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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Nov 07. 2019

위태로운 정공법의 얼굴

영화 <버티고>

***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희 배우가 주연으로 열연한 영화 <버티고>를 보았다. 위태로운 고층 건물에서 그보다 더 위태롭게 머물며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의 이야기. 휘청거리는 몸과 불안에 떠는 얼굴을 가득 담고자 하는 카메라는 훌륭한 연기를 구가하는 배우의 모노드라마를 화면에 앞세운다. 오롯한 이 여성의 표정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원맨쇼. 를 가장 적나라하게 그리는 장면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나온다. 고소공포증과 공황장애가 극에 달하여 사무실 안을 비틀거리며 걷는 천우희의 얼굴은 그만이 들을 수 있는 이명에 휩싸여 온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런데 시선을 한몸에 받는, <버티고>라는 영화가 전적으로 기대고자 하는 이 얼굴은 어딘가 무력해보인다. 분명 영화는 배우 천우희가 가진 인상의 잠재력을 십분 활용하고자 하는데 왜 카메라가 그녀 앞에 바싹 다가설수록 얼굴은 서사에게 자꾸만 주도권을 빼앗기는 느낌이 드는가. 기괴한 정공법의 모순은 과연 어디서 일어나는가.  



  약직 디자이너 서영(천우희)은 누군가의 딸이자 애인이며 자꾸만 좌절하는 청년이고, 그가 지닌 역할들로 인해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장애물에 부딪힌다. 고소공포증을 가진 서영이 고공빌딩에서 일하고 있다는 상황 설정 외에도, 높은 창문 바로 앞에서 애인과 관계를 나누거나 수화기 너머 닦달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견뎌야 하는 등 서영은 혼자 고립되어 상황을 견뎌낸다. 러한 서영의 삶을 고층 창문 청소부 관우(정재광)가 지켜보기 시작한다. 관우와 서영은 한 두 번 창문을 통해 눈빛을 교환할 뿐이었지만 이 둘의 삶을 순차적으로 이어붙이는 영화 <버티고>는 두 남녀의 거리를 멀어지지 않게 노력한다. 서영이 놓고 간 물건을 가져다주기 위해, 혹은 위태로워보이는 서영이 걱정되어서. 관우가 그녀의 뒤를 좇는 장면이 그들의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고, 관우의 누나 이야기와 서영의 감정적인 곡선이 같은 포물선을 그리는 서사는 그들의 심리적인 보폭을 맞춘다. 서영에게 닥친 불행이 서영의 고의가 아니었듯이 두 캐릭터를 필연으로 엮고자 하는 <버티고>의 장면들 역시 그녀의 의지가 아니다. 영화는 줄곧 그녀의 뒤를 좇는 관우의 시선 안에서만 움직인다.



  물론 서영은 관우를 승인한다. 애인의 배신과 어머니의 들이닥침. 그리고 생계수단인 일터에서의 몰카위협까지. 그가 더이

상 고통으로 몸부림칠 수 없을 때까지, 그야말로 무기력해질 때까지 영화가 몰아치고나서야 서영은 관우를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그를 향한 직접적인 폭력과 위협 앞에서 서영은 무표정한 표정을 짓고 관우는 주먹을 내리치며 분노한다. 관우는 서영의 구원자임이 틀림없는데 어째서 그녀의 얼굴에 없는 생기가 그에게는 있는가. 사실 고통이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구원이 고통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치 앞을 모르고 달려나갈 수 있었던 서영의 얼굴, 그가 가진 동력은 어쩌면 일련의 모든 과정을 알아봐주는 구원자의 시선자가 존재하는 한 헛걸음만 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서영의 얼굴은 카메라 앞에 바싹 '다가서는 것'이 아닌 프레임이 몰아세운 사각지대 속으로 '뒷걸음질' 친다. 통과 구원의 서사는 양날의 검처럼 맞붙어있을 수밖에 없으나 구원에 수렴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더욱 홀로 설 수 없는 고통엔 영화가 너무 쉽게 기대고자 했던 배우의 훌륭한 인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더 진보한 원맨쇼를 위해 우리는 얼굴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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