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퇴사했습니다.
나는 귀여운 월급을 받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았던 사람이다. 같은 분야에서 10여 년가량 일하면서 단 하루도 출근하고 싶지 않은 날이 없었고, 일이 많아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어 빨리 퇴근하고 쉬고 싶었던 적은 있었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싫었던 적도 없었다. 두 번의 이직을 겪으면서 넓어지는 나의 업무 범위와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업무 환경에서 더 나은 내가 되어 이전보다 더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건 습관처럼 당연한 것들이었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성장지향러라서인지 두 번의 이직을 하면서 석사 공부도 진행했었고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면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이 아니었다면 졸업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하는 의문도 자연스럽게 생길 정도로 나의 삶은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수업이 시작하는 6시 50분까지 몰입에 몰입에 몰입을 더해 일을 마치고, 휴대전화에 있는 온라인 수업 어플에 접속해서 출석체크를 하고 귀로 수업을 들으며 퇴근을 했다. 어떤 때에는 사무실을 미처 떠나지 못하고 수업을 내내 들었던 기억도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나 동료들도 늘 더 좋은 프로젝트를 위해, 혹은 프로젝트를 위한 사업비를 배정받기 위해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하고 지금 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열심히 하고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반짝이고 있었기에 이렇게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10여 년 동안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누군가의 삶에 더 나은 변화를 가질 수 있는 아주 작은 기회라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동기부여와 누군가에게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자리에서 있는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일했다. 조금 고생스러워도 네팔에 있는 한 아이는 매번 말썽을 부리고 공부도 안 하던 아이였는데 도서관 프로그램 중 아침식사를 하고 영어공부의 기초를 가르쳐주는 아침 교실에 참여한 뒤로 공부와 숙제도 열심히 하고 말썽 부리는 횟수가 줄었다는 이야기, 에콰도르의 긴급구호 현장에서 정부도 신경 쓰지 않는 우리를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 기억해주어 고맙다는 이야기, 우연히 만난 학교 완공 행사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재난을 대피하고 예방하는 훈련을 하고 싶으니 같이 프로젝트를 하자고 제안받았던 상황 등등 시간이 지나서 지금 돌아보면 굵직한 에피소드만 떠오르지만 일을 하면서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적어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 아주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일이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이 혹시나 현장의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어서도 안되고, 필요 없는 것들을 제공해서도 안되며, 누군가가 보기에 억지스러운 일도 아니어야 했다. 이런 문제가 나의 부족함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더더욱 없어야 했고, 나뿐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생각과 자세를 바탕으로 일하다 보니, 일에 대한 기준과 바라는 것들은 점점 높아져 갔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남들은 나에게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고 했지만, 나 스스로의 일을 돌아봤을 때 만족한 적도 완벽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기에 그런 성향이 아니라고 흘려듣곤 했다. 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들이야말로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완벽에 가까운 모양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성장지향러이자 완벽주의 성향의 혼합체여서일까, 어느 정도 연차가 되었을 때 예전만큼 하는 일이 즐겁지도 않고 감사한 마음은 줄어들게 되니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소화가 안되어서 주 몇 회는 소화제를 먹거나 자주 위염을 만나보니 병원을 안 가도 위염을 인지하고 병원 가서 약 받아와야지 하기도 하고, 책상 서랍에는 늘 타이레놀이 있었으며 언젠가부터는 잠도 잘 자지 못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어떤 날은 우리끼리 회전초밥 회의라고 불렀던 같은 이슈를 하루 종일 다른 단체 사람들이랑 회의하기도 하고 주 평균 10-15회 정도의 회의한 적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퇴근해서 그냥 가만히 누워있기만 했다. 음악소리도 아무리 재미있는 예능이어도 사람 말소리가 듣기 싫었고 나도 말을 하기 싫어서 정말 멍하니 누워있었다. 회의를 많이 하지 않는 퇴근한 저녁의 어느 날이나 주말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되는 영상과 넥플릭스의 봐도 봐도 끝이 없는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뭐 하고 있어?라는 질문에 그냥 누워있어 라는 답변을 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자도 자도 피곤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귀찮고 언제부턴가 웃는 내가 어색하고 심지어 무뚝뚝한 말투에 업무적으로 만난 분이 처음엔 약간 무서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살고 싶었는데 지금의 나는 내가 봐도 정말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 같았다. 피곤하고 예민하고 귀찮음으로 뭉쳐져 일상을 보내고 일에 모든 에너지를 부어 넣는 삶은 나 스스로가 마음도, 감정도, 표정도 살펴볼 수 없을 정도로 팍팍하고 꽉 막혀있었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울거나 어디다가 무언가를 토해내어도 좋을 텐데 그마저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닌데, 과거에 밝고 씩씩하고 잘 웃었던 내가 계속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