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쫄보의 소소한 고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는 고등학생 때에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두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가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관계에 있어서 불편함이 생기는 일을 남들보다 더 견디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런 상황을 마주하기보다는 나의 의지를 뒤로 미루고 지인들에게 맞추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해서 배려라는 이름으로 각각의 사람들에게 맞춤형 인간으로 살게 되었다. 맞춤형 인간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상대에 대한 불편함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이해심과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라 착각하며 살았다. 흔히 말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와 비슷한 성향이었던 듯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이해하고 싶었고, 다툼이 싫었던 나에게 처음으로 나의 잘못이 없는데 관계가 깨진 경험을 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나름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같은 남자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로(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그 시절 그 이유 말고는 도무지 그 언니가 갑자기 나에게 차가워진 것을 알 수 없었다) 영문도 없이 관계가 깨지는 경험을 하였다. 감정이 예민하고 말 한마디 하나에 울고 웃었던 고등학교 때 시절을 생각하면 그렇게 불안정하고 두려운 것이 많은 때였기에 나도 모르는 나의 잘못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에게 잘 맞추며 지내온 나는 그것을 버리게 된 시점을 마주하게 된다. 약 3년 전, 일을 하면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는 인상도 좋고 늘 웃는 얼굴로 타인들을 마주하고 맡은 바 일도 열심히 하는 듯 보였다. 인상이 좋은 편이라 주변 사람들도 좋은 피드백을 하였었고, 단기 해외파견의 특수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들이 좋아 보였다. 단기간의 해외에서의 일을 마치고 한국에 오면서 자연스럽게 만나기 시작했고 1년 같은 100일을 만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는 늘 나를 배려하고 좋아해 주는 선한 사람의 외면을 가졌지만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가 주장을 하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를 비난하고 비판하며 내가 비정상적이고 잘못한 사람처럼 만들었다. 관계와 태도에 관한 이야기, 나의 주변 사람들을 만날 때의 태도 등등 같이 시간을 보낼수록 말로 받는 상처는 도를 넘어섰고 그는 순간 화가 나서 말이 잘 못 나왔다고 자신이 정말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울면서 사과하는 일을 반복했다. 나도 그를 좋아했고 그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기에 그리고 그는 내가 상처 받아 힘들어하는 모습에 본인도 힘들어하고 미안해했기에 계속 참아왔지만 나도 모르게 반복되는 상황에 지쳐갔고 만난 지 두 달만에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감정과 관계의 골 모두 깊어져 갔다. 결국 홧김에 헤어지자는 그의 말에 나는 승낙했지만 그는 본인이 홧김에 말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헤어지는 과정도 많이 괴로워하며 우리는 헤어졌다.
1년 같은 3개월의 만남을 가지면서, 그저 참고 이해하는 것이 관계를 위해 좋은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특히 연인관계에서 말이다. 물론 그전에 만났던 나의 연인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 또한 그와의 연애가 끝나고 절실히 깨달았다.
좋은 사람은 상대방에게 잘 맞추고, 인내심이 강하다 못해 그것이 배려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이의 기분을 살피고 변화된 분위기에서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나 때문인가?"라고 생각하는 쫄보 근성은 상대방도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고 나 스스로는 그 사람과의 간격을 적당히 유지하다가 어떤 이들은 더 이상 내 곁에 남아있지 않기도 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쫄보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저 참고 이해 안 되는 부분까지 체념하며 이해와 배려라는 이름으로 넘어가기보다는 진짜 날 것의 나의 감정과 마음, 생각을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내가 싫다면 억지로 맞춰주지 않는 연습부터가 나를 사랑하는 것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그와 헤어졌고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아직도 하고 있는 나는 그때의 나보다 덜 참고, 적당한 배려와 이해 그리고 적당한 체념으로 내가 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적당한 소심함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좋은 사람은 누구나 함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그것이 무조건 상대방에게 맞추기 위해 나를 맞춤형으로 상대에 따라 변신시키는 쫄보는 아니었던 것이다. 김 쫄보는 오늘도 나를 사랑하고 아껴보며, 함께하는 이들과 즐겁게 지낼 방법을 이리저리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