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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Dec 30. 2023

'나는 솔로', 파라소셜 인터랙션의 끝판왕

하나의 주체에만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도 철 지난 비평이 된다

‘나는 솔로’는 ‘파라소셜 인터랙션’의 끝판왕인 프로그램이다.


‘파라소셜 인터랙션’(para-social ineraction)이란 1950년대 홀턴과 월(Horton & Wohl, 1956)이 제시한 개념으로 미디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이 간접적으로 일어날 때,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독특한 관계가 생기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도 미디어를 통해 마치 아는 사람처럼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칭한다. 이 이론은 연예인을 두고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의 미디어들은 어떻게 하면 이러한 ‘파라소셜 인터랙션’을 높일 수 있는지 궁리해 왔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 오히려 연예인 데뷔의 키를 잡고 인기투표를 통해 준비생들을 데뷔시키는 포맷이 대표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러한 파라소셜 인터랙션을 통해 이용자들이나 팬들에게 권력이 어느 정도 이양됐음을 보여준다.

(관련 기사: https://www.sisajournal-e.com/news/articleView.html?idxno=191920)




많은 이들은 나는 솔로에 나오는 출연자들을 매우 친근하게 생각하고, ‘나라면 저 중에서 누굴 고를까?’,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행동할까’ 같은 이야기를 나눌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그 행동을 평가하고 칭찬하거나 비난한다.      


'나는 솔로'의 새 기수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출연자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방송을 보면서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를 두고 맞네 틀리네 평가를 하고 댓글로 칭찬 혹은 공격을 한다.


인스타그램 댓글 정도는 양반이다. 출연자들이 다니는 회사의 ‘블라인드’(회사 이야기를 하는 익명 커뮤니티)에서도 ‘저 사람의 평소 행실은 어땠다’부터 시작해, 누리꾼들은 그들의 과거를 샅샅이 뒤져 방송에 나오지 않았던 모든 일상을 모두 캐내고 평가한다.     


몇몇 출연자들은 인스타그램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고 계정을 닫는 것은 물론이고 방송 출연 이전 하고 있었던 쇼핑몰을 폐쇄하는 등 생업을 잃기도 한다. 언론에서도 이런 나는 솔로 과몰입 현상에 대해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의 리스크’에 대해 매번 기사가 나온다.  




‘나는 솔로’가 ‘파라소셜 인터랙션’ 밀도를 높이는 전략들     

‘나는 솔로’는 ‘파라소셜 인터랙션’의 밀도를 높이는 여러 가지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파라소셜 인터랙션 밀도를 높이는 전략 가운데에는 시청자들에게 ‘우위’를 느끼게 해주는 감정을 주는 것이 있다.      


우선 ‘나는 솔로’의 출연자들은 매우 평범하고 어쩌면 만만하게 느껴지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영자, 영숙, 영철, 상철... 어쩌면 ‘개똥이’ 같이 친근하고 만만한 이름들을 부여받고 ‘결혼 못해서 TV까지 나와 짝을 찾는 사람’이라는 지위를 갖는다. 아무리 그 사람들이 전문직이고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이며 성실하고 멋진 시민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TV 앞에 선 순간부터 시청자들의 평가 대상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솔로


또한, 그들 사이에 매우 적나라한 일상과 대화가 모두 공개된다. 어쩌면 다른 연애 프로그램보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는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일상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웬만해서는 ‘이런 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편집하자’라든가 ‘이런 장면을 넣으면 출연자가 욕을 먹을 수도 있으니 잘라낼까?’ 같은 장면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 아니 어쩌면 그런 장면들만 모아두면서 사람들에게 실컷 남의 구애와 연애를 평가하게 만드는 것이 이 프로그램을 끌어나가는 힘이자 리스크다. 그렇기에 매 기수마다 엄청난 화제성을 몰고 다닌다.      


이렇게 ‘일상이 된 콘텐츠’에서 얼마나 적나라한 일상을 보여주느냐가 파라소셜 인터랙션의 밀도를 높이는 수단이 된 것이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될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 친근감을 높이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이혼이나 모태솔로라는 장치다. 물론 이런 장치가 없는 기수들이 더 많지만, 나는 솔로의 가장 인기 있는 기수들은 돌싱 아니면 모태솔로 특집이다. 나는 솔로의 ‘레전드 기수’로 꼽히는 기수를 뽑아보라면 10기와 16기라고 말할 수 있는데, 두 기수 모두 ‘돌싱’ 편이었다.


돌싱 편에 이슈가 붙는 이유를 두고 ‘나오는 사람들이 빌런(villain, 악당)이니깐 뜬 거지’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이면을 살펴보면 사람들은 ‘이혼을 한 사람들’을 조금 더 쉽게 ‘빌런’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같은 행동을 해도 몇 번의 정상적(?)인 연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빌런 취급을 당하지 않지만, 돌싱이거나 모태 솔로의 경우 조금 더 쉽게 빌런 취급을 당한다. ‘저러니깐 이혼했겠지’, 라거나 ‘저러니깐 아직까지 모태솔로지’라는 식의 악플이 대표적이다. 자신이 저 사람을 빌런 취급하는데 어떤 증명이라도 된 것처럼 군다.      



나는 솔로에 나오는 사람들을 시청자들이 마음껏 평가하고, 희화화하고 조롱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이유가 이 ‘일정 수준의 선입견의 개입’된다는 점을 언급할 수 있다. 


하나의 주체에만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도 철 지난 비평이 된다

이렇게 나는 솔로는 시청자들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장치들을 여러 가지 설정하면서 출연자들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하는 위치에 서게 한다. 얼마나 많이 시청자들이 그들을 판단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하는지가 중요해졌다. 


사실 네티즌들이 캐내지 않아도 출연자들은 스스로 방송을 통해 직업이나 연봉, 나이, 외모 등 원래부터 평가의 대상이었던 것을 넘어 자가를 소유하고 있는지, 자식은 얼마나 낳을 것인지, 대화 방식, 집안일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등등의 대화를 낱낱이 공개한다. 이러한 신상 정보들이 시청자들의 몰입을 유도한다. 




‘모든 일상이 콘텐츠’가 된 시대. 자신의 모든 것을 콘텐츠화 하고 싶은 것은 크리에이터와 출연자 모두의 바람이다. 


이제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논란을 알고도 들어오는 상황이다. 나와서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고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 즉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방송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목적의 출연이 맞물리며 문제가 더욱 커진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문제가 생길 때 꼭 하나의 주체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자극적인 연출을 하는 제작진, 인지도를 위해 출연을 결정하는 일반인, 과몰입으로 신상을 털고 악플을 다는 시청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이미 밀도 높은 파라소셜 인터랙션에 익숙해진 시청자들과 공급자들에게 수위가 낮은 프로그램을 즐기고 만들라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이러한 문제를 자극적인 콘텐츠를 만들려는 미디어 제작자들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철 지난 비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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