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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Nov 10. 2023

책이라는 도끼가 찍는 것

그건 바로 내 발등

보통 책을 읽을 때 드는 생각은 편안함과 안락함이다. 많은 이들도 독서라는 취미가 굉장히 정적이며 안락한 것이라 상상한다.


나 역시 그렇긴 하지만 종종 어떤 책을 읽으면 마음이 굉장히 불안해지고 ‘난 잘못 살고 있는 것인가?’부터 시작해 내 주변 모든 것이 잘못 풀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에겐 그런 책들이 몇 권 있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 인생을 다시 살아야 할 것 같고, 지금까지의 일들을 내가 다 망쳐버린 것 같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도 다 정리(?) 해야 할 것 같고 회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등등 의 조급함이 올라왔었다. 그래서 그 책들을 외면하기도 하고, 그런 책이나 저자에 반감을 가지는 것으로 감정을 풀기도 했다.

보통 독서의 경험은 안락하다…


이미 너무 유명해져 버린 말이지만 그래서 카프카는 책이 도끼라고 했었다. 그런데 책은 도끼라는 말에 대해 하나 더 얹고 싶은 생각이 있다.




책이 도끼라는 두 글이 있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1904년, 1월 카프카.
<책은 도끼다>, 박웅현, 129p


우리는 다만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책들을 읽어야 해. 만일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질로 두개골을 깨우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쓰는 식으로,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라고? 맙소사, 만약 책이라고는 전혀 없다면, 그 또한 우리는 정히 행복할 것.

그렇지만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을 주는 재앙 같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누군가의 죽음 같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숲 속으로 추방된 것 같은, 자살 같은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지. 책이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오스카 폴라크에게, 1904년 1월 27일 수요일.
<카프카의 편지 100선> 18p


두 글 모두 도끼가 등장하나 두 도끼는 다른 도끼다.


첫 번째 글에서 박웅현이 말하는 도끼는 위협적이지 않다. 오히려 꽁꽁 언 얼음을 단 한 번에 쩍 하고 깨버리는 상쾌함, 거기에 따라오는 행복까지 연상된다.


그러나 박웅현의 책이 인용한, 카프카의 글을 찾아보면 책이라는 ‘도끼’는 위협에 가깝다. 재앙 같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같은, 자살 같은 도끼. 널따란 바다에 표류해 작은 얼음조각에 의지해 버티고 있는 데, 그걸 깨버리는 도끼다. 행복감은커녕 불쾌와 불편함을 넘어 공포를 느낀다.




사실 누군들 도끼에 찍히고 싶을까. 스스로가 찍히기보다, 박웅현의 도끼처럼 수단으로써 도끼를 갈망할 것이다. 도끼에 찍힐 대상이 ‘나 자신’이길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이라는 도끼로 내가 깨뜨리고 싶은 ‘대상’을 찍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카프카가 말하는 나를 찍을 도끼,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것, 그것은 쉽게 만나기도 어렵고 말랑말랑하지도 않다. 이런 의미에서 임마누엘 칸트는 철학이 전쟁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전쟁에서 지든 이기든 그 이전의 삶과 같을 수 없고, 모두가 끔찍해지기 때문이다.


이제 카프카의 도끼 같은, 칸트의 전쟁 같은 책이나 인문학, 철학은 설 자리가 없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자기 계발에 좋고 인생을 '성장'시킬 책들이 쏟아질 때 도대체 누가 인생에 고뇌를 더하는 책을 선택하고 읽고 또 괴로워할까.


다만 많은 책들은 또 공통적으로 ‘고통 없이는 성장이 없다’고 말한다. 카프카는 그것을 알았기에 고통 같은 그러한 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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