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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Aug 10. 2023

멋짐 아닌 치부를 드러낼 수 있나요

 이혼, 파혼, 불륜 이야기는 우습지 않다

'이혼이나 불륜 이야기들만 인기가 있잖아.'

대형 플랫폼에서 인기가 있는 콘텐츠들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물론 나도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기에 이에 대해 글을 쓰게 됐다.


사람들이 왜 이혼 이야기를 좋아할까에 대해서는 나름 이혼 콘텐츠를 만드는 작가와 PD 인터뷰도 해봤고, 남의 불행을 관전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심리(샤덴프로이데) 같은 이야기로도 풀어봤다.


https://brunch.co.kr/@after6min/48


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려는 건 아니다. 이번에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듯, 요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한다.

'글쓰기로 돈 벌기'같은 키워드를 넘어서 '개인 브랜딩'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영업을 하든, 회사를 다니든, 백수이든 글쓰기는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 됐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됐다. (나 역시 마찬가지고.) 글쓰기는 이제 특정한 생산적 활동이라기보다 '컴퓨터를 만질 줄 아는 것'과 같은 부속 기술이 됐다.




"출판사에 원고가 정말 끊임없이 들어온대."

최근에 책을 출간한 지인의 말이다. 요즘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브런치에서 열리는 출간 공모전에 출간되는 작품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를 본 적 있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브랜드'가 되려고 하고 글쓰기를 그 수단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글쓰기의 특징을 살펴보자. 먼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팔로우'할 만한 사람으로 포장해야 한다. 


가장 내세우기 쉬운 것은 학벌과 직업이다. 그렇기에 인기 퇴사 에세이의 필수조건은 명문대에 나와 대기업으로부터 퇴사를 해야 하는 것으로 좁혀진다. 명문대까진 아니더라도 '대기업에서 퇴사'를 해야 "이 사람은 왜 퇴사를 했을까?"싶어 그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대기업이 아니라도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나름 가치를 쳐주는 직업에서 물러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같은 맥락에서 의사, 변호사 등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의 세계를 다룬 에세이나 글도 인기다. 반대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직업의 세계도 인기 주제가 된다. 그 외에 자기 계발의 꽃인 외국어 공부, 다이어트, 운동 소재도 인기 에세이 소재다. 사람들이 살면서 도전하기 어려운, 이민이나 해외살이도 마찬가지다.   




이런 글들이 홍수를 이룰 때, 오히려 '써지기 어려운', 즉 희소성이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자신의 멋짐이 아니라 치부를 드러내는 글쓰기다.


바로 이 점에서 이혼/파혼/불륜/투병이 인기(?) 주제가 되는 것이다. 살면서 겪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그것을 드러내기 쉽지 않은 일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부러움을 받으며 '멋있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그동안 고생 많이 했네', '힘내세요', '좋은 일이 일어날 거에요' 와 같은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요즘 세상엔 이혼이나 파혼, 투병을 했다고 해서 그것을 곧바로 불행과 동급으로 놓치도 않고, 곧바로 동정을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에겐 이것이 '치부'가 아닐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이 드러내기 어려운 개인사적인 주제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치부란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부분'이다. 주제가 어찌됐든 '내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을 드러낸다는 것이 핵심이다.




종종 에세이 쓰기의 핵심은 글쓰기 솜씨도 있겠지만 '자신을 얼마나 드러내는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자주, 한 동년배 작가의 성공을 들먹거린다. 굉장히 성공한 그 작가의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따라 나오는 질문이 있다.

"너는 그 사람처럼 다 드러낼 수 있어? 부모 이야기, 전 애인 이야기, 현 애인 이야기, 오늘 친구랑 한 이야기 그런 거 다."


"난 못해."라는 답들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도 그렇고.


그 이유는 그렇게 나의 모든 것을 인터넷상에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워서 이기도, 누군가가 악플을 쓸까 봐 두려워서, 나중에 조리돌림을 받을 건더기가 될까 봐, 동정을 받기 싫어서, 나의 이야기를 쓰면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관종처럼 보이기 싫어서 등 참 여러 가지다.


자신이 겪은, 힘든 개인사를 공중에 펼쳐놓기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멋짐뿐 아니라 치부까지 포함한, 자신을 그렇게 다 까발린 이야기들은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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