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의 작은 시인에게> 는 유치원 교사 리사(매기 질렌할)가 자신의 직장으로 출근해 창문 커튼을 여는 첫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푸른 벽의 교실엔 이윽고 아이들이 찾아와 왁자지껄한 소음을 만들 것이고 리사는 보조 교사와 함께 분주히 움직일 것이다.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작은 유아용 의자에 걸터앉아 리사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지친 것인지 사색에 잠긴 것인지 모를 표정에 관객이 좀 더 다가가고 싶어하는 순간 영화의 타이틀롤이 뜬다. 선풍기 바람을 맞는 것빼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녀가 사실 바람을 맞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듯한 타이틀롤의 암전화면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리사는 영화 내내 교사로서의 일상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어느 날 마주한 천재소년에게 몽땅 쏟아붓는다. 그녀의 뒤를 연신 좇는 카메라 시선 이전에 마주한 상대 없이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이 오프닝 시퀀스는 그렇기에 복선에 가깝다.
유치원 교사였던 리사는 시를 짓고 읊는 5살 소년 지미(파커 세바크)를 만난다. 모두들 어린 지미가 중얼거리는 시구들을 하나의 놀이쯤으로 여겨 무시해왔지만 리사는 조금 달랐다. 시쓰기 수업을 들으며 자신만의 작업을 해왔던 리사에게 지미가 짓는 시들은 5살의 나이가 무색한, 그녀의 묘사로 친다면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실력이자 재능이었다. 교사의 본업은 학생을 지도하는 것이며,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이 여자가 천재적인 재능을 마주한다는 이야기는 자연스레 장밋빛 희망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이에 반해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조금 다른 노선을 택한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라는, 재능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직유법을 두거나 아이와 성인 여성을 같은 선상에 놓고 치열한 긴장선을 유지하려 들지도 않는다. 리사는 끈질기게 지미에게 따라붙으며 자신의 생각과 감상을 읊어주고, 지미는 무표정한 눈동자로 리사를 바라본다. 이때 카메라가 좀 더 정면으로 비추는 얼굴과 눈빛은 리사의 것이다.
눈앞의 대상을 향한 시선을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방법엔 어떤 것이 있을까. 무언가를 바라보는 얼굴을 비추는 카메라 시선이 첫번째 방법이라면 이 영화는 시선을 회피하는 눈앞의 상대방을 두번째 방법으로 꼽는다. 우리가 화면을 통해 지미를 바라보는 리사의 시선을 경유할 때마다 지미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거나 리사의 키보다 훨씬 작은 체구로 인해 정면의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때마다 애가 타는 리사의 시선, 번뜩이는 여성의 눈빛은 더욱 강렬해진다. 반면 영화 속에서 지미가 자신의 얼굴을 카메라 가까이에 비추는 유일한 장면은 자신의 시를 낭독하기 위해 오른 무대에서 답변을 하려 몸을 돌릴 때 뿐이다. 그 때 지미의 답변 속에 아이의 영감을 북돋아주기 위해 온 시간을 바쳤던 리사는 없다. 그때부터 영화 속의 무언가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지미를 바라보고 지미의 재능을 갈망하는 리사의 얼굴에 리액션으로 붙는 샷은 지미의 얼굴이 아니다. 영화가 첫 오프닝 시퀀스에서 교실에 혼자 남겨져있는 리사를 넓은 화면으로 잡았던 것처럼 혼자 어디론가 향하거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리사의 또다른 얼굴이다. 가족에게서 겉돌며 유별난 그녀의 행동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주변인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리사는 자신이 다니는 시짓기 교실에서 지미의 시를 낭독할 때조차 혼자였다. 그녀가 지미의 시를 제 것인양 낭독했을 때, 교실의 사람들은 이전과는 달라진 문체와 눈에 띄는 실력에 저마다 찬사를 뱉는다. 그러나 찬사를 듣는 여자의 얼굴이 스크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뿐 호평은 화면 저 너머에서 들려온다는 구성은 절대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할 수 없는 여성의 갈망과 소년에 대한 매혹의 필연적인 한계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카메라 시선은 다소 평이할 지라도 이 지독하게 외로운 화면들은 홀로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는 여성의 내면을 지그재그로 파헤친다.
이 영화의 결말이 가장 정적이면서도 강렬했던 10분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리사는 지미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방법을 선택하고 만다. 두 사람이 그동안 함께 누빈 동선 중 가장 짧고도 좁은 거리에서 처음으로 지미가 리사에게 정면으로 답변을 내놓는다. 리사는 닫힌 문 너머로 지미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 아이가 내비친 최초의 리액션이 리사와 그의 관계를 종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몰고 갈 무렵, 아이의 액션이 고개를 든다. 이때 소년이 읊는 시를 받아줄 리사는, 그를 대체할 만한 어른은 곁에 없다. "시를 쓰고 싶어요. 누가 내 시 좀 들어주세요." 이제까지 리사의 시선을 통해 본 지미의 얼굴에 아무것도 드리우지 않았던 영화는 누군가를 찾는 아이의 얼굴과 카메라 사이에 경찰차 차창을 세운다. 아이의 외침 직후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의 암전화면은 다시금 우리에게 오프닝 시퀀스의 단절을 상기시킨다. 아이의 시는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이어진다면 누구의 입과 손을 통해 읊어질 것인가. 끊일 듯 끊이지 않는 노래처럼 시를 읊는 이와 그를 사랑한 이의 심리전은 맹목으로, 맹목으로 인한 필연적인 부재의 되물림으로 이어진다. 영화가 끝나고도 쉽게 자리를 뜰 수 없게 하는 여운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