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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Dec 16. 2018

당신이 생각하는 영화 그 이상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별다른 배급사나 제작사의 로고 없이 영화는 곧바로 공허한 좀비의 동공에서부터 시작한다.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배경음악과 좀비를 향해 부르짖는 여자 주인공의 등장, 어디서 많이 보던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이다. 누구나 알법한 장르의 클라이맥스가 끝나고 이어지는 '컷' 소리. 긴박해보였던 상황은 사실 영화 촬영 현장이었으며 더 지켜보면 이 전제는 '좀비 영화 촬영장에 좀비가 나타난다'는 내용의 좀비 드라마로까지 확장된다. 38분 간의 '원 씬 원 컷'이라는 사명을 띤 좀비 채널의 개국 드라마를 다룬 이 영화에선 총 세 개의 현장이 등장한다. 단순하고 명료한 인트로와 다르게, '영화를 위한 영화' 혹은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사명을 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이토록 복잡다난한 맥락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영화는 명쾌한 웃음으로 화답한다.





'싸고 빠르고 퀄리티는 그럭저럭'. 재연 드라마의 감독인 '히구라시 타카유키'(하마츠 타카유키)는 자신의 캐치프라이즈에 맞게 적당한 연출과 임기응변으로 살아가고 있다. 바로 그 점때문에 좀비 채널의 개국 드라마를 맡게 될 적임자로 선정된다.



그리고 그에겐 독립을 한 달 앞둔 딸 '마오'(마오)가 있다. 같은 연출자지만 아버지와 다르게 현장에서의 마오는 '진짜 연기'와 '진짜 연출'이라는 진정성에 목을 멘다. 진짜배기, 진정성이라는 단어들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오의 눈에 아버지는 인정받지 못하고 실패한 직업인이다. 아니나 다를까, 리허설 때부터 히구라시 감독은 배우와 제작사의 오더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그럼에도 어색하게 짓는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하고 넘겨보려고 하지만 모든 게 순탄하지 않다.



촬영 디데이, 가족들과 제작사,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모두 모인 현장이 펼쳐지고 이들은 예상치 못한 실수와 변수와 마주친다. 촬영장에 못 오게된 배우들을 대신해 고등학교 연극부 출신인 히구라시 감독과 전직 배우이자 감독의 와이프인 '히구라시 하루미'(슈하마 하루미)가 직접 감독 역할과 분장사 역할로 분하며 합세한다. 촬영과 함께 시작된 방송은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슛이 들어간 이상 카메라를 절대 멈춰선 안 된다는 전제 하에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실감나는 감독의 분노 연기, 연기는 커녕 술을 마시고 어디론가 사라진 좀비 역할 배우의 공백. 변수로 인해 생긴 틈은 연기자들의 대사를 이어가는 사이 사이에 들어서는 어색한 공기라던가, 건물의 구조 상 동굴처럼 울리는 대사의 메아리로서 관객 머릿속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영화'에 대한 인식을 자꾸 파열시킨다. 괜히 취미를 물어보기도 하고, 그에 호응하는 호신술에 어색하게 리액션을 취하는 출연진을 보며 생기는 '쟤네들 대체 왜 저러지?' 라는 의문은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편안하게 관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에게는 불필요한 잉여의 영역이다. 그야말로 불편한 것이다. 실제로 영화 시작 후 38분만 참으시라는 리뷰가 속출했던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날것이 도래하는 순간은 그 퀄리티라도 건지기 위해 일사분란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고군분투와 맞물려 하나의 개그 코드, 웃음으로 작동한다. 대사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던 그 어색한 숨소리 이면에 사실은 술 취한 배우를 들쳐업고 어떻게든 장면을 만들어내는 감독, 스케치북에 진행상황을 적어 전달하며 발로 뛰는 현장이 있었다는 반전은 관객에게 영화 한 편이 그제서야 완성되는 안도를 안겨주기도 한다. 특히 이 리얼을 위한 연출과 실제 리얼의 간극은 편집, 즉 영화 촬영장 바깥의 인공적인 짜임새와 조정이 없는 상태라는 데서 더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틈은 울림과 분위기 외에도 그 자체로 충격이 된다. 이 충격으로 말미암아 이제껏 가식의 상징이었던 안약이 없어도 진짜 눈물이 나오고, 가래침 혹은 구토, 뒤집어쓴 가짜 피가 실제 땀과 뒤섞일 때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기적을 보기도 한다. 사실 이 충격은 영화 바깥에서 천천히 레이어를 쌓아올리며 숙성된(?) 것들이다.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한 배우, 하라는 연기는 안 하고 불륜을 저지르는 커플, 소속사를 핑계로 힘들고 어려운 연기는 하지 않으려는 아이돌 출신 여자 주인공, 영화 설정에 대해 납득할 때까지 태클을 거는  남자 주인공 등에게 감독은 꾹 참고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참으면 복이 있나니, 그가 참으면 참을수록 영화 안에서의 폭발은 배가가 된다.



히구라시 감독은 방송이 시작된 후 배역에 몰입하고 줄거리가 진행될 수록 영화 안과 밖을 넘나들며 '영화'에 몰입한다. 역시 작품보다 방송이 먼저이므로, 핵심 장면일 수도 있는 마지막 씬을 다른 무언가로 대체하자는 제작자의 말에 화를 내며 분출할 수 있는 에너지는 가정사와 일터, 영화의 안과 밖을 아우르는 공간에서 한 아버지로, 감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진정성'을 내포한다. '딸이 지켜보고 있다' 내지는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전제는 다소 안정된 완성형으로 돌아오지만 그 원을 그리는 동안 그치지 않는 에너지로 쌓아올린 레이어를 온몸으로 겪고 난 뒤엔 영화 현장을 직접 아는 이, 모르는 이 모두가 한 편의 영화를 직접 완성시킨 생동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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