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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Feb 06. 2021

논문을 어쭙잖게 쓴 자의 현재

맘 속에 망아지가 한 마리 뛰노는 것 같아요

석사논문을 쓰고 나면 글 쓰기에 자신감이 붙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많은 글을 고 긴 글을 어찌 됐든 써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되려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기기는커녕 생각을 기록하는 데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내 졸업논문은 RISS라는 시스템에 등재되었는데, 딱히 찾아보는 이들이 없을 거라는 걸 알지만 별다른 위로가 되지 못했다. 여전히 논문 곳곳에서 빼꼼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급하게 마무리한 흔적들이 나를 자괴감에 빠지게 한다.


논문을 쓰고 난 뒤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첫째, 글 쓰기가 두렵다. 본래도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숨기고 싶었던 부분까지 다 드러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논문을 쓰고 난 뒤 이러한 생각이 훨씬 강해졌고, 나는 강박처럼 머릿속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지 않으면 글을 써 내려가지 못했다. 그래서 읽은 책은 많지만 책 리뷰를 제대로 써내지 못하고 있고, 브런치에는 쓰다만 저장 글만 그득해졌다.

둘째, 만연체가 난무한다. 학생들의 생기부를 써 주는데 문장 호흡이 너무 길었다. 몇몇 학생들이 문장이 너무 길어서 뜻이 모호해진 것 같다며 내게 생기부를 들고 왔을 때, 크게 반성하며 함께 문장을 다듬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이 글 쓸 때만 있는 게 아니다. 말을 할 때도 핵심을 콕 짚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뜸을 들이면서 횡설수설하는 일이 잦아졌다. 

셋째, 쉬고 있어도 불안하고 뭔가 하고 있어도 불안하다. 맘 속에 마치 다리를 어떻게 가누어야 할지 몰라서 멋대로 걷다가 스텝이 꼬이곤 하는 망아지 한 마리가 들어있는 것 같다. 쿠어 쿠어 소리 내면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니 어딘가에 집중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책을 읽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그야말로 마음이 당근밭에 가 있다.


혹자는 내게 휴식이 필요하다는데, 사람마다 휴식으로 느껴지는 상태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나는 공부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상태를 휴식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 뇌가 둠칫둠칫 리듬을 타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요즘은 논문 제출 후에 만난 망아지로 휴식에 빨간 불이 켜졌다. 한쪽에서는 망아지가 달리다 구르다 넘어졌다 일어서서 다시 달리고, 한쪽에서는 '아휴 저 망아지'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팔짱 끼고 서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어떤 일에 있는 힘껏 집중하지 않고 없는 힘까지 다 끌어서 집중하면 삐그덕거리게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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