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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May 11. 2023

책 읽기로의 회피

멋진 중년이 되기 위해 책을 읽으라는 칼럼을 읽고

미디어 기자를 8년 넘게 하면서 누군가의 기사, 글, 칼럼을 읽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건 ‘글쓴이의 개인적 이득과 글의 상관관계’이다.


건설사가 사주인 언론사에 다니는 기자가 쓴 건설업에 유리하게 쓴 기사, 사주가 운영하는 산업에 유리하게 쓴 기사, 자신이 출입하는 기업의 주가에 영향을 주는 기사, 자신에게 콩고물이 떨어질 정치나 학술 단체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기사 등.


이러한 글들은 직접적으로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득을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경우는 미디어계 뉴스가 된다.


반면 스스로에게 직접적인 이득이 되지 않아도 특정 산업에 유리한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해당 산업의 이득이 자신의 이득이라고 체화한 사람이 쓰는 글이다. 어떤 단체나 사업에 이득이 되는 사고가 그 사람의 진심이 되어버린 경우다. 혹은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해왔던 사람이기에 관련 산업에 몸담게 됐고, 이후로도 그런 사상(?)을 퍼뜨리는 글을 써왔을 것이다. 직접적인 이득을 위해 글이나 지면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사상적으로 그것이 정말 맞다고 믿는 사람의 글은 비판하기도 어렵다. (사상의 자유가 있으니.)




이렇게 글과 글을 쓰는 사람의 이득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장강명의 칼럼이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5/0003278952?sid=110&fbclid=IwAR1iYQNOwHSCEnAM6zvNZcL-jz60U_9gnZEtLvX87zDd3uQ1O06OTozpZ8k

이 칼럼은 멋진 중년이 되려면 책을 읽으라는 글이다.


내 관찰로는 영리한 청년이었다가 내용물 흐릿한 중년이 된 친구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책을 읽지 않고 타고난 영리함과 순발력으로 30대를 버틴 것이다. 정신의 어떤 부분을 제대로 훈련하지 않은 것이다. 그 훈련은 근력 운동과 흡사하다. 어린아이의 몸을 보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20대도 어느 정도 그렇다. 하지만 40대는 체형을 보면 평소에 운동을 얼마나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티가 난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운동 부족이 몸의 병이 되어 돌아온다.
다른 경험들이 독서를 대신할 수 있을까. 내게는 걷기 운동으로 코어 근육을 단련할 수 있다는 소리만큼 전망 없게 들린다. 한 업계에서 20년 정도 일하면 부장급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그 이상을 원하면 정신에 꾸준히 간접 체험과 지적 자극을 공급해야 한다. 나는 독서 부족이 노년에 마음의 병을 일으킬 거라 믿는다. 삶이 얄팍해지는.


그는 소설가이다. 곧 책을 팔아야 돈을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소설가니깐 당연히 책을 많이 읽자고 하겠지’ 정도?


그의 저서 중 '책 한번 써봅시다'에서도 그는 이러한 생각을 드러냈다. 그는 책을 쓰는 사람, 읽는 사람을 지원하는 국가 지원 사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공익적 가치가 충분하고 큰돈이 들 것 같지도 않은데 국가 예산으로 그런 사업을 지원하면 좋겠다. 긴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늘어나면 사회가 발전한다. 이해와 성찰의 총량이 그만큼 증가한다는 뜻이므로. 반대로 사람들이 한 줄짜리 댓글에 몰두하는 사회는 얕고 비참하다. (장강명, '책 한번 써봅시다', 286p)


그의 글 자체에 딴지 걸려는 건 아니다. 그저 그의 글을 읽고, 그의 이번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글들을 읽고 든 생각이다.




물론 나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싶은 것에는 동의한다. 그리고 책산업이 잘되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진 이가 해롭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 사회에 이득이 되는 방향의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종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이 생활의 많은 부분을 저절로 해결해 준다고 믿는 것 같다. 


다른 새로운 취미를 탐색해보지 않고 책 읽기에만 골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난 오히려 책이나 콘텐츠를 그만보고 현실의 문제를 좀 챙기라고, 혹은 새로운 활동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많다.


책 읽기 외에 운전이나 외국어 공부,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악기 등을 배우기, 세금 내기, 절약하기, 돈 벌기, 운동하기, 건강 정보 보기, 가족에게 필요한 것 제공하기, 아이나 노인 돌보기, 봉사활동, 청소하기, 집안에 필요한 물품 사기 등을 하면 좋겠다.


책 읽기는 물론 좋은 취미이지만, 혼자서 할 수 있고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손쉽게 할 수 있는 취미이기도 하다. 무언가 도전을 하는 느낌의 취미는 아닌 것이다. (아주 어려운 책을 어떤 그룹과 함께 공부한다는 특수상황을 제외한다면..)


책 쓰는 사람이 책을 많이 읽으라는 쓴 글을, 아마 책으로 자신의 문제들을 많이 회피하고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보통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하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미 책을 많이 읽고 있는 사람들이며, 사실 그 사람들이 들어야 할 말은 어쩌면 책을 좀 그만 읽으라는 말이지 않을까.


항상 책을 더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책 읽자는 소리에 책을 안 읽고, 책 읽기 말고 다른 걸 좀 했으면 좋겠는 사람들이 더더더 책을 읽는다.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조언의 대상은 물론 나 포함이다. 실제로 어떤 상담에서 상담사는 나에게 책이나 콘텐츠로 현실 도피하는 건 아니냐고 물어본 적 있는데 굉장히 찔리는 질문이었다.


남는 시간에 뭘 할지 찾아보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귀찮아 '책이나 읽자'며 새로운 일을 탐색하지 않았던 시간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성공한 사람들도 다 책을 읽는댔어'라면서 책으로 도피한 시간들.


나에게도 '책을 더 읽어'라는 말보다는 '책만 읽지 말고 너 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여'라는 말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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