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 정수연
요즘은 예전에 비해 몇 살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 많이 사라졌다. 물론 아직도 누군가는 그런 말을 하지만. 그 말처럼 몇 살 때 무엇을 이루어야 했다로 치면 지금의 내 나이는 기승전결에서 승이나 전으로 가는 중인 걸까? 학창 시절 - 직장인 시절 - 지금의 때를 일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승에서 전으로 가는 길이거나 승에서 방금 빠져나온 때일지도 모르겠다.
처절하게 무언가를 도전하고 배워가고 성장했었던 때에는 그저 나의 부족함만 보이고 그 부족함을 채우려 발버둥을 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회초년생이지만 아무도 제대로 가르쳐주는 것 없어서 맨땅에 헤딩만 하고 있을 때, 정말 진심으로 뭐라도 알고 싶었다. 나름 신청할 수 있는 온갖 교육이란 교육은 신청해서 들어보기도 하고 잘 모르지만 장님이 코끼리를 알아보겠다고 더듬더듬 만지는 심정으로 외국 단체의 사례와 UN 기구들의 프레임워크와 지침 같은 것도 뒤적거리며 현장의 누군가에게 같이 해보자고 이야기도 했었다. 이런 것들을 우리도 해야 한다고, 해보자고. 이리저리 시도하고 넘어지면서 조금씩 성장했다. 마구잡이 식이었지만 혼자 발버둥 치면서 성장했고 어느새 뒤돌아보니 누군가에게 먼저 걸어간 선배가 되어 있었다. 부족하지만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보기도 했으며 잘 모르고 배움에 목이 말랐던 어린 나와 같은 친구들을 위해 무언가를 기획하고 제공할 수 있는 기회도 손에 쥘 수 있었다.
10여 년간의 직장 생활만 떼어보면 기승전결의 이야기의 흐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임시 졸업하고 쉬고 있는 지금의 나는 전체 인생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기에 아직 '기'의 단계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일 수도 '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단계일 수도 있다.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제대로 봐주는 것이고, 내가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삶에 대해 이런 것을 못했다 혹은 그 나이에 이러고 있냐는 말을 하더라도. 누가 인정하고 인정하지 않고를 떠나 아직 준비단계라면 준비단계인 것이고 상승세라면 신나게 상승세를 타고 올라가면서 즐거워하고 누리면 되는 거다. 문장처럼, 지나가야 그 시점이 '기'인지, '승'인지 알 수 있기에 지금의 나는 어디를 통과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지금의 내가 어디를 통과하고 있는지도 타인의 눈이 아닌 나의 눈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면 되는 거다. BTS의 진이 이런 말을 한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나의 수고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나만 알면 돼." 아마도 저 말을 내뱉기까지 많은 이들의 질타와 수군거림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흔들리지 않으려 고민하면서 내린 자신만의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력보다 내가 나 스스로 알아주는 수고와 노력으로 나만의 시기를 정하면서 살고 싶다. 나의 시간과 때와 정의는 내가 정하는 게 맞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