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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경 Jun 23. 2023

글 잘 쓰려면 '나는' 빼라고요?

'나는'이라는 방패막이

글을 잘 쓰려면 '나는'이라는 단어를 문장에서 빼라, '그리고'라든지 '그래서'와 같은 접속어를 빼라, 짧게 써라, '것이다' 등 '것'을 쓰지 말고 적절한 단어를 활용하라 등의 이야기를 한 번씩은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내 글에 '나는'이 너무 많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 김에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물론 저런 글쓰기 조언들을 잘 듣고 따르면 문장이 깔끔해질 수 있다. 책을 내고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으려면 저런 조언을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기사를 쓰면서 데스킹을 받을 때 가장 많이 지적당한 것이 글쓰기 기본 요법에 대한 것이나 맞춤법, 비문과 같은 점이었다. "너의 생각이나 관점은 알겠고 한번 읽어볼 만 한데 문장이 더 깔끔해져야 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문장을 잘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종종 책을 내는 친구들의 문장을 보면 '문장을 참 잘 쓰는구나', '어떻게 저런 문장을 쓰지?' 같은 생각이 드는 글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은 대부분 '생각은 재미있는데 문장이 투박하네'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왜 난 저런 글쓰기 비법들을 잘 따르지도 않고 멋대로 써대는 것일까. 버릇을 고치고 싶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다. 내 장점은 보통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것이 정말 맞는 방향이면 조금 불만을 할지언정 잘 수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글쓰기 비법들에 대한 반복된 잔소리에 겉으로는 '고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런 것들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안 고치겠지.


그 이유를 굳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오히려 내 글쓰기에서 '나는'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은 일종의 방패막이다.


글 형식이 에세이이기에 더욱 그렇다. 에세이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의 생각은 조금 꼰대스러운 면이 있다. 기본 성품이 안전지향적이다 보니 생각도 보수적인 면모가 있다. 말을 줄이고 글을 줄이는 것이 신상에 이롭고 세상에도 이로울 수 있으나, 글쓰기가 업이기도 하고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얼마 없는 일이기에 '내 글이 싫은 사람은 그냥 지나가길...'바라며 글을 쓰고 있다. 혹은 글에 반격을 할만한 건덕지를 미리 글에서 언급해 두는 편이기도 하다. 그래서 글이 구구절절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내 글에는 '나는'이라는 말이 필수적이다. 그저 내 이야기일 뿐이고 내 생각일 뿐이라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며, 동의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를 내포해 '나는'이라는 말을 쓴다. 마음속 깊이에서는 다른 사람은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더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어쩌면 비굴한 태도이지만 사람이 그런 걸 어떡하나.




예를 들어 '나는 돈을 좋아한다.'라는 문장이 있다. 글쓰기 조언을 따라 '나는'을 빼고 '돈을 좋아한다.'라고 써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문장도 깔끔해진다. 


그러나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저 문장이 아니다. 약간 비장해 보이고 멋을 낸 문장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비장하거나 생각을 꾸며내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문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소설이나 시를 못 읽는다. 나에겐 너무 작위적인 텍스트들이 많다. 


'나는 돈을 좋아한다'라는 짧은 문장에서 오히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돈도 돈이지만 '나'이다. '나'는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니깐. 다른 사람은 굳이 돈을 안 좋아해도 되고, 그저 내 이야기니깐 마음에 안 들어도 그냥 넘어가달라는 호소(?)를 담아보기도 한 것이다.   

 


기사를 쓸 때나 에세이를 쓸 때나 '내 생각이 맞아, 왜냐하면 이러저러하니깐~'이렇게 흘러가는 글이나 혹은 '사회는 이렇게 흘러가야 한다!' 땅땅땅! 이런 식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글을 쓸 깜냥도 안된다. 기자 초년생 때는 뭣도 모르고 그런 글을 쓴 것 같지만 후회가 되는 점도 있다.


요즘엔 그저 '내가 오늘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한번 들어볼래? 재미있는지' 정도의 마음으로 글을 쓴다.


물론 그 누구도 나의 주절거림을 들어줄 의무는 없다. 내 생각에 동의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래서 나는 글 앞에 방패막이로 '나는'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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