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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Apr 29. 2023

"그렇게까지 날 드러내고 싶진 않아"

내 글쓰기를 막았던 생각 첫 번째  

출산과 육아 휴직에 들어가면서 그동안 내가 써왔던 '기사'와는 다른 형태의 글들을 더 많이 쓰겠다고 다짐했다. 브런치를 개설했던 작년에도 기사라는 형식 외, 내가 좋아했던 글쓰기에 대한 감정을 다시 찾고 싶었다. 또한 기사를 쓰다 보면 종종 마감 시간이나 편집 시스템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기사가 만들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의 찝찝함이나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 글쓰기를 하고 싶기도 했다. 


그렇기에 브런치에 쓰게 되는 글은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이나 생각을 드러내는 에세이 형식이 됐다. 그러나 생각보다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이 주저되는 순간 역시 많았다. 새로운 정보를 담아야 하고 누군가의 주장이나 비판을 확인해야 하는 기사에서는 내가 쓰는 정보가 틀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내가 누군가를 과도하게 비판한 것은 아닌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반면 일상을 에세이를 통해 드러내는 글들을 읽고, 혹은 쓰려고 하다 보면 이 같은 생각이 글쓰기를 막았다. 


"이렇게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이야기를 드러내야 하나?"

"누가 나까짓 것의 일상이나 생각을 궁금해할까? 유명한 사람도 아닌데."


이것은 가명이 아닌 실명으로 에세이를 쓸 때 자주 드는 생각이다. 


그러나 내가 독자였을 때는 정확히 반대의 이유로 작가에 끌리곤 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다니."




몇 년 전부터 큰 인기를 끈 '월간 이슬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의 최근작은 환경문제 등 사회문제에 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를 에세이계의 스타로 만들어준 초기작이나 만화 등을 살펴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자기 이야기를 드러내지?" 싶을 정도로 모든 이야기를 쓴다. 


개인의 연애, 섹스, 가족, 친구, 제자, 스승의 이야기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의 친구나 제자와의 대화가 나올 때면 '아니 이 정도 대화를 밝히는 걸 그 친구도 동의한 건가? 그러고도 둘이 안 싸우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나라하다. 그는 누드모델을 하기도 했었는데, 글 역시 그의 누드를 보는 느낌이다. 그만큼 재미있는 글들이 많지만 종종 "이 정도로 솔직하게 써야 읽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그가 글을 잘 쓰는 것이 잘 읽히는 가장 큰 이유겠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만화를 더 좋아해서, 만화를 링크 걸어보았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71117554


유희열의 라디오에서 '캣우먼'으로 활동했을 때부터 팬이었던, 임경선 작가의 에세이 역시 그 드러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결혼 생활이나 일상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대표적인 작가들 외에도 에세이를 쓴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을 많이 드러내는 글쓰기를 한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5363322




최근에 내가 푹 빠져 열심히 읽고 있는 박우란 정신분석가는 글에서 자신의 경험을 아주 많이 드러내진 않지만, 내가 독자로서 그의 개인적 경험에 빠져 글을 읽은 경우다. 박우란 정신분석가는 프로이트와 라캉 이론을 중점으로 만 명 이상의 여성들을 상담한 경험을 풀어내는 저서들을 펴냈다. 그의 수많은 임상 사례와 해설도 매우 흥미롭지만, 내가 그에게 엄청난 호기심을 느끼게 된 계기는 개인적 경험이었다. 


박우란 정신분석가는 수녀로 수도원에서 오래 생활을 했다가 수사였던 남자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드러낸다. 또한 자신이 수녀가 됐던 이유 역시 '순결한 여성'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고 세속의 삶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던 '아버지의 욕망'이었음을 풀어낸다. 그가 수녀가 된 후 수사와 사랑에 빠진 과정, 수도원을 함께 나오는 과정 등이 마치 나에겐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졌고 그 인물에게 매료가 됐다. 그래서 그의 저서들을 한꺼번에 다 몰아봤다. 


https://youtu.be/7xKAvf4hu_E

박우란 정신 분석 상담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이 영상을 한번 살펴보면 좋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 행위는 결국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하다. 결국 작가에 대한 매료가 있어야 그 글도 더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글과 글을 쓰는 인물을 완전히 떼놓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연애를 할 때 상대의 조건-신체적인 조건과 학벌이나 직업 등 외부 조건을 모두 포함해-과 상대방이라는 사람은 온전히 떼어놓고 보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종종 드라마나 유튜브 영상에서 '내 몸이 좋아서 나를 만나?'라는 질문을 하는 장면을 보면 정말 웃기다고 생각한다. 몸은 그 사람의 유일한 것인데, 그 몸을 좋아한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기에 "나를 이렇게까지 드러내야 하나?"라는 생각은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생각이 될 수밖에 없다. 어쨌든 '쓰기'라는 행위를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말이다. 이 생각이 들 때마다 차라리 "내 일상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지?"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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