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혼밥을 먹으려면 필요한 무기들
집에 혼자 있을 때면 배달의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혼자기에 대충 먹어도 되지만 혼자기에 차려먹기가 더욱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침, 점심, 저녁까지 혼자 먹는 일이 있기에 하루에 1번은 배달의 유혹에 흔들린다. 특히 배달의 민족에서 1인분으로 구성된 메뉴가 많아지며 1만 원 초반대로 시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해졌다. 그래서 종종 1인분 김치찜이라든가 김밥 분식 세트 등을 배달시켜 먹게 됐다.
그러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 무언가 찝찝한 마음이 든다. 수많은 자기 계발 유튜브나 '돈 모으기'를 위한 유튜브를 보면 항상 끊어야 할 것 1위로 '배달 음식'이 꼽힌다. 그만큼 배달 음식은 비용이 들고, 1인분이라고 하더라도 음식양이 많아 남는 경우가 많고, 특별히 맛있기도 힘들며,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이러한 심리적 거부감 때문에 결과적으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그뿐인가. 혼자이고, 별로 바쁜 일도 없는데 배달 음식을 시켜 먹어 버렸다는 자괴감으로 자책도 하게 된다.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만족하지 못하는 선택이 된다.
때문에 집에 있을 때 배달음식을 먹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데 배달음식을 먹지 않으려면, 이런저런 무기들이 필요하다. 거창한 '요리' 축에는 끼지도 못하지만 배달음식을 피할 수 있는 현실적 혼밥 메뉴와 재료들을 추천해 보겠다.
1. 샌드위치나 토스트 (feat. 콜드브루 원액)
집에서 해 먹기 어려운 메뉴(커피 등)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자.
혼자서 밥을 먹을 때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먹기 힘들기에 아침과 점심은 아점으로 때우게 되는데 그때 유용한 것이 식빵과 커피다. 매일 사무실에 나가는 때에도 항상 아침 출근길에 샌드위치를 싸가거나 구입해 커피와 함께 먹었다. 사실 이때 매일 아침 7000원 정도의 빵과 커피값이 들었다. 그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종종 샌드위치를 만들어 싸간다고 하더라도 '출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동해 끊기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이러한 보상심리는 사라져서 아점으로 간단히 먹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이때 집에 마땅한 커피를 만들 무기가 없으면 또 배달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어차피 커피는 사 먹어야 하니까'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이 때문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만들 재료가 집에 꼭 있어야 한다. 원래는 드립 커피를 좋아하던 나였지만 임신을 한 뒤 디카페인을 먹어야 했고, 디카페인 원두 중 맛있는 원두를 찾기 어려웠다. 또한 혼자 드립해 먹는 것도 귀찮게 느껴졌다. 그 대체품으로 콜드브루 디카페인 원액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아주 만족스럽다. 핸디엄의 콜드브루 커피원액을 추천하는데, 10번 정도 먹을 수 있는데 이 한 팩에 11000원 정도 한다. 요즘 냉장고 필수품.
2. 만둣국, 떡국 (feat. 김치만두)
라면급으로 손쉬운 레시피들을 익혀놓자.
의외로 아주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떡국과 만둣국이다. 코인육수나 다시마만 있으면 거의 라면급으로 손쉬운 끼니가 된다. 이 끼니는 보통 겨울~봄 조금 으스스하게 추운 저녁 식사에 어울린다. 떡국은 은근 아침식사로도 어울리긴 한다. 뚝배기나 냄비에 물을 붓고 코인 육수 한알을 넣은 후, 집에 있는 배추나 부추, 김치, 어묵 등 적절한 야채를 넣는다. 간장이나 시판용 우동 국물 원액 등을 한 숟갈 넣어준다. 떡이나 냉동 만두를 넣고, 달걀 하나를 다른 그릇에 푼 후 불을 끄고 휘 둘러준다. 1분 정도 후 천천히 냄비를 저어주면 적당히 달걀이 익어서 마치 돈부리의 그것처럼 음식의 위를 덮는다. 파나 청양고추는 옵션.
이때 내가 추천하는 만두는 고기만두보다는 김치만두다. 특히 혼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 간을 하기가 귀찮을 때가 많다. 이때 시판용 우동 국물 원액 같은 것이 있으면 편하긴 한데 그것마저 귀찮을 때는 김치만두 3~4개를 넣고, 그중 하나를 터뜨리면 끝난다. 이미 김치만두에는 좀 짠, 간이 되어있기 때문에 딱히 국물에 간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간이 된다. 이 때문에 거의 라면과 맞먹는 손쉬운 요리법이 된다.
3. 유부초밥.
노력 대비 비주얼이 좋은 음식을 해 먹으면 기분이 좋다.
나는 유부초밥을 아주 좋아한다. 요즘 유부초밥 체인점들이 늘어나고, 연어나 고기 같은 고명을 듬뿍 얹은 유부초밥이 유행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런 종류의 유부초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유부초밥 패키지에 들어있는 식초와 후리카케만을 넣거나, 그게 아니라면 소고기 조림이나 우엉조림 정도를 넣은 베이식 한 유부초밥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내가 유부초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년기 기억 때문인 것 같다. 나는 3살부터 6살 때까지 아버지의 학업으로 인해 가족과 함께 일본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다. 이때 유치원에서 급식으로 유부를 활용한 요리가 자주 나왔다. 엄마 역시 취미로 일본에서 요리학원을 다니셨기에 일본 가정식을 즐겨해 주셨다. 그 때문인지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에도 엄마는 소풍날 김밥 대신 유부초밥을 싸주셨다. 많은 아이들이 보통 김밥을 싸왔기에, 나는 유부초밥을 싸와서 함께 나눠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마트에서 사는 유부초밥 패키지는 항상 장 볼 때마다 쟁여놓는 것 같다. 패키지 속 식초와 후리카케만 넣고 유부초밥을 만들어도 한 끼 예쁘고 정성스럽게 먹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작은 유부주머니 안에 밥을 꾹 꾹 담다 보면 지루한 기분도 들고 귀찮게 느껴지지만 수고에 비해 예쁜 비주얼을 낼 수 있는 메뉴 중 하나인 것 같다.
4. 김치찜/ 김치볶음밥 등 김치를 활용한 요리.
집에 '항상 있는 재료'를 활용하자.
혼자 굳이 집밥을 해 먹는 이유 중 팔 할은 돈을 절약하겠다는 다짐 때문일 것이다. 같은 돈을 쓴다고 하더라도 3~5번 정도 배달음식을 참은 후, 5~8만 원 정도 상당의 오마카세 식당에 가거나 맛있는 맛집에 가서 새로운 미식 경험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적을 생각해 보면, 집에서 혼밥을 차려먹기 위해 지나친 지출을 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삼시 세끼 집에서 밥을 먹다 보면 어느 날 저녁, 마켓 컬리로 5~7만 원 정도를 사용하면서 우아한 브런치를 만들어먹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배달앱을 쓰는 것보다는 마켓 컬리나 B마켓을 사용해 식재료를 배달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긴 한다. 그러나 나는 장을 보는 빈도를 1주일에 1번, 7만 원 이하로 정해놓기 때문에 그 외에는 식자재 역시 사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에 '항상 집에 있는 재료'로 집밥을 만들어 먹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 시가와 친정에서 김치는 부족하지 않게 항상 보내주시기 때문에 김치는 언제나 활용할 수 있는 재료 중 하나다. 그래서 김치찌개나 김치볶음밥은 나의 집밥 1순위 메뉴가 된다.
5. 파스타
파스타면만 있다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파스타 역시 라면급 손쉬운 레시피로 만들 수 있다. 파스타 소스나 바질 페스토 정도만 넣고 비벼도 한 끼 식사를 때우기 충분하며, 혹은 전날 먹고 남은 무언가와 함께 볶아버려도 웬만하면 괜찮은 조합이 된다. 자주 해 먹는 것은 바질 페스토와 구운 마늘을 넣은 파스타이다. 또, 전날 주꾸미 볶음이나 닭갈비처럼 염도가 높은 볶음류를 해 먹었다면, 그것을 잘 남겨놓았다가 면만 삶아서 볶아도 훌륭한 파스타가 된다.
최후의 선택. 시리얼, 견과류, 과일.
유튜브나 인터넷을 많이 보는 사람은 알 것이다. '최악의 아침 식사' 등으로 가장 자주 꼽히는 것이 시리얼이라는 것. 시리얼은 당분이 많아 좋은 식사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간편한 식사라는 건 부인할 수가 없다. 아주 간단한 끼니여도 챙겨 먹기 귀찮을 땐 시리얼과 견과류, 과일을 먹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때가 많다. 게다가 비주얼도 썩 나쁘지 않다. 물론 당분이 낮은 시리얼이나 그래놀라를 고른다면 더 좋을 것이다.
시리얼을 씹으면서 오늘도 생각한다.
"그래도 배달시켜 먹지는 않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