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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Aug 14. 2020

오늘, "올림픽 정신으로 시험 응시"의 참뜻을 깨쳤다

참가에 의의를 둔다 aka 진인사대천명

"방학은 어떻게 보냈어요?"

오랜만에 옆 랩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대학 선배를 만나 담소를 나누었다. 방학은 어찌 보냈냐는 물음에 자연스레 졸업논문 준비 과정과 졸업 후 진로계획을 털어놓게 되었다.


석사 졸업 후 교사가 되겠노라 맘먹었다고 말하니, 교원임용고사 공부 얼마나 해 놓았냐고 물어다.


- 그저께 (시험 치기로) 결정했고 이제 시작할 건데요. 올해는 올림픽 정신으로 참가할 거예요. 마치 동티모르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처럼..!

'동티모르 올림픽 성적' 검색 결과 1페이지. 동티모르는 우리니라 언론에서 줄곧 참가에 의의를 두는 나라로 보도되었다.

선배는 나의 천연덕스러운 말에 한참을 웃었다. 집에 가는 길, 그는 내게 려, 조언, 채근, 꾸중 중에서 세 가지 이상의 의도를 지닌  마디를 남긴 채 연구실로 발길을 옮겼다.

"잘할 거예요. 하루에 4시간 자면서 준비요."


네??  올림픽 정신은 평화와 화합, 참가에 의의를 둔 정신인데 하루에 네 시간만 자라니요?! 건 너무 승리에 의의를 둔 것 아닌가요?


약간의 혼란을 느끼며 길을 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올림픽 정신의 핵심 중 하나는 참가다. 그런데 아무 준비 없이 대회에 참여하는 개인과 국가가 있을까? 겉으로 봐서는 참가에 의미를 둔 것처럼 느껴지는, 추첨으로 얻은 공짜 티켓을 쓰러 온 듯한 나라와 선수들도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 무대에 오르기 위해 궂은 연습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다. 아무리 못해도 참가 조건에 맞는 복장, 약물 복용 수칙은 지키고 온다.


올림픽 참가에 의의를 둘 수 있는 건 림픽 경기를 위해 4년 이상 열심히 훈련하고 준비한 사람들이다. 결국 내가 올림픽 정신으로 시험을 치겠다고 한 말은 사실 진인사대천명, 할 일을 열심히 한 후 그 뒤의 일은 하늘에 맡긴는 뜻이었던 이다.


기억하자. 올림픽에 참가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올림픽은 왕중왕전이다. 참가만 해도 가치있다는 건 할 만큼 한 사람에게 주는 따뜻한 위로다. 올림픽 정신으로 시험을 치겠다면? 치열하게 공부하여 결과를 후회 없이 받아들일 준비를 갖춰야 할 것이다.

올림픽은 생각해보니 참가하는 것조차 힘들더라. (사진출처: zum 학습백과 어휘사전-올림픽)


ps. 헐랭하게 공부해서 시험지 구경만 하고 오려고 쓴 올림픽 정신이었는데, 알고 보니 올림픽 정신은 일단 올림픽에 참가한, 자격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는 결론이... 그리고 처음 올림픽에 참가했더라도 동티모르 선수 입장에선 동티모르 대표 아닌가. 하마터면 그들이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고 착각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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