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탕 미용실

쪽머리를 가르쳐준 사람

by sero


“ 훈련생, 단추는 장수하고 싶어서 안 채운 건가요! ”


퇴사 날을 정한 후 기억이 자주 입사 무렵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에 다다르면 처음을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맞나보다.

강사님에게 장수 질문을 받은 건, 신입 서비스 교육 때였다. 유니폼 목 부분 단추 세 개 중 하나를 채우지않아서다. 목이 불편해 본능적으로 그랬는데, 그날은 어쩌다 눈에 띄어 혼이 났다.


신입 교육을 마친 후에도 유난히 목이 답답할 때가 있었다. 김포 본사 건물에 들어설 때 그랬다.

심장 뛰는 최종 면접을 본 곳이라 낯익으면서도, 평소 인천으로 출근하니 낯설기도 한 곳이었다.

예전 훈련원은 지금과 달리 군대처럼 기강을 잡았다. 신입 교육부터 몸에 밴 군기 덕에 낯설고 익숙한 건물 앞에서 긴장감이 더 했다. 스카프가 목을 꽉 조이는 기분이었다. 들어가 훈련원에서 배운 대로 꾸벅꾸벅인사한다. 그리곤 막내에게 집중될 안전과 비행정보 질문 답을 준비하며 브리핑실에 앉는 게순서였다.


거기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건 깔끔한 머리와 깨끗한 유니폼이다. 몇 달간 신입 교육에 출근하며 매일 쪽머리를 했다. 조금씩 손에 익어 갔지만 아직 서툴렀다. 가끔 머리가 뜻대로 되지 않아 애를 먹을 땐 서둘러 가는 곳이 있었다. 브리핑실 옆 승무원 미용실이다.


신입 때 본 김포 건물 안은 조용하다 못해 엄숙했다. 회색빛 칸막이도 답답해 보였다. 그 맞은 편 조금 엉뚱맞게 자리한 승무원 미용실이 회사 곳곳과 기분 좋게 안 어울렸다. 들어가면 정면에 유니폼과 앞치마를 다리는 곳이 보인다. 매니큐어를 바르는 테이블 옆으로 긴 거울과 의자들이 나란히다.

꽤 오래 그 곳에 있던 게 느껴질만큼 적당히 낡았다. 그간 여기서 얼마나 많은 쪽머리들이 살아났을까 종종 궁금했다.

모두가 숨죽인 공간 한 켠 잔잔한 소란함이 있는 곳.그 곳엔 미용사 두 세분도 함께였다. 위잉- 드라이 소리 끝 단발머리는 깔끔히 마무리되고, 칙! 머리 위 스프레이로 빈틈없는 쪽머리도 완성이다.

망친 머리를 척척 되살리는 아주머니는 그 순간 구세주였다. 빳빳한 새 유니폼에서도 어설픈 긴장에서도 티가 났을 초짜 승무원에게 늘 따뜻이 대해 주셨다. 푸석푸석 목 막히는 건빵 사이 빼꼼 보이는 별사탕같던 곳. 회사 직원이지만 완전히 회사 직원은 아닌 느낌, 회사 안이지만 완벽히 회사 안은 아닌 약간의 달콤함이 있었다.


머리가 잘 안돼 어설픈 모양으로 출근한 날이다.

브리핑 전 미용실 의자에 앉았다. 살짝 바랜 검정 앞치마를 맨 아주머니께 인사했다. 답하는 얼굴엔 자주 웃는 사람의 자연스런 미소가 담겨있다.

약간 곱슬기있는 중단발을 보기 좋게 드라이한 머리도 눈에 띈다.

“ 저 오늘 머리 완전 망쳤어요. 브리핑 얼마 안 남았는데.. ”

“ 어이고 그럼 안돼지, 걱정 말아요. 금방 하니까.”

죽어가던 머리가 금세 완벽한 쪽머리로 다시 태어났다. 아주 매끈한데다 머리 앞 쪽을 평소보다 한껏 띄운 스타일이다. 거울 속 봉황같은 모습이 어색해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 웃는 날 보다 같이 웃는 아주머니께 감사하다 인사했다. 일어나려는 내게 물으신다.

“ 머리할 때 어떤 게 잘 안돼요? ”

“ 묶고 동그랗게 마는 것까진 괜찮은데 고정이 잘 안돼요.”

“ 아 그럼 U자핀을 한 번에 꽂지 말고 이렇게 해봐요. 머리에 3분의 1 정도 넣고 약간 들어 올린 다음

사이로 쭉 넣으면 돼요.”

여분의 핀을 들고 설명대로 살짝 들어 머리에 끼워 넣었다. 들뜸없이 딱 맞는다. 들어 올린 작은 행동에 쪽머리 사이 얕은 틈이 생겼다. 얘기 나눈 잠깐의 시간이 마음에도 여백을 만들었다. 그 틈으로 한숨 한 번 폭 쉰 느낌이다. 올통볼통 반투명 별사탕이 혀에서 녹듯 긴장이 풀렸다.


돌아보니 미용실 아주머니의 손길만이 아니었다.

회사 구둣방 아저씨의 배려, 공항 버스 기사님의 작은 친절, 그리고 때로는 가족과 동료들의 힘을 주는 말 한마디가 그간 비행을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다. 각자 선 곳에서 갖가지 노고가 모여 비행기가 뜨고 내리듯, 미처 고마움을 표현 못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도 지금껏 날아왔다. 이런 생각이 다 들다니 뒤늦게라도 철이 좀 드는 건가 생각했다.


퇴사 날짜를 정하고 나니, 그렇게 평소 지나치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비행마다 눈에 닿는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장면은 같고 보는 눈만 다르다.

전 비행에선 탑승교 연결 직원 분이 궁금해 일에 대해 여쭤봤다.

기내 청소 직원분들도 달리 보인다. 십 년을 매 비행 마주치면서도 바삐 내 일만 보느라 궁금해하지 못했다. 막내 때는 일에 적응하느라 바라 볼 여유가 없었을 거다. 그 후 긴 시간들엔 그냥 내 고뿔이 제일 큰, 적당히 무심한 사람이었나보다.

몰래 단추를 풀던 불량 신입이 쪽머리가 낯설던 시작을 지나 곧 착륙이 코 앞이었다.

내 몫의 비행을 끝내 가던 중 생각했다.


일도 삶도 끝이 있단 건 분명한데 왜 마지막이 보일 듯 가까워져야 실감할까.

스스로 힘내 헤쳐 온 시간같지만 이젠 안다.

이런저런 도움이 매일을 탄탄히 받쳐주고 있었단 걸. 세상 일이 다 마찬가지일 거다.

앞으론 어디서 무얼 하든 함께 만드는 장면인 걸 기억해야지 생각했다.뒤늦지 않게 감사하자 마음먹는다. 맘먹어도 자주 잊을테니 글로도 기억에도 자꾸 새겨야겠다.


쪽머리를 할 때마다 배운 대로 핀을 들어 올렸다.

손은 점점 당연한 듯 움직였다. 3분이 채 안 걸렸다. 머리 하나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늘었단 걸 잊어갔다가끔씩만 별사탕 미용실과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퇴사 후 더 이상 쪽머리를 하지 않는다. 더는 별사탕 미용실에 sos를 보낼 일도 없지만 핀으로 들어올린 만큼의 여유, 곁의 사람과 풍경을 성의있게 바라볼 그 틈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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