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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Jan 16. 2024

나는 왜 거절하지 못할까, 못한다고 못할까

거절해도, 아니라고 말해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

조금 예민하거나 내향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싫어한다. 상대의 기분을 잘 파악하기에 더더욱 상대가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것을 잘 발견하기 때문에 배려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가 힘들고 어려워하는 모습,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런 모습을 보면 괜히 내 탓 같기도 하고 내가 조금만 참아볼걸 하는 생각들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배려하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말 그대로 배려. 니까. 


배려 :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 


배려가 아닌 거절 못함은 다른 이야기다. 상대가 곤란해지는 것이 싫어 거절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너무 피곤한 몸 상태인데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온 친구의 요청을 거절 못하는 것, 내 일도 너무 많아서 숨이 꼴깍이는 데 도와달라는 요청을 거절 못하는 것,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계속 상하는 방향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기분 나쁘다고 표현 못하는 것. 누군가는 이것을 왜 못하냐고 헛웃음을 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참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감사하게도, 부서원이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으면 무슨 일인지 묻고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상사를 만나서 싫은 소리 못하는 나는 꾸역꾸역 연습 아닌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나의 상사는 입사하고 2-3주 정도 지났을 때 조용히 나를 불러 입사 첫날과 사뭇 달라진 시무룩해 보이는 나의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7-8년간 일하면서 표정이 안 좋다고 불러 무슨 일인지 묻는 상사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살짝 당황스럽긴 했지만 속으로는 기뻤다. ‘나를 이렇게 신경 써주는 상사가 있다니, 이직하기를 잘한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나의 표정이나 태도가 무언가 뚱해 보이면 상사는 계속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지. 그때마다 나는 속에 복잡하고 어지럽고 화도 머리끝까지 번져있는 상태였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감정이 가득 찬 그대로를 쏟아내고 싶지 않았고  내 안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말도 쉽게 할 수 없었다. 내가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기에,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계속 물어봐주는 상사 덕분에 조금씩 용기를 내서 말했다. 할 말을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전체 보기를 누를 정도로 써보고 다듬고 고치면서 할 말을 고르고 또 고르고, 드릴 말씀이 있다고 말하기 전에는 내 자리에서 심호흡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겉으로는 티를 안 냈지만 속으로는 벌벌 떨면서 이런 부분이 힘들고, 일을 하는데 어려우며 조금 더 배려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떨리는 마음으로 건네었을 때, 돌아온 말은 “응 알겠어. 노력해볼게. 얘기해줘서 고마워.”였다. 그 말을 듣고 약간 얼떨떨한 상태로 네.. 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회의실을 나왔는데 이럴 수 있는 거였구나 싶었다. 

전 직장과 상사 밑에서는 일에 어떤 문제가 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니 무엇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 외에는 말해본 적도 없었는데, 일 하는 데 있어 누군가의 배려를 요청해 본 것도 마음의 어려움을 상사에게 조금 솔직하게 이야기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이 한결 쿨하고 가벼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기에 상대가 불편해할 수도 있는 나의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해 보기 첫 경험’은 그렇게 얼레벌레 끝이 났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세 번째는 수월하다. 말을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해서 상대방이 하는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내가 불편하다고 표현을 하면 5번 중에 한두 번은 줄어들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쿨하게 대답한 것처럼 상사분은 곧 잘 까먹기도 하고 앞뒤가 똑같으신 분이라 뒷말 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훈련 아닌 훈련을 하면서 조금씩 거절을 연습했다. 상대방의 기분과 호의를 생각해 Yes라고 답변하지 않고 내가 힘들거나 어려울 것 같으면 제안과 요청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를 표현하고 어려울 것 같다고 답변을 했다. 친구와의 만남에서도 피곤해고 지친 상태에서도 나가서 멍하니 앉아있기보다는 더 좋은 컨디션으로 다음에 만나고 싶다고 오늘의 급만남보다는 다음의 약속된 만남을 요청했다. 


무조건 싫다, 아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불편해할까봐,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곤란할까봐, 꾹꾹 참고 상처받으며 마음의 불편함을 품고 사는 일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세심하게 챙기는 우리이기에 한 두 번쯤은 아닌 것 같다, 불편하다고 이야기해도 상대는 우리를 비난하지 않는다. 좋은 상사를 만나서 저런 연습을 했으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시작한 나만의 거절연습은 가족이 나에게 마구 감정을 쏟아내는 일에서 거리를 두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친하지 않은 사람이 무례하게 부탁하거나 요청하는 것에도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 있게 되었다. 늘 상대에게 맞추지 않고 이것은 싫으니 다른 메뉴를 먹자고 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분위기의 장소에서는 장소를 옮기자고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미움을 받을 거면 받아버리자. 그 정도로 미움을 주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함께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내 마음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을 받아주지 못하는 상대라면 그냥 여기까지라고 하자. 한 번만 아니다,라고 이야기해 보자. 써보고 말해보고 연습해 보자. 두려움은 몰라서 오는 것이니.


[오늘의 응원]

썩 내키지 않는 상황, 거절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생각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혹은 “조금 있다가 답해줄게”라고 일단 대답해 두자. 말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메모지에 써서 모니터에 붙여놓자. 그리고 잠시 거절해야 하는 상황과 나의 마음을 정리해 보자. 우리는 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말을 하는데 약간의 준비와 시간이 필요할 뿐.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결정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거절도 하다 보면 늘더라, 내향인들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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