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단편 5'
보고 싶은 영화들은 모두 매진 행렬이고 이름이 낯선 영화를 예매했지만 영 불안하다. 하지만 뜻밖의 장면에서 빛을 보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드넓은 시간표와 짧은 시놉시스, 스틸컷을 보고 있자면 이 고민들이 다 뭔가 싶다. 결국에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는 일이다. 영화제가 열렸고, 그 많은 영화들을 다 끌어안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담아 다녀온 영화제에 대한 매거진을 써보려고 한다. 그 첫번째는 올해로 44회를 맞은 2018 서울독립영화제다.
2018 서울독립영화제, 경쟁단편 5
코스믹 칼레이도스코프 / 박민하 / 17min
거울이 해를 비춘다. 그 빛에 반사된 상(象)이 보인다. 이제껏 인류가 쌓아온 이야기가 들린다. 태초에 대한 신화를 인용한다. 드디어 세상이 생겼다. 박민하의 <코스믹 칼레이도스코프>는 이렇듯 애초에 대한, 세계의 최초에 대한 이야기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간다. 세계가 생기기 이전의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고, 그로 인해 지어낸 달과 관련한 신화를 차용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달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시대를 거스르고 앞서는 이야기를 정적인 이미지의 연속으로 풀어내는 박민하의 단편에선 종종 영화 속 사운드가 영상을 압도하기도 한다. 전자의 단순한 파열음인지, 맞는 주파수를 찾아가는 신호인지 모를 사운드가 영상을 내내 맴돈다. 이 이미지로부터 겉돌거나 영상 자체를 찢어내는 작업이라기보단 초월하는 작업에 가까웠던 것 같다. GV에서 언급되었듯 하나의 이미지로 수렴 가능한 나레이션, 보이스 오버의 해설을 넣지 않았다고 설명한 의도 또한 이에 해당되리라 짐작해본다.
거울에 비친 인간은 신화를 만들었고, 신화는 연극, 영화를 걸쳐 인류가 만들어낸 '문명' 그 자체로 나아간다. 영화는 초월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463 poem of the lost / 권아람 / 20min 4sec
질문에 방점을 찍는 영화다. 역사를 기억한다고 쓸 수 있으나 이내 그 글을 지울 수 있는 수미상관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론에 대해 방점을 찍지 않고 끝까지 헤매고 질문할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태국 국립문서보관소의 빨간색 상자 속에는 463명의 한국인 여성을 포함한, 태국을 배경으로 하는 일본군‘위안부’의 기록이 봉인되어 있다'고 한다. 태국으로 이 문서를 찾아가는 와중에 제 2차 세계대전의 포로들의 묘지, 그들의 손으로 세워진 기나긴 철도, 그리고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로드무비 성격의 다큐멘터리로도 보여진다. 이들의 여정은 어떤 단일한 이미지와 언어가 아닌 태국어, 영어, 한국어 순서의 삼개국어로 말해지고(내레이션) 읽혀진다(자막). 이들의 언어 간엔 위계가 없고 삼원색의 원처럼 동등한 선상에서 서로 영화를 주고 받는다. 공유라기보다 공존이라 해두자. 이러한 연출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바로 길 위에서 옛 기억을 가지고 있는 태국 노인들에게 한국인 위안부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을 듣는 몇몇개의 씬들이었다. 대답들은 태국어로 말하는 위안부의 증언과 일치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며 포물선을 그린다. 역사의 진실은 나아가는 힘에 있다고, 공존하는 언어로 나아가는 다큐멘터리는 힘이 세다.
인서트 / 이용수 / 9min 52sec
흑백영화의 세계에선 인물의 얼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곤히 자고 있는 주인공 미라의 얼굴에서 시작하는 영화 <인서트>가 그랬다. 고된 촬영일정으로 잠들었다가 심통난 선배가 차창 바람을 정면으로 맞추자, 그제야 비몽사몽 일어나는 얼굴은 그 때까지 희다. 아직 아무 감정도 들어가지 않는 그 얼굴에 혼자 인서트를 따기 위해 카메라를 들자 생기가 돈다. 정식으로 카메라를 들어보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오더를 받았으나, 생각보다 많은 장면을 찍었고 괜찮은 몇몇을 건진 듯 보인다. 실제 찍은 인서트 촬영 장면들은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엔딩 크레딧과 함께 공개된다. 그 전까지 촬영에서의 환희를 공유한 관객에게 미라가 촬영을 위해 다니는 이 곳 저 곳은 '꽉 차보이는' 이미지로 생동한다. 영화에 대한 영화의 고민으로 가득찼으니 인서트라는 목적은 이루어진다. 이후 포커싱이 나가버리고 애써 찍은 미라의 촬영분이 한 번에 포맷되는 현장에 다다르지만 영화가 끝나고 컬러화면으로 전환된 그 장면샷들은 영화 바깥에서 숨쉬고 있다. 극장을 나간 뒤 세상이 '인서트샷'으로 보이는 관객들이 있는 한.
표류 / 연제광 / 17min 1sec
대화는 등지고 선 뒷모습에서, 카메라 바깥 보이는 벽에서 들려온다. 앞서 언급한 <인서트>와 달리, 영화 <표류>는 주인공의 얼굴을 처음부터 쉽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방법론의 우위라기보단 차이일 것이다. 후자의 연출에 마음이 더 갔던 이유는 앞선 배려보다 오히려 침묵이 나을 때, 그야말로 우리가 인물의 눈치부터 볼 때 사연에 한 발 더 진입할 수 있는 틈새를 열어두는 길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답답하다. 그러나 매우 궁금해진다. 친척에 얹혀사는 재수생이라는, 듣기만 해도 불편한 이 애매한 신분은 벽에 십자가가 있고, 아침부터 큼직하게 찬송가가 들리는 가정집 활기와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인공 정윤은 친척을 도와 집안 청소를 하고 애써 톤을 높여 대답도 해본다. 불편한 관계의 역학을 보여주려는 영화는 애초에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카메라가 정윤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 거리만큼이나 정윤의 감정도 절제되어있다. 엄마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지만 불평을 뱉지 않고 설거지를 하다 눈물 대신 얼굴에 튄 비눗물을 훔친다. 영화 내내 눌린 정서는 동생의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정윤이 다시 뒷모습으로, 그러나 가까이 더 부연 느낌 클로즈업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고개를 내민다. 그러나 정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다시 키를 누르고 들어간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또 다른 정윤들, 우리들은 이어진 섬 없이 표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