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을 직접 만들어야 '진짜 집밥'?
입은 두 개인데, 사다 놓은 비빔면이 한 개 밖에 안 남아서 비빔국수를 무쳤다.
엄마가 가끔 집에 놀러 올 실 때 '반찬 뭐 필요해?'라고 물어보시면 나는 '그냥 우리 집 와서 비빔국수 만들어줘'라고 할 정도로 비빔국수를 좋아한다.
비빔국수 그까짓 게 뭐라고 혼자 해 먹으면 되지, 왜 엄마한테 만들어달라고 할까. 다들 아시다시피 비빔국수는 맛있게 만들기가 은근히 어렵기 때문이다. 엄마표 비빔국수를 상상하며 비빔국수를 만들다가 어떤 날은 너무 텁텁하고, 어떤 날은 너무 시큼하고. 새콤 달콤 매콤한 내가 상상한 비빔국수를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국수나 말아먹을까?'라는 말은 국수를 안말아본 사람이 하는 말이다. 국수를 마는 이에게 등짝 스매싱을 부를 만한 말이다.
그렇기에 비빔면이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 아닐까. 비빔국수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양념 때문인데, 비빔면을 먹으면 그 속에 동봉된 비빔장만 넣으면 매우 쉽게 이상적인 비빔국수를 먹을 수 있다. 그 양념을 잘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비빔면 속 동봉된 '비빔장'만 따로 팔겠는가.
이때문에 양념을 제대로 만들 줄 모르면 '진짜 집밥'이 아니라는 인식이 꽤 오래 박혀있었다.
어디선가 순두부찌개를 매우 맛있게 먹었는데, 그것이 사실 '다*' 시판 양념으로 만든 순두부찌개인 것을 알게 됐다면?
혹은 내가 '다*' 시판 양념으로 순두부찌개를 만들어줬는데 먹은 이가 너무 맛있다며 레시피를 물어본다면?
식당에서 시판 양념을 써서 음식을 만든 것을 발견했다면 뭔가 속은 것 같았다. 또한 내가 시판 양념으로 밥을 해줬는데 상대가 너무 맛있다고 연신 칭찬을 한다면 무언가 죄책감을 느꼈었다.
왠지 '진짜 집밥'이 아닌 것 같고. 진짜 요리실력이 아닌 것 같고. 집밥이라 건강할 줄 알았는데 밖에서 파는 거랑 비슷한 양념이라면 집밥 먹는 의미가 없는 것 같고. 결정적으로 레시피를 말해주기도 애매하지 않은가.
그러나 집밥 6년 차, 이제는 시판이든 배달음식에서 준 양념이든 맛있는 양념이라면 차곡차곡 모아 각종 요리에 활용하는 경지가 됐다.
이날도 언젠가 '불냉면'이라는 레토르트 식품을 먹고 남은 '불양념'을 넣고 비빔국수를 만들었다. '불냉면' 레토르트 식품에는 냉면 육수와 매운 비빔장이 함께 들어있었다. 그러나 나는 냉면육수만 사용해 '불냉면'을 '물냉면'으로 만들어먹고, 매운 비빔장은 남겨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비빔국수를 만드는 날 이 비빔장을 사용했다.
물론 비빔장이 있다고 해서 그것만 딸랑 사용하면 맛이 덜하다. 우선 소면을 삶아 놓고, 그 사이 큰 접시 하나를 준비한다. 큰 접시에 열무김치를 한 움큼 넣고 국물도 실하게 담는다. 열무김치와 국물에 방울토마토도 몇 개 잘라 넣는다. 이후 '매운 비빔장'을 넣고, 매실액과 설탕, 참기름, 고춧가루, 간 깨를 넣는다.
그리고 잘 삶아진 소면을 찬물로 빡빡 씻은 다음, 소스를 만들어둔 큰 접시에 옮겨 담는다. 이후 비닐장갑을 끼고 소스와 면을 잘 섞어주면 된다.
냉면 속 들어있던 양념을 사용했다는 죄책감은 느끼지 않도록 한다.
나의 집밥 신조, '빠르고 간편해야 계속해 먹는다'를 다시 상기한다. 어떻게 하면 빠르고 간편하고 맛있게 집에서 밥을 ‘자주’ 해먹을지에 대해서만 궁리한다.
그렇다면 그런 시판 소스가 없는 날은 어떡하냐고? 그런 날은 그때 가서 또 레시피를 찾아보고 만들면 된다. 내일은 또 내일의 집밥이 있으리니. 오늘은 오늘의 맛난 비빔국수를 만들어 준, 보물창고 같은 냉장고 속 소스 코너에 감사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