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읏짜- 으으읏짜
드디어 레슨 첫날.
눈이 한가득 내린 날, 쌓인 눈들을 지그시 밟아가며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을 가지고 피아노 학원으로 향했다. 괜히 피아노를 한 번 치고 손이라도 풀고 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 선생님의 가르침을 잘 못 따라가면 어쩌지 하는 여러 생각의 꼬리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문 앞에 도착해 있는 내가 있다. 딸랑 소리를 내며 문을 여니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생님이 지금은 방들이 비어있으니 원하는 피아노실을 선택하라고 하신다. 등록 상담받은 날 빼고 여긴 처음인데, 나에겐 그냥 다 똑같은 피아노 방이라 그냥 눈앞에 입구랑 가장 가까운 방을 고르니 첫 수업 하시는 분들은 다 이 방에서 시작한다고 선생님의 밝은 말들이 내 귀로 들어왔다.
피아노라니. 얼마 만에 피아노 앞에 앉아보는가. 집에 건반은 있지만 피아노는 없는터라 뚜껑이 열려있는 피아노 앞에 앉은 나 자신도 낯설다.
간단한 코드에 대한 설명 후, 재즈피아노는 스윙리듬부터 시작한다고 하시며 교재를 폈는데, 나의 첫 연습곡이 방탄소년단의 DNA다.(운명이다!!!!!! 적어도 지겨워지지는 않을 거야라고 내적댄스를 신나게 춰본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BTS... 아시죠?"라고 묻는데 좋아한다고 아미라고는 말 못 하고 "네, 그럼요. 알죠 알죠."라고 낯가리며 고개만 꾸닥거렸다. 악보 초견(악보를 처음 보고 파악하는 정도)을 어느 정도 보는지, 피아노 연주 실력을 확인하게 그냥 한 번 쳐보라고 하셨는데.. 나도 모르는 연주 습관과 어렸을 때의 학습은 진짜 무시 못한다.(무엇이든 쏙쏙 흡수하는 아가들에게 정말 잘해줘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ㅠㅠ) 악보를 처음 보자마자 '내가 칠 수 있을까? 정말 창피해지면 어쩌지..' 하는 마음의 소리는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느낌상 10년 이상을 피아노 앞에 앉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악보보고 뚱땅거리며 치고 있는 내가 참으로 어색하기만 했다.
나의 초견을 바탕으로 선생님의 맞춤형이자 반짝이는 가르침이 시작되었는데 우선 손의 긴장감이 높다는 것, 주로 왼손이 치는 낮음 음역대의 부분은 울림이 크고 (피아노의) 줄이 굵기 때문에 오른손이 치는 높은 음역대의 부분과 동일한 힘으로 쳤을 때 소리가 더 큰 느낌이 난다는 것(이건 진짜 아무도 안 알려줬어!! 왜 안 알려준 거람?!), 계란을 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늘 피아노를 쳐야 한다는 손모양은 필요 없이 그냥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중력이 끈다는 느낌으로 건반을 눌러도 충분하다는 것(손모양이 필요 없다고요..?? 전 예전에 손목 높이 잔소리도 들었던 것 같은데요 슨상님..ㅠ) 등이었다. 나의 또래 친구들 중 피아노를 좀 배웠다 싶은 친구들도 이런 말을 들으면 많이 놀라지 않을까??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내가 유의해서 연주해야 하는 부분은 1) 왼손의 힘을 오른손보다 더 많이 빼기, 2) 피아노를 꾹꾹 누르지 않기, 3) 피아노를 손 끝이 아닌 손가락을 펴는 느낌으로 살 있는 곳으로 치기였다. 얼마 만에 치는 피아노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계속 기억해야 하는 부분들이 이렇게나 있다니. 첫술에 배부르랴 일단 힘 빼기부터 여러 번 치다 보니 조금씩 느낌은 알 것 같다.
피아노 학원에 등록할 때의 나는 이미 유려하게 내가 원하는 곡을 재즈풍으로 바꾸어 치는 모습이었는데, 나의 첫 레슨은 DNA 인트로 2줄, 16마디를 힘 빼고 치는 방법을 선생님의 즉각적인 코멘트를 들으며 연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역시 나는 욕심쟁이) 손에 힘 빼기를 넘어 또 다른 난관은 읏-짜였다. 4분의 4박자는 강약중강약이 우리 모두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우는 것인데, 스윙에선 읏-짜 박자다. 2박자를 3 등분해서 뒷박에 텐션을 주는 것인데 붙점이랑은 또 다르다.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것을 들으면 느낌은 알겠는데, 내 손은 굉장히 깨발랄하게 통통 튀면서 붙점을 연주하고 있다.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 현상은 정말 오랜만이다. 피아노에 달려있는 구슬을 움직이며 "우리 이렇게 5번만 해봐요." "이 부분은 정말 잘했는데 여기는 너무 통통 튀었어요." "제가 아무 말을 안 한 것은 잘한 거예요. 긴장하지 마세요."라고 잔잔히 코멘트를 주시는 선생님과 휘리릭 한 시간을 보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집중하고 쳤을 때보다 뭔가 이런 건가?라는 느낌으로 어슬렁 거리듯이 치면 그게 맞다고 좋아하는 선생님의 리액션에 내가 뭘 치긴 친 걸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칭찬을 들으니 앞으로 두 시간은 똑같은 걸 더 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나는 칭찬에 약한 아이)
악보에 아무리 표기를 한들, 그게 연주되는 느.낌.은 선생님이랑 나랑 아는 것이기에, 친절한 우리 선생님은 원하면 자신이 치는 것을 영상으로 녹화해 준다 하신다. 어렸을 때도 이런 게 있었으면 좀 더 재밌게 피아노를 배웠으려나 싶은 생각도 잠시 해본다.
첫 레슨이 앉아서 선생님이랑 몇 번 뚱땅거리고 한 30분 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선생님이 연습 더 하고 갈 것인지 물어보셨다. 근래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간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중도가 높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아, 맞아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었지 싶었다. 내가 움직여 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이어져서 음악 비스무리하게 되는 것.
그리고 선생님이 해준 말 중 기억에 남는 말.
재즈에선 정답이 없어요. 정말 아닌 코드 몇 개만 피하면 이게 제 스타일이고 제 방식이에요.라고 말하면 그게 재즈일 수 있어요.
나의 발전이, 학습이 나에게 무엇을 남길까. 무용한 것들에 깊은 에너지를 쓰고 시간을 쓰게 되었을 때, 남는 흔적이 무엇일지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첫 수업일지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