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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Jul 17. 2023

좋아하는 일은 '쉽다'

좋아하는 일 찾는 법

"이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

최근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다. 20대의 내가 들으면 깜짝 놀랄 말이다. 당시의 나라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모르다니? 그럼 그걸 누가 알아? 그리고 그걸 왜 남한테 물어봐? 자기가 모르는 걸 남이 어떻게 알아? 그런 사람은 남이 한마디 하면 '아 내가 그런가?' 이럴 사람이겠지.


아마 20대의 나는 이렇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뚜렷하고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었다. 직업에 관한 생각 외에도 그 당시 정치 성향도 뚜렷했으며 각 사안에 대한 나의 입장도 분명했다. 좋아하는 취미나 작가도 뚜렷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만약 그것을 못한다면 능력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몰라서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름 좋아하는 일을 찾아 살아온 지 10년 가까이 됐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도 낳았는데 이제야 내가 나를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경험들을 해보니, 내가 좋아했다고 생각했던 일을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내가 싫어할 것이라 생각한 것을 즐기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20대 때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보고 '뭘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뭘 몰라서' 나 자신을 정확하게 안다고 자만했구나 싶다.




분명히 싫어하는 일이었는데 좋아진 일은 살림과 요리다. 결혼하기 전까지 줄곧 부모님과 같이 살았으니 요리를 할 일이 많지 않았고 외식하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요리하는 비율이 더 높다. 20대 때는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왜 비효율적으로 직접 요리를 해 먹지? 사 먹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누워있는 게 낫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남편이나 친구들에게 요리를 해줄 때 자주 듣는 이야기가 "와, 엄청 빨리 만드네?", "뚝딱뚝딱 잘하네?" 류의 이야기다. '맛있다'는 칭찬도 기분 좋지만 '빨리 잘한다', '여러 요리를 한 번에 되게 빨리 한다'는 식의 평가 역시 기분이 좋아진다.


왜냐면 나는 다른 일을 할 때는 이런 류의 평가를 듣기 힘든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 '왜 이렇게 걸음이 느려?', '너처럼 걸음이 느린 사람은 처음 봐', '너 말 진짜 느리다', '답답해 빨리 좀 준비해 ㅠㅠ' 같이 '느리다'와 관련된 말을 자주 듣던 삶이었다. 내가 무언갈 빨리 한다는 평가 자체가 생소한 일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요리를 할 때 스스로 '빨리'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고, '빨리 해야지'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요리를 할 때면 저절로 물이 끓는 시간에 재료를 준비하고 남는 시간에는 소스를 만들고 등의 '효율적인 과정'이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다른 일도 이렇게 머리가 빨리 돌아가면 좋으련만.


물론 내가 하는 요리가 그다지 복잡하고 대단한 요리가 아니기에 빨리 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먹을지 애매한 시점에도 집에 있는 것으로 어떻게 10분 정도 안에 음식 하나를 만들지 아이디어가 금방 떠오른다.


토마토리조또는 집에 토마토와 즉석밥과 치즈 정도만 있다면 10분 안에 뚝딱 만들 수 있는 쉬운 집밥 메뉴다. 건강하고 소화도 잘 돼 여름이면 자주 만드는 메뉴다. 특히 이 음식을 만들어줄 때 '와 벌써 다됐어?' 같은 반응이 나온다.



이게 바로 '좋아하는 일'의 힘인 것 같다. 나는 쓸데없이(?) 연애 유튜버들의 연애 조언을 듣는 것을 좋아해 연애 유튜브를 자주 본다. 한 유튜버가 결혼에 대해 한 말 중 공감 갔던 것이 "결혼하는 인연들은 그저 물 흐르듯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라는 말이다. 나 역시 남편과 만난 지 1년도 안 돼서 결혼을 준비했고 재고 따지고 하는 과정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던 경험이 있다. 많은 유부인들이 '정신 차리고 보니 결혼식장이었다'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이유다.


이처럼 진짜 좋아하는 일들은 자연스럽고 쉽게 느껴진다.

아니, 어쩌면 자연스럽고 쉽기에 좋아하게 되는 걸 수도 있다.


뭐가 먼저든 무슨 상관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만 하면 그만이다. (연애에 있어서는 '내가 편안하고 쉬워서 날 좋아하는 건가?'하고 고민한 적이 있긴 했다. 그런데 사실 이 건도 날 좋아하기만 하면 그만이니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모르겠을 때, 남들에게 '너 이거 되게 쉽게 한다'는 평가를 받아본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알 수 있다.


혹은 스스로 잠을 자지 않고 몰입한 일도 마찬가지다. 보통 몰입, 특히 잠을 자지 않고 어떤 일에 몰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몰입을 쉽게 하게 하는 일은 좋아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자체를 찾기가 어려울 때는 나는 무엇을 쉽게 하는지, 혹은 빨리하는지, 혹은 쉽게 몰입하는지 생각해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번외. 노랑 방울토마토로 만든 노란색 리조또. 한우를 구워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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