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하루 종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정은 얼마나 다양할까. 나이가 들면서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하는데, 누군가가 나의 얼굴을 보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몸이 아파서 퇴사하고 잔잔하게 생활하던 어느 날 거울 속의 내 표정을 마주하고 놀랐다. 세상 너무 힘들어 보이고 기운 없어 보이고 우울해 보였다. 나는 퇴사해서 잘 쉬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전보다 몸도 덜 아프고 잠도 잘 자는 것 같은데 얼굴이 왜 이모양이람, 하는 생각에 미소를 지어보았다. 거울 속 내 표정은 정말 안 웃고 싶은데 떨떠름하게 웃음을 강제로 짓는 사람의 표정처럼 어색했다. 하도 웃지를 않아서 얼굴의 웃는 근육들이 오랜만에 움직였던 것인지, 그저 내가 내 얼굴을 보는 일이 많지 않아서 웃는 얼굴이 어색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색했다. 모든 것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최근에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상상도 못 했었다. 나 스스로가 나의 웃는 표정을 보고 어색해할 줄은. 그리고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쓰는 사람처럼 웃는 얼굴의 근육들이 어색하고 이질적이었다. 다양한 표정을 가지지 못했던 때의 나의 얼굴을 표정만 멈춘 것이 아니라 얼굴 근육들도 경직되어 있었다는 것을 퇴사 후 몇 달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런 나를 알아차리고 난 뒤에는 생각이 날 때마다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이 밝아졌다는,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표정도 얼굴 근육들도 경직되어 어색한 미소를 짓는 표정과 이별한 것이 맞다.
사람들 앞에서의 나는, 우리는 모든 순간에 진실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늘 적당한 표정으로 살고 있지 않을까. 진심과 진심이 아닌 것이 늘 적당히 뒤섞인 표정으로 살고 있을 것 같다. 사람들 앞에서 거짓으로 산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앞에서는 실수할까 긴장되어 있기도 하고, 슬픔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애써 밝은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상대를 배려해서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기도 하니까 거짓보다는 진심을 온전히 내비치지 못하는 어와 나를 위한 아름답고 좋은, 우리의 관계를 원활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줄 적당한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함께 놀고 있는 시간이 너무 즐거워도 내향인인 나는 배터리가 남들보다 빨리 닳아 신체적 에너지가 고갈되면 점점 드러눕는 몸과 함께 적당한 마스크고 주르륵 무너져내려 흐리멍덩한 표정들이 튀어나온다. 감사하게도 그런 나의 흐리멍덩한 표정을 보며 걱정해 주는 이도 있고, 재미있어하는 이도 있고, 힘을 낼 수 있게 먹을 것을 챙겨주거나 푹신한 의자를 알려주며 잠시 충전하고 오라고 하는 이들이 곁에 있다.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생활하니 정말 나를 드러낼 진심 어린 표정은 작가의 문장처럼 스쳐가는 순간의 표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책에 나온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의 스치는 순간의 표정을 알아챌 수 있을까.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