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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 Jan 09. 2024

내 마음으로 향한 시선을 돌렸더니

내향인의 마음에 바깥의 것들을 채워 풍성한 나를 만들기

내향인들은 자신의 내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왜 이럴까, 다들 이런 걸까, 나만 이럴 걸까. 내 기분은 왜 이렇지, 나는 오늘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지, 그 사람이 했던 말이 나에게 왜 계속 생각나고 남아있는 걸까" 등등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들도, 생각도, 내면으로 연결한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그렇게 된 상태의 나는 계속 생각한다. 생각이 많다. 보통 이렇게 이어진 생각들은 긍정적으로 끝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자책하거나, 한심해하거나, 부족한 나를 나무라거나. 그래서 생각을 길게 가지지 않으려 글로 써보기도 하고, 긍정카드를 읽어보기도 하고, 생각을 멈추려 핸드폰을 들어 새로운 자극을 찾기도 한다. 에잇, 오늘도 결국엔 핸드폰을 보다가 잠드는 결말이다. 


제주 여행 중에 20분 이상을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어 어쩔 수 없이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정말 너무 추웠지만, 낮잠도 잘 자고 용기 내서 나왔으니 10분 거리에 있는 바다뷰 카페정도는 가야 한다며 길을 나섰다. 너무 가고 싶었던 제주였는데, 제주에서의 하루하루는 기대하는 바와 달랐다.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생각과 압박에 보고 싶은 풍경, 가고 싶던 곳에서 꺄르륵거리며 붕방거리다가도 갑자기 툭툭 올라오는 걱정이 불안이 되고 그 불안은 검은 물감처럼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프리랜서의 삶을 살면서 누군가와 여행 일정을 맞추다 보니 직장인의 여유로운 때로 맞출 수밖에 없었고, 여행지에서도 잠깐씩 일에 대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신경써야하는 일들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검은 물감이 퍼져나가는 도중에 카페에 앉아 험한 파도가 치는 바다를 멍하니 한 시간 정도 바라보았다. 날이 추우니 손님도 없고, 카페에는 조용한 음악만 흐르고 따뜻했다. 그렇게 멍하니 있으면서 깨달았다. 아, 고요한 시간이 필요했구나. 모든 걱정과 불안, 신남과 즐거움도 다 내려놓고 그저 머리도 마음도 몸도 고요한 시간. 잊지말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시작된 불안한 마음은 잘 살펴본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의 감정과 마음이 아닌 밖으로 시선이 향할 때, 오히려 들썩거리는 마음과 감정은 고요해졌다. 파도치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며 나에게 남았던 말은 ‘좋다’ 뿐이었다. 


내향인들은 마음을 많이 살피기 때문에 외면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고 지인을 통해 추천받았다. 일기는 다 똑같은 거 아닌가 외면일기가 왜 그리 좋다고 하는 걸까 싶었다. 밑미의 외면일기 리추얼을 하면서 아, 내향인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외면일기는 말 그대로 외면, 보이는 것들에 대해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내 마음과 생각보다는 경험한 바깥, 나에게 보이는 바깥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외면일기이다.  

이게 무슨 말이라는 건지 모를 것 같아 간단히 외면일기를 써보았다.

오늘 집에 돌아오는 길에 털이 복슬복슬한 모자를 쓴 사람이 보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덮여있었는데, 차가워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복슬복슬한 검은색 모자가 한몫했을 듯하다. 따뜻해 보이기도 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모자를 써서 저승사자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보통 전체 코디가 검은색이면 사람이 차가워보이거나 어두워 보일 법한데 모자 덕분에 부드러운 이미지로 뽕실뽕실 걸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사람은 검은색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검은색 모자를 몇 개를 가지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나도 검은색 옷이 꽤 있는 편이다. 그냥 깔끔하고 무난해서, 뭐가 묻어도 조금 더럽혀져도 티가 잘 안 나서, 자연스럽게 검은색 옷들이 모이게 되었다. 마음이 어두운 때에는 나도 모르게 계속 검은색 옷을 입기도 했다. 그렇게 검은색으로 꾸미고 나간 날은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마음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림자인척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흡수하는 색이라 어쩌면 숨겨진 아름다움이 가득한 색일지도 모르는데 겉모습만 보고 쉽게 단정 짓는 것은 아닐까. 


시선을 밖으로 돌리면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하게 된다. 아주 작은 물건에서 시작한 나의 이야기부터 누군가와 있었던 일상의 에피소드, 보고 읽었던 콘텐츠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어떤 것도 일기의 주제가 될 수 있다. 외면일기를 쓰려고 집중했던 기간에는 일기의 소재를 찾아보려고 바깥에 더욱 집중하게 되어 좋았다. 바쁘게 걷는 와중에도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고, 카페에서 사진을 자주 찍지 않지만 괜히 사진도 찍어보았다. 그렇게 바깥을 살펴보다 보면 다른 날보다 사진첩에 다양한 시선이 쌓인다. 물론, 리추얼 메이커가 외면을 생각할 수 있는 질문도 던져준다. 좋아하는 양말이 있는지, 갖고 있는 물건들의 색깔은 무엇인지, 가사를 통으로 좋아하는 노래가 있는지 등등 다양한 질문들을 통해 글쓰기를 하다 보면 이런 주제에도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이 있구나 신기해하며 글을 쓰게 된다. 외면일기 자체가 새로운 자극이 되어 평소에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정리하게 된다. 문득, 시인들의 표현은 이렇게 시작되는 걸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외면일기를 쓰다 보니 모든 물건이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글쓰기 강사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경험했다. 어디선가 들었던 글쓰기 강의에서 머리끈만으로도 50개의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던 강사의 말을 듣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외면일기를 쓰면서 물건의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 색깔, 크기, 쓰는 방법, 물건의 쓰임, 구매처, 판매처, 사용하는 사람, 사용감 등등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꼈다. 내향인들아 우리 내면은 시키지 않아도 잘 들여다보고 있으니 바깥을 많이 보자.


외면일기와 함께 좋아하는 글쓰기는 문장 일기이다. 하루 동안 읽었던 책, 아티클, 뉴스레터, 영상, 누군가의 말 등등 어디서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말이 있다면 그 문장으로 시작하는 일기를 써보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노트를 펴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 떠오르는 문장을 적고 그에 따라오는 생각을 적는 거다.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의 좋은 점은 외면 일기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하지 않았던 생각에 대해 정리해 볼 수 있다. 

엊그제 수집한 문장과 문장일기의 일부이다.

 ‘나는 말해야 한다.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 그것이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아침의 피아노> p 166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랑스러운 것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가까이 해야하지 않을까. 좋은 것들은 좋은 것들을 불러오니까. 무엇을 가까이해야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더 말할 수 있을까. 일단 좋은 것을 좋다고 이야기를 해보자. 그것만으로도, 그렇게 시작한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혼자서 마음과 생각을 들여다보면, 저런 생각은 할 수 없고 저런 글도 쓸 수 없다. 새롭게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 없다면 고인 물처럼,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으로만 살 수밖에 없다. 퇴사 직전, 번아웃의 정점일 때 나의 시간은 매일 똑같았다. 일어나서 회사를 가고, 가는 길에 잠시 공원 길을 걸으며 오늘도 잘 살아남아보자 다짐하고.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기억할 수 없게 많은 일들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한 하루. 남는 것도, 새로운 것도, 무엇이 좋았고 아름다웠는지 기억 할 수 없는 그냥 흘러간 하루가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나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건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뒤처지는 것 같고(아무도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언가 뚜렷하게 달라질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이직을 하자니 이제는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오히려 이직을 위해 새롭게 써야 하는 에너지와 긴장감이 버겁게 느껴져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 상태. 그 상태로 몇 달을 나만 그런게 아닐거라고 꾹꾹 참고 이겨냈다. 이곳에서 계속 일하는 것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답을 정해두고. 몸도 아프다 보니 그저 쉬고 싶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말하던 그런 상태에서 퇴사라는 선택이 가능했던 것은 그때 수집했던 문장들 덕분이다. 퇴사 관련된 책을 읽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하고 싶었고,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궁금했었다. 그때의 내가 모았던 문장들은 불안한 나, 자존감이 낮은 나, 용기가 없는 나에게 다독이고 응원해 주는, 나는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문장들이었다. 시선을 내가 아닌 밖으로 돌리니 이 세상말고도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퇴사의 용기를 쌓아갈 수 있었다. 


시선을 돌려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품에 넣고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가고 싶은 방향, 정리하고 싶은 생각과 마음들이 조금씩 나타난다. 모아두었던 문장과 외면일기를 월마다 회고하며 들여다보면, 공통된 키워드나 흐름이 보인다.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나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시선을 바깥으로 두고 그 시선의 끝에서 느낀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튼튼한 발판이 된다. 나가서 걷고 살펴보자. 짧은 산책 길에, 오늘 만난 누군가의 대화에서, 조금은 의도적으로 많이 찍었던 바깥의 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생각하고 느꼈는지 글을 써보자. 그것도 나를 돌보는 다른 방법이 될 테니. 


[오늘의 응원]

사진첩을 열어 오늘 찍었던 사진의 풍경으로 글을 써보자. 오늘 찍은 사진 하나 없이 집순이처럼 바깥을 나가지 않았어도 괜찮다. 문득 생각나는 노래가사 한 줄, 오늘 보았던 유튜브에 대한 내 생각, 점심 혹은 저녁으로 먹었던 메뉴에 대해서 글을 써보자. 책을 좋아한다면 오늘 읽은 책에서 인상 깊은 문장을 먼저 쓰고 문장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자. 평소에 하지 않았던 나의 생각을 발견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내향인의 마음을 바깥의 것들과 나를 들여다본 것들로 잘 섞어보자. 분명 지금의 나보다 풍성한 것들로 채워진 나를 만날 수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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