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쫄보의 소소한 고민
입사 8년 차, 정확하게 입사한 지 7년 6개월이 되어 간다. 사실 이직이든 퇴사든 누가 생각해도 소소한 고민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또 굉장히 큰 고민은 아니지 않을까? 우리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이직과 퇴사가 나에게 소소한 고민이 된 까닭은 너무 오랜 기간 동안 고민을 해와서 일상의 동반자 같기도 하고 습관 같기도 하며 정말 이직이나 퇴사를 하게 된다면 늘 함께 했던 친구와 헤어진 느낌을 받을 것 같달까? 흔히 3년, 6년, 9년에 직장에서 위기를 마주하게 된다고 했다. 난 흔하지 않게, 어쩌면 다행히 입사 후 담당 업무 변경으로 인해 5년 차쯤에 위기가 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야근수당도 못 받고 휴가도 은근히 눈치를 받으면서 월급도 많지 않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나의 20대를 이렇게 흘려보내는 게 맞는 걸까?
나와 비슷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실 다른 회사도 별 다른 게 없어 보였다. 윗사람 눈치 보는 것, 업무에 대해 주장을 했지만 고려 대상은커녕 무시당하는 일, 왜 월급 루팡은 모든 회사에 한 두 명씩 있는 것인지.. 결정적으로 어떤 날은 그나마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메여서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앞서 말한 이유로 비슷할 테니 그냥 익숙한 곳에 있는 게 나을 수도 있다며 합리화하기도 했다. 이직을 하자니 내가 일하는 분야는 너무 협소한 것 같고, 이직을 해도 큰 변화는 없을 것 같고 아무리 생각해도 끝을 알 수 없는 고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분명 힘든 부분과 한계를 부딪힌 부분이 있어 이직을 하고 싶지만 수만 가지 핑계를 대며 나는 이직이 어렵다고 결론을 냈지만, 그 또한 핑계임을 알기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갖가지 정보를 모아 머무르는 것과 이직의 기회비용과 스트레스 등을 비교해가며 1여 년을 고민했다. 그 와중에 일은 대충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나름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며 커리어를 쌓은 것도 누군가가 나의 이직 고민을 알게 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나의 쫄보 근성은 이직에 대한 고민을 1년이 넘게 유지하는데 큰 힘이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대학생 때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고 혼자 살게 된 이후 집에는 드리퍼와 원두로 커피를 즐겼으며 회사에서는 캡슐커피를 마신다. 커피가 좋아서 자연스럽게 카페에 관심이 많아지던 한 때는 적당히 일하다가 꼭 나만의 카페를 차려서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지 라는 모두가 꾸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동생이 카페 프랜차이즈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매일 손님을 응대하고 하루 종일 서 있어서 살이 쪽쪽 빠지고 힘들어하는 동생을 보면서 안쓰러웠다. 그냥저냥 일을 할 줄 알았던 동생은 커피 박람회도 다녀오고 책도 보면서 커피 공부를 시작한 모습을 보다가,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퇴직금을 받고 창업지원을 받아서 동생과 둘이 카페를 하는 건 어떨까? 요즘 카페 프랜차이즈들도 어려워서 없어지는 곳들도 있고 개인 빵집, 개인 카페, 독립 서점 등이 아주 잘되진 않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획일화된 맛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선호하는 분위기와 맛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혼자서 이리저리 퇴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카페는 어느 정도 규모이면 좋을까, 동생이랑 둘이서만 할 수 있을까, 어디서 해야 하지 너무 손님이 많으면 힘드니까 학교 앞은 아닌 건가, 카페 창업은 대략 얼마나 돈이 있어야 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1년 넘게 고민하면서 이직도 못한 내가 과연 퇴사를 하고 창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반짝거리며 부상했던 퇴사에 대한 결심은 마음속 깊이 사라져 버렸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다는데 나조차도 역시 다르지 않았고 잠깐의 상상이 잠시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다시 이직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와서 이직을 하게 되면 지금 다니는 곳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지? 몸이 아파서 그만둔다고 해야 하나? 어디로 이직 한다고 말해야 하나? 이직한 회사에서 나한테 실망하면 어쩌지? 사람들이랑 안 맞으면 어쩌지? 이 정도면 괜찮다가 아니라 이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면 계속 다닐 수 있을까? 등등.. 나의 쫄보 근성은 이직에 대한 고민을 2년째로 접어들면서 더욱더 구체적인 고민들을 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며, 우리가 하는 고민들 중 약 90% 정도는 일어나지 않을 고민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쫄보 근성은 이직 고민은 내 친구로 만들어주었고 꼬리물기가 어디까지 가능한지 반추해보기도 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의 고민은 나름의 결론을 만들었다. 지금보다 큰 규모의 회사로 이직할 것.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오기 전에.
나름의 이직의 이유들을 나열하고 그 이유들이 해결된다면 나는 이직을 하지 않을 것인지도 나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았다. A라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머지 문제들은 그대로라면? B는 해결되지만 나머지는 그대로라면? 이직의 이유를 나열하고 고민해도 답은 이직을 한다 였기에 나름의 다양한 고민들이 만들어 낸 결론으로 결론을 바탕으로 결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직을 한다고 결정한 이후로는 회사가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자기 객관화 시간을 가져보았지만 쫄보 근성은 나를 바닥으로 이끌었고 바닥에서 한 계단 씩 올라가는 일은 주변 지인들의 따뜻한 말과 이성적 평가, 조언으로 가능했다.
소소한 고민들이 모여, 2년간 이직과 퇴직을 고민한 나는 이직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