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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Sep 21. 2023

사랑과 미움의 눈덩이

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팔은 안으로 굽고 어여쁜 이는 웬만하면 계속 어여쁠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은 더 사랑스러워지는 것이 맞다. 정말 굴리면 굴리는 대로 동글동글 뚠뚠하게 커지는 눈덩이처럼 감정의 방향으로 마음과 감정이 데구루루 데구루루 굴러가다 보면 엄청난 배신 혹은 무언가 180도 뒤집을만한 사건을 만나 그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지 않는 이상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사람을 마구 미워했던 시기가 있다. 

진짜 너무 미웠다. 그래도 나는 밟으면 깨갱거려 보고 위협적이지는 않아도 작게 으르렁이라도 흉내 낼 수 있었지만 내 옆의 친구들은 그 사람의 동네북 같았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들거나 불만이 있으면 내 옆의 친구들에게 입에 칼을 물고 휘둘렀다. 정말 양껏. 친구들은 대책없이 상처입고 아파하고 작아져갔다. 


그래서 더 미워했던 것 같기도 하다. 미움의 덩이는 순식간에 불어났는데 그 미움덩이를 안고 사는 일이 더 괴로웠다. 미워하는 것보다 미움이 나에게서 조금도 거리를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 괴로웠다. 내 곁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미워하는 사람을 안 미워하는 척, 그 사람과 잘 지내는 척을 하고 속으로는 미움을 살 찌우고 있었고 엄한 말로 상처 주지 않을 수 있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행히 그 방법이 통해서 그 사람은 내 곁의 함께 일하는 친구들에게 모진 말을 하는 횟수가 줄어들었었다. 그도 관심과 사랑이 필요해서 자신을 봐달라고 남을 찔러댔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쓰다 보니 너무 짠하고 불쌍했다 우리. 


고되고 매우 괴로웠던 시절을 졸업하고 나서는 미움이라는 아이를 멀리하고 마음에 아예 들이지 않고 있다. 모든 관계에 있어 악의로 기울어지는 보기는 나에게 없다. 앞으로도 없고 싶다. 없을 예정이다. 부디 없기를 바란다. 미움을 품는 순간부터 정처 없이 굴러다니는 미움은 데구루루 굴러 눈덩이처럼 몸을 불려 나를 짓누르고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고 자세와 시선까지도 앗아갈테니. 

사랑하는 일로, 긍정적으로, 호의적으로 나의 마음과 감정의 덩이가 굴러가길 바란다. 사랑을 품고 굴리고 불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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