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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Mar 08. 2024

어린이집 입소, 엄마도 뻗었다

아기 낳고 겪은 3번의 번아웃, 번아웃 예고제인가요  

어린이집 입소 후 우는 건 아기뿐만이 아니었다


작년 3월부터 출산과 육아휴직에 들어갔으니 딱 1년이 지났다. 이제 복직은 3달 앞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꽤 긴 시간이 남아있는 것도 같지만 나에겐 너무나도 짧은 시간으로 느껴진다.


특히 이번주에는 첫돌을 앞둔 아기를 어린이집에 입소시키면서 아기도 나도 피곤한 한 주를 보냈다. 이번주에는 오전 10시에 등원을 해 30분은 아기와 함께, 30분은 떨어져 있는 적응 프로그램이었음에도 나는 허둥댔다. 아기가 일어났을 때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밥을 먹이고 치웠던 가정보육과는 달리 일단 10시까지 아침을 먹이고 씻기고 옷을 입히고 준비물을 챙겨 어린이집에 입소해야 하니 나의 아침은 출근하는 것처럼 바빠졌다. 게다가 입소가 처음이니 작성할 서류도 많았고 준비물들을 주문하고 이름표를 주문하거나 다는 일 등 잡다구리 한 일들에 치였다.


어린이집에 가게되면 곧 편해질 것이라는 생각만 가득했는데, 적응기간 한정이긴 하겠지만 가정보육만 할 때보다 더 바빠진 것이다.


적응기간이니 아기와 떨어져있는 시간은 30분 정도였고, 이후로는 울다지친 아기를 계속 달래야했다. 물론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하면 내 몸이 편해질 것을 아니 처음에만 좀 힘들면 되는 걸 알긴 한다. 그럼에도 어린이집에 다녀와 내리 뻗어 자는 아기만큼 나 역시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들먹일 정도로 혼이 빠졌다.


적어도 아기는 낮잠을 자고 나면 쌩쌩해졌으나, 나는 3월 4일 입소날부터 몸살감기에 걸려 수액을 맞고도 차도가 없었다. 아기를 낳고 3번 수액을 맞았는데 아기 100일쯤에 내가 더위 먹고, 아기 6개월에 이유식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받고, 11개월이 되어가는 요즘 어린이집 입소하면서다.


11개월이 다되어가는 아기.


이렇게 3개월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넉다운이 되니 3월 첫 주 고비를 넘기는 금요일 오늘, 3개월 후엔 무엇이 날 넉다운 시킬까 예상하게 된다.


답은 너무도 뻔하다. 3개월 후 나는 복직을 한다.


아, 어김없이 나는 3개월 후에 수액을 맞겠구나 싶다. (막 심각한 수액은 아니고 마이어스 칵테일 같은, 영양제 수액을 맞는다. 어렸을 적부터 장염과 감기몸살로 골골대던 나인데 20대 후반 수액을 맞고 컨디션이 많이 올라오는 걸 알고 나서는 조금 컨디션이 떨어졌다 싶으면 바로 마이어스 칵테일 마시러 간다.)


  



그래서 요즘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애 둘 이상 키우고 있으며, 일을 하면서, 운전도 할 줄 아는' 여성이다.


길 가다가 도 애 둘셋을 데리고 다니는 부부나 여성을 보면 '와 진짜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건 마치 내가 처음 운전을 배웠을 때 느꼈던 기분과도 같다.


처음 운전을 배웠을 때, 차도에서 달리는 차 안의 차주들이 모두 존경스러웠다. '아니 다들 이걸 어떻게 하는 거야?' 싶었다. 사실 아직도 초보운전자라 이 생각은 여전하다. 그런데 여기에 아기들까지 태우고 다니고, 더구나 일까지 하는 사람을 보면 '그동안 얼마나 이 세팅을 하기 위해 고생했을까' 싶으면서 존경심이 활활 타오른다.


자연스럽게 나의 3개월 후 모습을 생각하게 되는데 '과연 내가 잘 해날 수 있을까' 싶기만 하다. 벌써부터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싶은 마음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내를 강하게 키우는 남편을 만나,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을 것 같고 일단 복직을 해야 할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요즘 어린이집에서 만난 다른 선배 엄마들에게 계속 물어보고 다닌다. 특히 둘째 엄마들은 나의 인터뷰 대상이 된다. 아기 낳고 어떻게 복직을 했느냐, 단축근무는 어떻게 했느냐, 둘째 임신 기간은 또 어땠는지, 둘째 낳고는 어땠는지 등등 물어볼 것이 너무나 많다. 브런치북 등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선배 워킹맘들의 글들이다.


어린이집 다녀와서 뻗은 아기




다들 그러고 사는데 뭐가 그렇게 두렵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지금도 제대로 육아와 집안일을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까지 하게 되면 과연 어떻게 될지 단순하게 그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너무나도 바뀐 내 가치관 때문에 두렵기도 하다.


내가 너무 다른 사람이 됐는데, 이전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앞으로 무언갈 강하게 주장하거나, 비판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나의 주된 두려움이다.


20대 때, 처음 기자를 했을 때는 나의 생각이 너무나 극명했고 비판할 거리들이 널려있었다. 비판을 하고 나서 후처치(?)도 당당하게 쳐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보니 대부분 기자로서 사람을 만났던 과거와 달리 아기 엄마로서 사람들을 만나니 만나는 사람들의 풀이 너무나 달라졌다. 듣는 이야기도 너무나 다르고 드는 생각도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나의 직업, 부동산, 교육에 대한 생각들이 완전히 바뀌었다. 엄마가 된 후 일에 대해 바뀐 생각은 이전에 한 번 정리를 했었다.

https://brunch.co.kr/@after6min/144


돈이라는 안정성 위에서 더해진 가능성


부동산과 자산 축적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자산 축적에 대해 이전에는 내 기질상 가지는 반골 특성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가정을 꾸리고 아기를 낳고 보면 자산 축적을 부정적으로 보아서는 결코 자산을 모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자산을 모아야하는 환경에 처했다. 그랬기에 가정을 꾸리고, 특히 아기까지 낳아놓고도 자산 축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오히려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물론 자산을 만들지 못하는 것과, 자산 축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른 일이고 전자를 무책임하다고 비판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내 경우는 지금 시대에서는 상대적으로 일찍 결혼한 편이라 내 집 마련이 빨랐다. 내 집 마련 이후 바뀐 나의 인생관을 쓰려면 끝도 없겠지만 집 마련 이후 지금까지 내가 가진 꿈의 종류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이전에는 '글 쓰면서 근근이(?) 먹고살 수나 있었으면 좋겠네' 정도가 오랜 꿈이었다. 그렇기에 기자로, 직장인으로 사는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집 마련 이후 나는 '어쩌면 근근이 직장인으로만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같은 일말의 가능성이 더해졌다. 집이주는 안정감 위에서, 이제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인가 도모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더 변화하고 성장하길 원했고, 그때부터 아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돈이 가져다준 안정감은 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게 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준 선물들- 대표적으로 아기-는 나에게 너무나 큰 행복함을 주었다.


방어적인 내 성격이 조금은 도전적으로 변할 수 있었다. 사회학 서적에서 그렇게 말하던, '기반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다'는 말이 이전의 나에게는 '기반이 없는 사람은 도전하기 어렵다'로만 들렸는데 이제는 '그러니까 너도 도전할 수 있잖아?'라는 말로 들렸다. 사회과학서적이 자기 계발서처럼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나 자기 계발서를 싫어했던 나는 요즘 베스트셀러라는 자기 계발서를 빼놓지 않고 읽게 된다.


이렇게 스스로 너무도 빠르게 변하다 보니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 내 환경과 조건이 변하면서 내가 변한 경험을 빠르게 하다 보니 누군가도 어쩌면 다른 환경에서, 다른 조건에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살겠지,라고 상상하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육아를 하고 나서 황희정승이 되어버린 나


육아를 하면서 어떤 상황이든 맞는 말은 오로지 '애바애'라는 말밖에 없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그러니까 그 어떤 좋은 교육도 '우래기'에게는 안 맞을 수 있고 그 어떤 결핍도 어떤 아기에게는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면 바로 아기가 잘못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아이에게는 자신의 잘남을 뽐낼 수 있는 유치원 생활이 즐거울 수 있고 영어가 잘된 아이들은 커서 부모에게 감사함을 느낄 수도 있다. 어떤 아이는 숲유치원이 너무 잘 맞아 스트레스 없이 즐거운 유아기를 보내고, 이후에 공부에 집중할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든 아이를 애정을 가진 부모가 아이를 잘 관찰하고 적절한 선택을 '함께' 해나간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물론 이것은 성인에게도 적용가능하다.


그러니까 나는 요즘 황희 정승이 되어버린 것이다. 쉽게 말해 생각의 날이 무뎌졌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생각의 날을 벼려 기획을 하고, 그 기획 의도 아래서 전문가를 섭외하고, 당당하게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내 주장을 펼치거나 해야 하는 복직 이후 상황 자체가 나에겐 버거워진 것이다. 물론 이런 나의 성향은 몇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이긴 해서 콘텐츠 리뷰나 인터뷰 위주로 기사를 써오긴 했지만 아기를 낳고 이 성향이 더더 심해져 버렸다.


물론 인터뷰 위주로 기사를 작성하거나, 하나의 답을 내리지 않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기사를 쓰는 선배들도 많긴 하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은 조금 더 품이 많이 들고 실력도 따라줘야 한다. 고민이 많은 만큼 말이다. 그러나 그런 기사들이 조회수가 잘 나오는지는 의문이다. 하나의 답을 내리고 그 기획 아래서 획일적인 이야기를 내놓는 것이 찬성의 입장도 우르르 몰려오고 반대의 입장도 우르르 몰려오기에 화제성이 높다.


그 유혹에 빠지지 않고 내가 고민을 담은 기사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것도 아기를 키우면서?라는 의문이 점점점점 커져 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안다. 너무 완벽하게 무언갈 준비하고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을. 걱정도 미리 끌어다 할 필요가 없으며 닥치면 하루하루 성실하게 쳐가면서 하면 된다는 것을. 어린이집 입소와 함께 와버린 번아웃을 겪고, 3개월 후 있을 번아웃까지 예정하면서 미리 번아웃을 더 크게 만들 필요도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아는데..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나의 3번째 번아웃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진짜 번아웃 상태면 이런 글도 쓰지 못하고 누워서 릴스만 보는 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3개월 후 번아웃이 올 것이라는 예고를 주는, 주기적으로 번아웃을 겪는 내 몸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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