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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Dec 05. 2023

육아 중 나를 살린 4가지

아기의 웃음 이런 거 아님

아기가 7개월이 되었다. 사실 아기의 6개월 전까지 나는 꽤 만족스러운 육아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만하게 '아니 이 정도면 한 명 더 낳아도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벌써 하고 있던 참이었다. 둘째 이야기를 하면 육아 선배들은 '아기가 2살 정도 됐을 때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 천천히 결정해 봐^^(그때는 이 웃음의 의미를 몰랐다)'라고 말했다.


당연히 힘들지 않고 즐겁기만 했다는 건 아니다. 그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아기가 순한 체질이었고, 나는 너무나 뼛속까지 집순이여서 출퇴근을 안 하고 집에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휴직한 시점이 일에 대한 권태기가 심했던 때라, 일에 대한 미련도 크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보다 즐거운 육아 생활이라고 여겼다.  


정말 힘들었던 때도 있었다. 아기가 30일 정도 됐을 때 정말 달래 지지 않아서 한번 울었고, 7개월이 되려고 하는 며칠 전 한 번 또 울었다. 아기가 아무리 순한 체질이라고 해도 육아의 힘듦은 정기적으로 찾아왔다.


육아를 하면서 눈물 쏙 빠지게 힘들 때, 그래도 나를 살린 몇 가지 요소가 있어 써보려고 한다. '아기의 웃음을 보면 피로가 싹 날아가더라' 이런 이야기는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


  



1. 육아휴직 급여와 부모수당 등등  

사실 나는 뉴스에서 '육아 휴직 급여를 얼마 올립니다', '아기 낳으면 ~를 줍니다'라는 소식이 들릴 때, 댓글에 굉장히 많이 달리는 '아니, 돈 달라는 게 아니라니까요?', '돈 준다고 아기 더 낳습니까?'라는 대다수의 반응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는 속물이다. 네, 전 돈 주는 게 좋아요.


물론 돈만 준다고 아기를 낳을 생각이란 건 당연히 아니다. 저런 반응이 나오는 이유도 당연히 알고 있다. 임신과 출산 때 휴직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는 기업 문화, 노동시간 자체를 줄이기, 재택근무 확대, 사교육 등 경쟁적이지 않은 사회 문화, 아빠들도 휴직을 내고 아기를 돌볼 수 있는 문화, 아기에게 친화적인 사회 등 당연히 우리 사회에 변화되어야 할 것이 많은 것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기를 낳으면 돈도 더 주고, 휴직 급여도 올려주고, 도우미 지원금도 더 주는 등 돈과 관련된 혜택도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기 키우기 어려운 문화도 바꿔야 하지만 돈도 더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왜 하나만 하면 문제가 풀릴 것이라 생각할까.


현재 진행 중인 정책이지만 육아 휴직 급여 상한선도 더 올리고, 첫 만남 지원금도 더 올리고, 휴직 기간도 더 늘리고, 도우미 지원금과 도우미 지원 기간도 더 늘리고 등등. 이러한 직접적인 혜택들이 더 늘어나야 문화도 함께 바뀔 것이다. 이런 직접적 혜택이 문화를 바꾸는 것 중 하나이기에 '누가 돈 더 달라고 했냐!'라는 반응에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돈이 흐르는 곳에 감정도 흐른다. 해당 부분에 돈을 풀다보면 저출생 문제가 정말 심각하고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로 더욱 와닿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실제로 내가 출산휴가 급여나 육아 휴직 급여를 받으면서 최소한의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는 육아휴직급여(상한선 150만 원이라고 하는데 35만 원은 복직 후 주는 시스템이라 월 115만 원 정도다)와 부모수당과 아동수당 80만 원을 합하면 약 200만 원 정도 되는데, 출산휴가 급여의 경우 100만 원 정도가 더 나와서 약 300만 원을 3~4달가량 받을 수 있다. 월급이 워낙 많았던 사람들은 적은 돈이겠지만, 다달이 생활비가 나오는 것은 힘든 육아 중 그나마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너무나 힘들 때 이 월급(?)을 떠올리면서 '그래, 난 내 아기를 돌보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내 생활비를 벌고 있다. 프로페셔널하게 대응하자'라고  생각하면서 아기의 짜증을 달랬다. 그래서 출산 휴가 급여도 더 늘리고, 육아휴직 기간과 급여 상한선도 대폭 늘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땡스 어랏


2. 배달팁 없는 중국집의 탕볶밥

좀 너무 빡빡한 이야기였나. 이제부턴 가벼운 이야기다.


우리 동네에는 배달팁이 없는 중국집들이 몇 개 있다. 사실 어쩌면 원래 중국집들은 배달팁이 없었다. 그런데 배달의 민족 이후 배달 문화는 배달팁이 당연한 것이 됐기에 배달팁이 없는 중국집이 희귀해졌다. '한 그릇도 배달해 드립니다'라고 적혀있는데 배달팁도 없다.


집밥 예찬론자인 나지만 가끔 육아를 하다 정말 '정신이 털렸다'라고 생각될 정도의 날이 오면 어김없이 이곳에서 '탕볶밥'을 주문한다. 이 탕볶밥은 가성비벌레(충이라는 말은 뭔가 너무 심한 거 같아서)인 나에게, 배달을 시켰다는 죄책감을 사라지게 한다.


왜냐면 11000원짜리 탕볶밥인데 탕수육 조금과 볶음밥, 볶음밥에 짜장소스가 나오고, 한 그릇만 시켜도 짬뽕 국물을 준다... 11000원에 4가지 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각박한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나.. 쓰면서도 감동적인 정도여서 누가 물어보면 그 가게 이름을 알려주고 싶다. 여하튼 그래서 '그래 이 정도면 배달시켜도 되지 않나?' 싶은 마음이 들고, 멘털이 털린 날 단골 메뉴가 됐다.


단돈 만천원에 네가지 맛을 볼 수 있는 구성


3. 전화영어

전화 영어가 내 육아 중 낙이라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머쓱하고, 마치 내가 영어를 매우 잘하는 것 같이 보여서 좀 그렇긴 하다.


그럼에도, 육아 중 전화영어를 하면 좋다. 하루종일 '음메메', '꾸룽~~?', '꾜료료료~' 같은 말을 하다가 다른 나라 언어긴 하지만 말이 통하는 '어른'과의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또 한편으로는 영어를 잘 못하는 내가, 전화영어를 통해서 아기에게 원어민의 대화를 들려줄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그램에 너무나 많이 나오는 '엄마표 영어'를 할 수 있는 능력도 안 되기에, 하루 20분이라도 원어민 선생님의 말을 들려줄 수 있고 내가 노는 느낌만 드는 것이 아니어서(?) 유용했다. 내 영어 실력이 조금 느는 것도 덤이다.




전화영어를 하면서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날이 있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전화 영어 회사의 시스템은 매일매일 그 시간에 상주하고 있는 선생님을 선택하는 '튜터' 시스템이다. 그래서 매일 선생님이 바뀌었다. 하루는 내 전화기 근처에서 아기가 소리 지르는 것을 들은 선생님이 자신 역시 어린 아기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나 역시 육아휴직 중이며 6개월 된 아기가 있다고 하니 깜짝 놀라면서 자기도 아기를 낳은 지 딱 6개월이 됐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 그녀는 필리핀. 우리는 정말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엄청난 동지애를 느꼈고, 그때부터 교과서를 신경 쓰지 않고 프리토킹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엄마가 아기를 같이 봐주고 있으며, 자신은 방에서 전화 영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아기를 봐주는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다니 부럽다고 말했다. 반면 그녀는 육아휴직 제도가 잘 되어있는 한국의 회사를 다니는 나를 부러워했다. 우리는 서로 부러워하면서 힘내자는 이야기를 나누며 통화를 끊었다.


그날 마치 굉장히 친근한 사랑과의 수다를 떤 것처럼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전화 영화 시간이었다. 그래서 가끔 친구와 만나지 못하지만 이야기가 하고 싶을 때 전화 영어를 한다.


4. 랩 음악 들으면서 래퍼에 빙의하기

네 번째는 음악 듣기다. 사실 아기와 함께 있다 보면 아기 장난감에서 나오는 동요들이 귀를 괴롭힌다. 멋쟁이 토마토와 날씬하다는 아기곰의 엄마와 아기 상어 가족들의 돌림 노래를 듣다 보면, 어른은 조금만 세련된 노래를 듣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풀리게 된다.


멘털이 털릴 것 같을 때 이때만큼은 '아기에게 이 노래가 어떤 영향을 미칠까' 따위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특히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을 들으면 흥은 더욱 돋워진다. 아기를 안고 내가 좋아하는 랩을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20~30분이 훌쩍 지나가고, 나의 스트레스 지수도 낮아져 있음을 느낀다.


물론 어디다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랩 실력도 향상되어 있다. 언젠가 노래방에 가서 열심히 연습한 나의 랩을 보여줄 날을 생각하면서 랩연습을 하면 시간이 잘 흘러간다.


게다가 전화 영어처럼 많은 육아서들은 아기에게 말을 많이, 엄마가 말을 많이 하면 좋다고 귀에 박히도록 이야기한다. 그래서 죄책감 없이 나는 랩 연습을 한다. 상호작용 없는 랩이지만 들어주겠니.


내가 최근에 하고 있는 랩은 개코의 '논해'다. 이 노래는 가사가 정말 철학책 맞먹는 수준이다. 특히 '재벌들은 논해 예술을, 예술가들은 논해 재물을. 난 매일 두 가지 다 저울질하는 꿈을 꾸며 비트 위에 올려 폐품을', 이 부분과 'Flex 차 시계 체인... 벌스 완성의 쾌감에 비할 수 없을 거야 가치는 Priceless'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마치 내가 아무리 글쓰기를 해도 그 어떤 돈을 벌 수는 없지만 글 완성의 쾌감은 'Priceless' 하다는 것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가 풀린다. 아기를 안고 둥실둥실 춤을 추면서 랩 연습을 하다 보면 아기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사실 더 뜯어보면 더 많은 요소들이 육아 중 재미로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은 쓰지 않기로 했지만 역시 아기의 성장과 웃음이 나를 살리는 첫 번째 요소라고 쓰면서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만 같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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