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전도연)는 헤어진 연인 동윤(하정우)을 만나기 위해 경마장으로 향한다. 몇 년 전 돈을 빌렸지만 갚지않은 옛 연인은 천하태평한 성격으로, 오랜만에 조우한 희수를 반가워하며 아는 지인들을 만나러 다닌다. 맨 처음 그를 찾아간 것은 희수였을지라도 동윤과 동윤이 아는 여자들이 즐비한 그 길 위의 동행은 어쩐지 그녀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일부러, 혹은 우연히 동윤과 마주하는 그 지인들과 동윤 간의 반가운 대화장면마다 떨떠름한 표정의 희수는 화면 중앙에 덩그러니 서있다. 동윤이 빚을 갚는답시고 지인들에게 소개하는 희수의 얼굴은 누군가에겐 무관심, 누군가에겐 못마땅한 존재로 비춰지고 그렇게 오롯한 화면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희수는 운전대를 잡고 있어도 발이 묶인 채 하루의 반나절을 보낸다. 그러다 희수와 동윤이 차에서 내리게 되고, 희수가 조금 다른 광경을 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바닥을 치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멋진 하루>는 희수와 동윤의 하룻동안의 동행을 다룬 로드무비이다. 펼쳐지는 광경에 대한 이 장르영화 안에서 주인공이 보는 광경은 그의 시선을 경유한 화면을 통해 관객의 것이 되고, 스크린을 사이에 둔 이러한 광경의 공유는 관객들과 캐릭터 간의 동행을 거쳐, 여행이라는 과정에 대한 동감 혹은 공감으로 전이한다. 여행을 하며 화면 안에 있는 인물은 대개 변화하고, 보통은 성장을 하는데 그래서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본다는 것은 길 위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변화하는 시선의 광경을 절감해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위치가 바뀌면 바라보는 것도 바뀌기 마련이니까. 희수가 차에 내리고 동윤의 사촌집에까지 방문하게 되었을 때, 옥탑방 옥상에 바글거리는 동호회 사람들 틈에서 희수는 처음으로 부담스러운 삼자대면의 자리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제껏 동행하는 길에도 희수와 동윤의 옛 시절을 추억할만한 요소 요소들을 지나쳐왔지만 그 때 옥상에서 지켜본 다른 두 남녀의 만남이 엔딩 크레딧에서 희수와 동윤의 첫만남으로 유일하게 오버랩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장소의 특징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한 누군가 덕분에 희수의 차는 견인되고 남은 반나절동안 희수와 동윤은 우리가 지켜보는 화면의 프레임 안으로 함께 걸어들어온다. 해가 떠있는 동안 희수가 보는 광경 안에 희수 스스로가 부재해있었다면, 해가 져갈 무렵부터 우리가 보는 광경 안에 희수와 그의 동행인이 비로소 함께 여행하는 순간들이 들이차고 <멋진 하루>는 그렇게 로드무비가 '되어간다'. 장르의 선택이 영화의 선언이기보다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로. 그래서 끝내 동윤의 동창이 건넨 돈을 받지 않아 350만원을 덜 채우게 된 희수의 하루에 대해 너무 낭만적인 개론만을 쏟아낸 리뷰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광경의 동화라는 로드무비의 대주제 아래 끝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즈음 같은 곳을 보기 시작한 두 동행자들을 하룻동안 지켜보는 일은 꽤 즐겁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