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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찬우 Feb 10. 2021

오늘, 책이 싫다는 자에게 책을 안겨주고 왔다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여야

나는 좋게 말해 배려심이 많고 나쁘게 말해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다. 집 근처 편의점은 사장님과 가족 들이 운영하는 곳인데, 내가 밤늦게 자주 밤샘 공부를 위한 커피, 탄산수,  견과류를 사러 갔더니 대견하다며 주전부리를 따로 챙겨주시곤 했다. 나는 대코로나 시대에 대구와 해외에 사는 가족들과 거의 이산가족으로 살면서 대면 보살핌에 대한 고마움의 역치가 낮아졌다. 작은 것도 크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은 좋은데 문제는 그걸 자꾸 갚고 싶다는 거다.


한 번은 동네를 산책하다가 너무 맛있어서 방송까지 탔다는 티라미수 집을 발견했다. 나는 사장님께서 새벽에 케이크를 먹으면서 카운터를 보고 계셨던 것을 기억하고 조각 케이크 두 개를 사서 선물로 드렸다. 정말 너무도 고마워하시는 모습에 오히려 살짝 놀랐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나름 뿌듯함을 느끼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최근엔 주말에 편의점을 갔다가 무료하셨는지 포스기를 계속 띡띡 누르고 계신 사장님의 자제분을 보았다. 20대 초반아르바이트를 할 때가 떠오르고 자영업을 하는 아빠가 늘상 야구를 틀어놓던 것이 생각나서 왠지 짠해졌다. 그의 휴대폰 케이스에는 강아지 그림이 있었고,  강아지를 좋아하시나 싶어 집에 있던 '극한 견주' 책을 들고 편의점으로 갔다.


저 혹시 강아지 좋아하세요?
네? 강아지요?
어.. 이거 원래 중고로 팔려던 건데( 사실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부담스러워하실 것 같았다) 한 권 드릴까요? 재밌어요..
아니 저 책 싫어해요 하하
이거 만화라서 괜찮아요(뭐가 괜찮다는 건지. 책이 싫으시다는데). 한번 읽어보세요.


일단 책 싫어한다는데 만화책이든 글로 된 책이든 책을 안겼다는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내 맘을 편하게 만들고 나를 스스로 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오지랖이었는지도 모른다.

뭐든 손 크게 퍼주고 사는 부모님을 닮아 나는 오지랖이 참 넓다. 눈치도 빠르고 예민한 편이라 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빠르게 알아차린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내가 자신의 기호를 알아차리고 배려랍시고 행한 것이 부담이 된다면 이것은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제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는 분명 '책을 싫어해요'라고 거절 의사를 표현하였는데 나는 왜 그에게 책을 안겨주고 왔는지. 만화든 글이든 책이 싫다는데.


싫다는 걸 싫다고 바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오지라퍼의 오명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책이 싫으세요? 아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죄송해요. 그저 무료하실 때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추천해드렸던 거랍니다.


라고 단번에 받아칠 수 있는 쿨함이 필요하다, 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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