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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Sep 25. 2023

스며들 아주 작은 틈

산책의 언어, 우숙영


집순이는 비를 반기지도 반기지 않지도 않는다. 비가 올 때 창을 열어두고 맡는 비냄새나 빗소리를 실내에서 즐기고 바라보다 보면, 특히 커다란 유리가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창을 살 짝 열어 시간을 보내며 '비 멍'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진짜 시간이 잘 흘러간다. 비가 오면 여러 핑계 삼아 나가기 싫어한다. 바지랑 신발이 젖고 양말도 젖는다. 가끔은 가방과 가방 안 물건들도 물기를 머금게 되는 때도 있다. 우산이 무겁다.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는 우산 넣은 가방이 무거워진다. 추워진다 등등의 핑계는 찾으면 찾을수록 많아진다. 비가 오면 당연히 산책은 못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함께 아침 글쓰기를 하는 메이트가 오늘 나를 위한 한 가지로 우중산책을 적어둔 것을 보고 아, 나는 비가 오면 나갈 생각을 안 했는데 우중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나도 나가볼까 싶어졌다. 생각을 하니 문득,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친구가 비 오는 날에 투명 우산을 쓰고 비가 오는 것을 즐기며 걸어 다니는 것, 장화를 신고 물 웅덩이를 거침없이 건너는 것이 재미있어서 좋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집순이에게 더더더욱 집에 있을 수 있는 핑계가 되어주고 '비 멍'을 도와주는 것 외에 나에게는 '비'에 대한 것이 전부였는데 오늘의 우중산책이 작은 틈이 되었다. 목적지 없이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장화를 신어 아직 뽀송한 내 발을 느끼며 온도가 급격히 변한 공기를 느끼며 걸었다. 한껏 비 샤워를 하고 있는 나무들과 풀들이 눈에 들어온다. 막상 걸어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그냥 마냥 집에 빨리 돌아가서 뽀송한 나의 보금자리를 누리고 싶어질 줄 알았는데, 비가 오지 않았을 때 느끼지 못했던 우중산책의 색다른 면을 발견하면서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우비를 사서 입고 본격적으로 우중산책을 즐겨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내가 만든 틈으로 비가 스며들었다. 아마도 다음에 만난 비는 더 많이 스며들겠지. 이러다 어쩌면 나도 비 오는 날의 산책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비의 틈을 허락했으니, 사람에게도 틈을 많이 보이는 나이면 좋겠다. 나도 모르게 사람 좋아 보이게 웃고 있지만 이 선을 넘지 말라고 은근한 하악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틈을 손에, 눈짓에, 표정에, 행동에, 걸음에 지녀 그 틈에 다양한 것들이 스며들었으면 한다. 오늘의 우중산책처럼 비가 될 수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될 수도, 몰랐던 풍경일 수도,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으니 상처받지 않겠다고 묶어둔 마음과 행동에 아주 작은 틈을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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