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퇴사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나를 데리고 사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괴로웠다. 꾸역꾸역 출근을 하면서 마음 한 켠에서 쏟아지는 질문들에 고민에 고민만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그만두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심리 상담을 받아보면 지금보다 조금 낫지 않을까? 부서장과 논의해서 짧은 휴직이라도 다녀오면 나을까? 다시 이직을 할까? 조금 긴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런 마음과 기분을 환기시키면서 근근히 연장하면 살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등등 내가 할 수 있거나 혹은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방법들을 찾아보며 그만두지 않고 일이 재미없는 이 시기만 잘 넘어가길 바라던 중 몸이 여기저기 아파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출근길에 어지럼증을 심각하게 느끼고 나서는 일을 그만두고 쉬지 않고 버틴다면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친구처럼 따라다녔다.
이직도 아니고 퇴사라니. 퇴사를 진짜 네가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스스로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퇴사가 아니라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잠시 휴직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으로 회사 내규를 찾아보니 2개월이 가장 긴 휴직이었다. (물론 아주 슬프게도 개인의 심신 어려움이라는 사유로 휴직은 불가능했다.) 이보다 긴 휴직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뿐이었다. 만약 휴직을 받을 수 있다 해도 과연 2개월의 휴직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2개월의 쉼으로 회복이 가능한 것이라면 지금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돌보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퇴사를 생각하고 가장 먼저 들었던 나의 걱정은 짧아야 3~4개월 길게는 6개월에서 1년의 휴식기간을 가지고 난 후 내가 다시 일할 곳이 있을까? 였다. 내가 일하는 분야는 비영리이다 보니 인건비가 커지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기관들이 많은데 경력이 10년이 넘어가는 나를 쉽게 받아줄 곳이 있을지 복귀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직처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 아무런 계획 없이 쉬는 동안 업계 내에서 진행되었던 이슈에 대한 내용도 잘 모를 것이고, 일하는 조직에 떠나 있다 보니 쉼 모드에서 업무 모드로 나를 바꾸어 적응하는 과정에서 이전처럼 일하지 못해 누군가를 실망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이 들었고 충분히 쉬고 다시 일하고 싶을 시점에 나라는 사람이 여전히 이 분야에서 쓸모 있는 사람일까 싶었다. 두 번째 걱정은 지금도 10년 이상의 연차이나 대기업 초봉 어디즈음 수준의 귀여운 월급으로 살고 있는데 이마저의 수입도 없이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쉴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퇴사 후 몇 개월 정도야 그동안 모아둔 돈과 퇴직금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만 나 스스로가 다시 일하고 싶다고 느낄 시점까지 이 귀한 시간을 충분히 편안하게 쓸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섰다. 줄어드는 잔고를 보며 쉬는 기간을 얼마나 잘 누리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기는 할까. 현실적인 질문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세 번째 나의 걱정은 이 정도 경력과 연차의 사람들은 다들 힘들게 일하는 것 같은데 나만 유난스럽게 힘들다고 그만두는 것은 아닌가? 싶은 부분이었다. 나보다 더 오래된 연차의 선배님?! 들도 이리저리 잘 버티고 있는데 남들보다 인내심이나 참을성이 부족하거나 내가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놓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 이렇게 포기를 해버리면 다음에도 힘든 순간이 왔을 때 또 포기해버리면 어쩌지. 하는 염려도 덤으로 따라왔다. 10년을 넘게 버틴 거면 인내심이나 참을성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2번의 이직도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나도 내 선택인데 여기서 포기하면 나의 선택에 무책임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네 번째로는 같이 일하던 부서원 공백으로 인해 최근 업무분장 재배치를 하였고 부서장 밑에서 나름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했던 내 자리와 역할에 대한 것이다. 일하는 분야 내 인력이 많지 않음을 알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고 나 혼자 살겠다고 남은 이들에게 더 큰 짐을 나누어주는 빌런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나름 좋은 선배이고 싶었고, 어디서든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고 싶었는데 나의 마지막은 부서가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 혼자 살고 싶어 뛰쳐나간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욕심이 덕지덕지 발라진 걱정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참아야 해, 견뎌야 해, 조금 더 나아질 거야 라는 작은 희망의 끈을 붙잡고 계속 일했던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의 포장지를 벗기고 나를 돌보기 위해 퇴사하기까지, 나 스스로 던졌던 수많은 질문의 호수 속에서 마음의 결정이란 목표로 노를 저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