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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Sep 25. 2019

서비스컷뿐인 이 장르

<나쁜 녀석들 : 더 무비>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인기몰이했던 드라마를 모티브로, 아니 거의 속편격이라 부를 수 있는 영화 <나쁜 녀석들>을 보았다. 드라마는 보지 못했다. 이전 서사를 열렬히 꿰고 있는 팬들보다 당연히 서사의 이해도가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지 못한 관객도 엄연히 티켓 값을 지불하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선 고객이기에, 영화는 최선을 다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도록 각종 컷을 배치한다. 그 컷들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고도 친숙한 장르의 피사체를 중심에 두고 있다. 범죄영화 격의 경찰영화, 경찰영화 격의 범죄영화의 독보적 존재라 부를 수 있는 배우 마동석, 그가 가진 구심력이다. 



마동석은 한국에서 이미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장르가 된 배우이다. 이 이야기는 다시 말해서, 그가 출연한 특정 장르의 속에 담겨져있는 각종 클리셰들이 그를 보는 관객들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입력되어있다는 이야기로도 풀어쓸 수 있다. 그가 상대를 주먹으로 치면, 대게 적이라 부를 수 있는 그들이 나가떨어지고 우리는 쾌감을 느낀다. 이때 마동석이 가지고 있는 피지컬은 그가 더 무참하고 무심하게 상대를 '짓뭉겔 수 있게'끔 허용한다는 점에서 한국영화계에 아직까지 맞먹는 적수가 나타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이 규칙을 비틀 것인가, 아님 그대로 답습할 것인가. 영화 <나쁜 녀석들>은 첫 장면에서 영화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사용할 문법을 보여준다. 암흑계 보스가 주먹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가격할 때 숏은 늘어지고 과정은 느리게 흘러간다. 한 순간의 타격감 이전에 공기를 가르는 주먹, 맞고 난 뒤 천천히 돌아갈 수밖에 없는 고개. 슬로우모션은 그렇게 이미 우리 머릿속에 있는 액션의 동작들을 쪼개기에 이른다. 그리고 대부분 그 영화적 허용의 장면들은 주인공들의 정의 구현 서사 안에서 작동한다.   



슬로우모션이 그렇게 영화의 타격감을 가중시키기 위한 장치로 등장했을 때 이에 맞장구치는 리액션컷들은 눈여겨 볼 만하다. '나쁜 녀석들', 그 중 주인공 격인 마동석을 지나치게 무서워하는 조폭 조연 둘의 장면이 그것이다. 화면의 정중앙에, 영화는 그들의 겁에 질린 표정을 유독 클로즈업하며 배치한다. 지나치게 무서워하거나 움찔거리며 도망치거나. 그야말로 마동석에 의한, 마동석을 위한 서비스컷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 슬로우모션이 다른 장면에서 오직 '쾌감'을 위해서만 존재했을 때 영화 속 반복되는 패턴이 어떻게 스스로 장르화하고자 하는 영화를 짓뭉겔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이겠다. 



새로운 여성 캐릭터로 김아중을 배치했을 때 그녀의 몸을 훑으며 올라가는 카메라 시선을 굳이 파고들지 않겠다. 새로운 등장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영화의 곁에서만 겉돌 수밖에 없었던 여성 캐릭터의 전사를 그나마 중심 스토리에 끼워준 것 외에, 더 활약을 지켜보기 어려운 캐릭터 설정도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마동석 캐릭터 바깥의 슬로우모션은, 그러니까 행위를 디테일하게 쪼갰던 말초적인 쾌감은 또 다른 신체를 느리게 훑어내려가며 그가 가진 성적 의미 외에 그 어떤 다른 의미도 가질 수 없게 박제해버린다. 또 다른 슬로우모션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마동석 캐릭터가 이제까지 행해왔던 액션 중에서도 유일하게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구출해내는 장면에서일 것이다. 



고발자였던 피해자 여성에 대한 복수로 '사이코패스'캐릭터가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가격한다. 이를 구하기 위해 마동석이 등장하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장면에선 영화는 이제까지와 조금 다른 결의 슬로우모션을 보여준다. 디테일한 타격으로 쾌감을 쪼개어보여주고자 했던 원초적 쾌락을 줄곧 앞세웠던 이들이었잖은가. 고발자임에도 보호받을 수 없는 피해 여성 장면 뒤로 슬로우모션 액션을 배치한 함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남자들의 세계를 농밀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시선의 끝에 항상 머물러있는 어떤 신체들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지겨운가. 성적 의미 혹은 냉장고 속 여성. 이제까지 남성영화를 가르킨 비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리뷰였다면 영화 <나쁜 녀석들>의 슬로우모션 역시 눈요깃거리라는 쾌감에서 벗어나지못한 서비스컷의 장르는 아니었을까. 영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재미는 배우들이 구가하는 액션의 행위 그 이상일 수 있는가. 영화적 허용의 범위에 달하지 못하는 이 영화에게 다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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