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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wer Series Jul 01. 2023

<중경삼림 1부>, 왕가위 감독

그녀는 파인애플을 좋아했을까?

 공부가 딱 10시 정도 즈음에 끝이 났다. 그리고 12시까지 딱 두 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원래 중경삼림을 다음 주 월요일에 보려고 메모장에 적어뒀는데, 2시간보다 짧은 영화이기도 하고 1부 2부 나뉘는 영화라서 자투리 시간에 보기로 했다. 지금은 다 씻고 선풍기 틀면서 Hearts&Colors의 노래를 듣고 있는데, 이번 신곡이 정말 좋은 거 같아서 하루종일 듣고 있다. 영화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지금 듣고 있는 곡 이름은 Show You What It's like이라는 곡이다. 


 친구의 영화 계정을 보면서 위로를 받은 적이 많아서 친구가 올리는 대사들이 들어간 영화들을 메모장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넷플릭스 찜목록에 찜 해두었다. 친구한텐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게 INTJ의 우정 표현 방식이라고 하면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친구가 내 취향일 것 같다면서 중경삼림 1부를 추천해 주었다. 사실 2부까지 다 보았는데, 1부 보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1부 위주로 글을 쓴다. 왕가위 감독은 인터뷰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다. 첫사랑과 결혼했는데, 그의 영화들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 들이어서 기만자라고들 한다. 내가 처음 본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바로 이 중경삼림이다.


  영화가 예쁜데, 마치 후지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은 것 같은 느낌이다.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화질이 엄청 살진 않지만 색감을 대신 살리고 적당한 채도와 밝기가 영화에서 남주와 여주의 스치 듯한 인연임을 부각하는 것 같다. 


 남주는 만우절에 헤어진 애인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 자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찾는다. 그리고 4월 30일이 되었을 때, 폐기 처분되는 통조림을 받아다가 집에서 30개를 통째로 까먹는다. 그리고 외로움에 자신이 아는 모든 여성들에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그들 모두 사정이 있거나 다른 이유들로 거절을 한다. 남주는 결국 클럽에 가게 되고 '바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라고 하고 그때 여주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여주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만난다. 그들은 모텔에 가서 정말로 쉬기만 한다. 하지만 남주는 그녀를 사랑했다. 남주가 헤어지게 된 원인은 남주의 전 애인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잠깐 언급이 나오는데, 남주가 여주를 이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주의 신발을 닦아주는 부분에서 여주에게 공감을 한다. 그리고 남주는 여주를 모텔에 두고 헤어진다. 사실 함께 있는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남주는 경찰이고 여주는 마약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주는 여주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삐삐를 받는다. 그리고 1부가 끝난다. 


 행복한 이별이라는 것은 없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이별 같은 건 있지 않을까 한다. 감정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대로 이 세상에 유통기한이 없는 것은 없을 것이다. 감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남는다고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이별에도 감정이 실린다고 생각한다. 이별이라는 것도 결과이지만 감정이 어땠는지도 남는다. 그리고 사랑이든 우정이든 가치 있는 이유는 유한한 관계이지만 유통기한을 모른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사람과는 7월쯤에 손절할 거다-라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진 않는다. 


 나한테도 기억에 남는 이별이 있다. 원망도 없고 그저 지금은 잘 지내는지 궁금한 정도로 끝난 인연이 있다. 고등학생 때 치과 레지던트 선생님을 짝사랑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레지던트 선생님이 바뀌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고 다만 지금은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고 싶다. 나도 그 레지던트 선생님에 대해 아는 바는 거의 없었다. 마치 여주가 파인애플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남주가 아직도 모르는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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