장, 내면적인 성장 등 많은 이들은 온갖 종류의 성장을 원한다. 육아를 하면서 다른 사람의 육아에세이도 많이 읽게 되는데, 꼭 빠지지 않는 것이 육아를 하면서 어른인 자신이 '성장'한다는 서사다. 그만큼 성장이라는 키워드는 이곳저곳에서 인기가 있다.


여기저기서 '성장'이라는 단어가 넘쳐나다 보니 성장에 대한 반감이 들 법도 하다.


'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할까?'라는 질문부터 시작한다. 성장을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일까? 계속해서 성장을 해야지만 의미 있는 것일까?


'나무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성장을 멈추는데 인간이 어떻게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도 SNS에서 본 것 같다. 더 나아가 이런 '성장 강박'이 한국인의 DNA라며, 이런 강박이 결국 삶을 괴롭게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겠다. 최근 우울증 환자가 많은 이유도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자책하는 일종의 '성장 강박'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성장에 대한 갈망이 지나치면 스스로를 무리하게 운영할 뿐 아니라 성장을 원치 않거나 침체된 듯 보이는 타인에게 무례하게 굴기도 쉽다.


나무도 일정 기간이 되면 성장을 멈추는데..




물론 인간이 계속 성장만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계속 성장을 바랐다. 그렇기에 '왜 끊임없이 성장을 해야 할까. 그것이 가능할까'에 대해 고민을 했다. 이렇게 계속 성장을 갈망하는 내가 너무 속물인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연초에 사놓고 읽지 않다가 꺼내본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 실린 글들을 읽으며 인간의 '성장에 대한 갈망'은 당연한 것이며, 역시 긍정적인 것이라 다시 확신하게 됐다.


사실 이 책에서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관한 인사이트를 얻길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에리히 프롬은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성장'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고 있었다.



에리히 프롬은 책 초반에서 삶에 대한 사랑을 말하기 전 '삶'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이야기한다.


삶이란 항상 하나가 되고 완전해지려는 성향이 있다. 달리 표현하면 삶이란 어쩔 수 없이 성장과 변화의 과정이다. 성장과 변화가 멈추면 죽음이 닥친다. (25p)


이후 사랑에 대해선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랑은 항상 성장을 향한 적극적 관심을 담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의 생명력을 향한 관심을 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란 되는 과정, 하나 되고 온전하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생명력 넘치는 모든 것을 향한 사랑은 이런 성장을 촉진하고픈 열정적 욕망으로 표현된다. 앞에서도 말했듯 통제하고 폭력을 행사하고픈 욕망은 사랑의 본성에 위배되며 사랑의 발전과 실현을 방해한다. (36p)


그리곤 '삶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 대해 "진정으로 삶을 사랑한다"라고 말한다면 대부분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안다. 그 말을 들으면 우리는 성장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는 아이, 형태를 갖추어가는 아이디어, 한창 성장 중인 조직에 매력을 느끼는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돌이나 물처럼 생명이 없는 것조차 살아있는 것이다. (37p)


프롬의 생각이 이렇기에, 종종 '죽음에 대한 사랑'(파괴, 질병, 타락, 해체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는 '정신 질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까지 한다. 산업 시대에 인간이 살아가면서 삶과 사랑의 상징인 '과정'이 아니라 '성과'에만 몰두를 하는 것에도 우려를 표한다. 그러면서 과정보다 성과를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삶을 사랑하는 자세를 경험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자부심일 수 있는 기술 문명 등을 부정하라고 하진 않는다. 인간이 기술 문명의 주인이 되면 되지, 인간을 사물(수단)로 여기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라 글을 마무리한다.





프롬의 이 글을 읽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토록 '성장'을 바라는 것은 결국 살아있기에,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을 얻었다.


인간은 살아있기에, 당연히 생명력이 있는 것에 끌리고 그것은 곧 성장이라는 단어에 끌리는 이유였다. 인간이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읽기 전에는 끊임없이 성장을 하려는 나의 욕구가 속물적이진 않을까, 성장에 대한 갈망도 결국 강박이지 않을까, 성장하지 않는 것을 멀리하려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을 했었고, 이런 우려도 나름 일리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성장 강박'이란, 성장을 '과정'이 아닌 '성과'라는 말과 동일시할 때였다.


성과가 있어야만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이지, 내 삶에 있어 성장을 원하고 더 나아가길 원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종종 많은 이들이 원하는 특정한 개념 -부, 권력, 명예, 사랑, 성장 - 자체에 대해 반감을 드러낸다. 나 역시 자주 그래왔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이들이 갈망하는 욕망 그 자체가 아니다. '어떠한' 부인지, 어떠한 권력, 명예, 사랑, 성장인지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성장' 자체를 원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원하는 성장이 '어떤 성장'인지 짚어볼 필요는 있겠다고 고민을 마무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맨 앞줄의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