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수'하기 좋은 요리의 조건
‘손민수하다’라는 말을 여전히 활발하게 쓰는지 모르겠지만 이 말은 웹툰 ‘치즈인더트랩’에서 주인공 홍설을 지나치게 따라 하는 인물로부터 유래됐다. 웹툰 내에서는 주인공을 너무 심각하게 따라 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캐릭터지만, 명사화돼 ‘따라하다’=‘손민수하다’라고 쓰이는 용례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와 이거 손민수하고 싶어요’라고 쓰이는 정도의, 평범한 따라 하기 정도로 명사화돼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손민수하다’의 용례를 찾아보며 나무위키를 검색해봤는데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손민수가 홍설을 따라한 이유에 대해 분석한 부분인데 1. 동경설 2. 나라도 홍설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두 부분으로 나뉘어서 서술돼 있었다.
“주인공 홍설이 두뇌, 외모, 집안 환경(돈), 성격 등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기보단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골고루 무난하게 좋은 편이라 '나라도 저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생각이 들어서 따라 하고 있다”는 추측이다.
https://namu.wiki/w/손민수(치즈인더트랩)
웹툰 속 손민수처럼 소름 끼치는 정도만 아니라면 무언갈 따라 하는 일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옷을 잘 입고 싶으면 잡지나 길에서 본 옷 잘 입는 사람을 따라 입는 게 첫 시작이다.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도 필사가 필수다. 무언갈 잘하고 싶으면 잘하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 첫 코스다.
요리 역시 마찬가지다. 요리를 잘하고 싶으면 맛집을 자주 찾아가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따라 해 보는 것이 요리를 잘해가는 과정이다. 다만 옷 입기나 글쓰기와는 다르게 요리는 그 레시피를 육안으로 알기는 어려워 손민수하기 어려운 영역에 속한다.
손민수가 홍설을 따라한 이유 중 1번(동경설) 보다는 2번 (홍설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이 더 큰 호응을 얻는 것 같은데 음식의 영역에서는 이 조건이 더 중요하다. 육안으로 무얼 넣은 것인지 어려운 요리라면 따라 하기가 어렵고, 너무 수준 높은 (?) 요리여도 따라 할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다.
안주 마을의 인기 안주 조합을 따라한 나의 안주.
간단하지만 맛있는 요리가 역시 손민수하기 좋다. 재료를 많이 가공하지 않은 요리지만,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조합인 경우가 가장 따라 하기 쉽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가 손민수의 조건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자주 카피하는 음식 중 하나는 서울 서촌에 위치한 안주 마을의 대박 안주, 청어알과두부와 오이다. 청어알이 없어도 명란젓 무침으로도 비슷한 맛을 낼 수 있다.
집에서 대충 따라 해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청어알이 없을 때는 명란젓 등에 쌈장이랑 고추장, 참기름, 청양고추를 넣어 양념을 하면 된다.
서촌 인기 맛집 안주 마을의 청어알과 두부, 오이 안주.
무엇이든 내가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거리여야 깊은 감정을 품고, 또 참여한다.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은 대상엔 깊은 감정도 들지 않고 질투도 나지 않지만, 금방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동경을 유발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닿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 역시 참여를 끌어들일 수 있다. 집밥을 자주 해 먹을 수 있는 동력도 마찬가지 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