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혼'부터 '돌싱글즈', 이혼 웹툰들과 '신성한 이혼'까지
몇 년 전부터 이혼 이야기가 유행이고 최근엔 정점에 달한 듯하다. 사람들이 남의 결혼보다 이혼 이야기를 좋아한다지만 요즘은 정말 어딜 가나 이혼 콘텐츠가 쏟아진다.
브런치스토리 플랫폼 역시 인기 있는 브런치북이나 작가 중 10에 2~3은 이혼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다. 나 역시 국제 이혼에 관련한 연재나 각종 이혼 이야기를 담은 브런치북을 정독한 적이 많다. 이혼 변호사들이 만드는 인스타그램 속 이혼 웹툰도 인기가 많다. 최근 방영하는 JTBC <신성한 이혼> 역시 이혼 웹툰이 원작이다. <신성한 이혼>은 이미 <더 글로리>를 제치고 넷플릭스 한국 시리즈 1위를 차지했다.
사람들은 왜 이혼 이야기를 이렇게나 좋아할까. 우선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인간은 남의 행복보다는 불행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남의 이혼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이혼에 이르렀을까'라는 호기심을 충족하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이혼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혹은 '나는 저런 상황이 아니라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에서 느끼는 기쁨)라는 개념을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이혼 이야기를 보는 심정을 알 것이다.
혹은 공감과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한 선배는 나에게 "이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마 이혼 콘텐츠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했다.
이혼 이야기는 이별 이야기인 동시에 사랑 이야기이며 사적인 내밀한 이야기이기에 자극적인 요소도 있고 재미가 있다. 게다가 결혼 이야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약간의 도발적이면서도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도 꺼낼 수도 있다. '이혼해도 괜찮아'라든가 나아가 '나쁜 결혼보다 이혼은 오히려 희망이다'와 같은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 힘든 사람에게 위로를 건넬 수도 있고 전통적인 가족상을 뛰어넘는, 나름 진보적인 느낌을 주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기에 이혼 콘텐츠의 공급과 수요는 계속될 것이다. 이혼 이야기가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점 때문에 면피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아주 예전부터 <사랑과 전쟁>과 같은 이혼 콘텐츠가 있어왔지만 최근 이혼 콘텐츠 유행의 시작은 TV조선 <우리 이혼했어요> 일 것이다. 그 뒤로 MBN <돌싱글즈> 1,2 같은 콘텐츠가 그 유행을 이어왔다.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겠지만 두 프로그램은 같은 작가가 만든 것이다. 2021년 <돌싱글즈 2>가 한참 인기 있었을 때 (그 유명한 윤남기, 이다은 커플이 탄생한 프로그램이다.) MBN으로 가 정선영 작가와 박선혜 PD를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정선영 작가는 이혼한 사람들을 100명 넘게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혼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세계관이 깨지는 경험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이혼한 사람의 이야기는 단순히 흥밋거리를 넘어 인생의 큰 일을 겪어본 사람의, 깊이 있는 '인간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라고 말했다. 결국 시청자들은 날 것의, '진짜 이야기'에 열광한다는 분석이었다. (그들의 인터뷰를 읽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6/0000110776?sid=103
내가 좋아하는 이혼 이야기를 꼽자면 스파이크 존스의 영화 <허>와 노아바움백의 영화 <결혼 이야기>가 있다. 특히 <허>는 최근 챗GPT가 관심을 모으면서 AI와 인간의 속 깊은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예상한 영화로 꼽힌다. 다만 <허>를 인간과 AI와의 사랑 이야기로만 국한해 보기에는 아깝다.
주인공은 AI 애인을 만나기 전 이혼을 한다. 한 내성적인 인간의 결혼과 배우자와 다른 속도의 성장, 그런 배우자와의 이혼이 영화의 전반부에 깔려있다. 성장의 차이 때문에 이혼을 한 인간이, 인간보다 빠른 성장을 하는 AI와 사랑을 하게 되고, AI는 인간과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사랑한다. 또다시 사랑하는 대상과 성장의 갭을 채우지 못해 이별을 하는 것이다.
(이같은 관점은 김동조의 책 '나는 나를 어떻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나온다.)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는 이름만 결혼 이야기이지, 사실 이혼 이야기다. 영화에는 결혼을 한 후 남편에게 맞춰 사느라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은 남편을 만난 후 계속 남편에게 맞춰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남편은 '천재상'이라고 불리는 권위 있는 상을 받고 자신에게도 '네 덕분이야'라고 말하지만 아내는 그 상이 자기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극단의 다른 매니저와 자기도 했다. (한국이라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텐데, 어째 이 영화에서는 이 부분은 부수적으로 다뤄진다.) 어쩌면 아주 식상하고 전형적인 이야기다.
각자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나 잘 알고 어쩌면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들은 이제 각자의 성장을 위해 다른 길을 가야 하는 시기를 맞이한다. 그래서인지 두 번, 세 번을 보면서도 눈물이 계속해서 났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인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 좋아하는 감독인 노아 바움백의 조합만으로도 취향 저격이긴 하지만 영화의 첫 장면, 아담 드라이버의 노래 장면, 부부뿐 아니라 이혼 변호사들의 갈등 이야기, 아이와의 관계, 사랑과 꿈에 대한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뒤덮인 콘텐츠다.
<결혼 이야기>를 보고 노아바움백의 나무위키를 살펴보니 이 영화는 완전히 노아바움백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잘 나가던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와 결혼해 한 아들을 낳았고 제니퍼 제이슨 리는 노아바움백과 결혼한 2005년부터 2013년 필모그래피가 비어있었다. 제니퍼는 노아바움백과 이혼을 한 시기 영화 <킬유어 달링>을 찍었고 2015년에는 <헤이트풀 8>을 찍어 다시 유명세를 얻었다.
노아바움백 감독은 이혼 이후에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이자 감독인 그레타 거윅과 또 아들을 낳았다. <결혼 이야기> 속 감독인 아담 드라이버와 감독의 뮤즈이자 배우, 감독이 되고 싶은 스칼렛 요한슨의 이야기와 비슷한 인생이었고 다른 사람과 그것을 또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참 에세이 같이 읽히는 영화다. 물론 몇 줄의 나무위키를 읽고 이 영화와 완전히 같은 상황이라고 예측하긴 어렵겠지만.
이혼 이야기는 결국 사랑 이야기다. 영화 <결혼 이야기>가 <이혼 이야기>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그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언제나 사랑 이야기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