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퇴사했습니다.
친구들은 해외출장을 많이 다니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어떤 누군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복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에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설명했었다. 비행기 탄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이 여행 가는 여행지 같은 곳이 아닌 이동만 24시간 이상이 되는 개도국의 어느 도시로 가야 한다는 둥 이런 말을 하면 친구들은 그래도 비행기를 타는 거 자체가 좋지 않냐고 배부른 소리를 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해외출장을 많이 가던, 한국에서 문서 작업과 사람들과의 조율 작업을 많이 하던, 교육이나 행사를 기획하는 일이던지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아주 작은 기회를 만드는데 조금이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은 힘들어도 그 순간을 버티거나 넘어설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고, 무례하거나 어려운 상사 밑에서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동아줄 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애초에 사람을 향한 마음, 가치가 중요해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 가치와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꾸준히 그것도 재미있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입에서는 일이 재미없다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그래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열심히 해야지라고 다독이는 내가 있었다.
소화불량과 두통, 잠자리를 조금씩 설치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나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번아웃 증상을 겪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내가 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일은 변하지 않았는데 나 스스로에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작은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고 제대로 회고도 하기 전에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해야만 했고 어떤 때에는 두세 개씩 동시에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있다 보니 어떤 것이 끝났어도 쉴 틈 없이 남은 에너지를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쏟아 넣어야 했다. 그래서 일이 너무 많고 지치고 쉴 틈이 없고 부서원들과 스몰토크도 나누지 못할 정도로 숨 가쁘게 달렸기 때문에 일이 재미가 없는 줄 알았다. 정신없이 일을 하던 와중에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누군가가 도움이 되었다는 말, 내가 그렸던 모양대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마주했을 때,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피드백 등을 받았을 때, 그래 맞아! 내가 이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을 잘 살펴보지 못해서 일이 재미없었던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건 정말 내 생각일 뿐이었다. 자잘한 피드백들로 내가 움직일 동력이 생긴 줄 알고 달리기 준비를 했지만, 출발선에서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를 듣기 위해 온몸이 긴장된 선수가 미처 때가 아닐 때 뛰어나가 부정출발을 하듯이 생각과 달리 나는 고꾸라졌다. 그리고 나는 무릎과 손바닥이 까진 상처를 가지고 결승점을 향해 계속 뛰었다. 결과는 만들어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는데 치료도 하지 않고 경기에 참여하는 운동선수가 어디 있을까 싶지만 그게 나의 모습이었다. 건강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해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인터넷에서 보는 번아웃 이야기는 모두 다 나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놀고 싶어서 출근하기 싫었던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면서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내가 하는 일 중 하나는 국외에서 발생하는 큰 재난에 대해서 한국의 단체들의 대응을 확인하고 지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조사하는 것이 있었다. 기사나 자료에서 보는 사망자 수와 피해자 수를 바라볼 때, 매번 자연재해든 전쟁이든 그로인해 피해받는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어 가끔은 눈물도 흘러나왔었지만 지금의 나에게 내 눈에 많고 적음을 따지는 숫자로만 보였고 발생한 이슈들은 내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추가적인 업무로만 다가왔다.
그렇게 좋아했던 일이 싫어졌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좋아해서 의미 있어서 하는 일인데, 이젠 좋아하지 않는 일이 되었다는 사실이 결혼하기로 했던 사람이 싫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절대 평생 싫어하면 안 되는 것을 싫어하게 된 상태가 온 것 같았다. 나에게는 이것뿐이고 이것 말고는 할 줄 아는 일도 없는데, 내가 일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들도 그냥 회사 다니니까, 나도 남들처럼 회사 다니듯 다니면 되려나. 나는 정말 이 일이 좋지 않을 걸까. 그렇게나 하고 싶어 했었던, 좋아해서 나의 20대와 30대의 10여년의 시간을 가득채운 이 일을 더 이상 좋아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내가 나를 배신한 듯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