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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an 04. 2019

외로운 사람들이 대화하는 방식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중년 남자가 암선고를 받는다. 보건소에서 큰 병원을 가란 얘길 들었지만 선뜻 믿고 싶지 않다. 입원하는 대신에 그는 아들을 불러 영화 일을 하는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에게 영화 한 편을 찍자고 제안한다. <사제 폭탄을 삼킨 사나이>라는 제목의 슬랩스틱 코미디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고까지 한다. 셋이 합세하여 서울까지 로케이션을 갔고, 그렇게 완성시킨 영화가 개봉을 한다. 크리스마스날 남자가 직접 대관한 극장에서 그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 혹은 친인척 소수가 모여 조촐하게 관객석을 지킨다. 이내 영화가 시작한다. 같은 시각, 입원해있는 남자는 자신의 완성작을 볼 수 없는 병원에서 창밖으로 터지는 불꽃놀이를 구경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흑백의 영상으로 이 모든 과정을 담는다. 중년남성 모금산(기주봉), 그의 아들 스데반(오정환), 아들의 애인 예원(고원희)이 금산의 주거지이자 스데반의 고향인 '금산'에 모여 영화를 찍으러 '서울'까지 이동하는 기간 동안에 아들은 아버지의 암 선고를 전해듣고, 그의 숨겨진 친모가 갑자기 밝혀지는 등 셋이 함께 영화 속 흔한 클리셰들을 연속으로 겪게 된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특별한 지점은 바로 이 흔한 설정을 흔하지 않은 요소들의 상호작용으로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모금산으로부터 출발하여 스데반이 이어받는 지역 '금산'은 이 흑백 속에서 인물의 얼굴과 그들을 둘러싼 소품, 빛을 비롯한 영화 속 '환경'들로서 밝고 어두움의 명도로만 드러난다. 영화 초반 암을 선고 받은 이후 주인공 모금산의 일상들, 그리고 영화가 나열하는 그의 동선이 닿는 장소들은 마냥 어둠 속에 잠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흰색과 검은 색, 그리고 그 중간의 회색 어딘가의 스펙트럼을 정갈하게 오고 간다. 



그가 종종 찾는 다방, 운동 삼아 다니는 동네 수영장, 저녁에 혼자 맥주를 마시러 들르는 호프집 등 이곳에서 종종 마주치는 얼굴들은 금산의 안부를 물어온다. 금산이 자신의 인사를 받아줄 때까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고등학생부터, 손사레치는데도 혼자 사는 금산의 집에 반찬을 들이미는 동생네 가족, 운동 차 다니는 수영장에서 모금산에게 말을 거는 오지랖 넓은 은행원까지. 혼자 있는 집에서 나오면 제법 아는 척을 해주는 얼굴들을 금산은 무심하게 대한다. 오히려 다가오는 그들에게 일없다며 손사레를 치고는 집으로 들어와 밤마다 자기 전에 주먹을 쥐고 배게를 꽝꽝 내리친다. 무표정한 그가 하루 중 유일하게 감정을 내비치는 때이기도 하다. 내가 암이라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소식을 속에 안은 그에게 아들이 찾아오고 그때부터 지역 금산의 맥락은 조금 달라지게 된다. 모금산의 금산은 스데반의 금산이 된다. 





스데반에게 금산은 자신의 고향이자 기억 속 장소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지 않은 어떤 곳으로 상정된다. 스데반과 예원은 금산이 한 번 다녀갔던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실 이 곳에서 금산과 그의 부인이 맞선으로 처음 만난 자리였음을 얘기한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옛날에 개발되기 전 근처 무덤가를 놀이터 삼아 놀곤 했다는 회상을 하기도 한다. 쪼그려 앉아 비비탄 총알을 하나 둘 줍기 시작하는 그들의 등 뒤로 높이 선 아파트가 훤히 보인다. 



금산에게 현재진행형의 일터이자 주거지였던 그 곳은 스데반에게 어떤 연륜과 이미 잊혀져 가물가물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영화를 본격적으로 찍기 전, 금산의 집에서 스데반은 아버지가 영화에 문외한일 것이라며 애써 그의 시나리오를 무시한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경위를 묻는 예원의 질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로 '찰리 채플린', '알랑 들롱', '잉그리드 버그먼' 등 모금산의 젊은 시절 외국 배우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 그대로를 줄줄이 읊는 그의 대답에선 지나온 인생의 전성기가 묻어있다.





금산이 밤마다 배게를 내리치는 대신 혼자서 써내려간 시나리오처럼 영화 속 다른 인물들도 상대방에게 말을 걸고, 걸려고 하고, 걸려다 실패하는 외로움을 가지고 있다. 아들 스데반과, 금산이 수영장에서 만나는 젊은 은행 직원 '자영'(전여빈)이 그렇다.



아버지 금산과 대화할 때 스데반은 대화라기보다 일방적인 화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도 아버지와 소통하고 있다는 상황만큼은 분명히 주고 받는다. 그러나 그가 애인과 함께 있을 때 어느 배우가 담배를 어떻게 피웠는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 함께 있는 장소에선 옛날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줄줄이 나열하는 모양새에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거나 혹은 자신의 대화를 듣고 있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보며 액션과 리액션을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다. 예원 또한 그녀의 이야기를 더 이상 묻지 않는 그에 대해 일정 부분 체념한 것처럼 보인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예원이 "말을 좀 순서대로 해봐"라고 대답한 순간처럼 여과없이 마음을 드러낸다는 말은 그만큼 허물이 없는 둘의 관계를 칭하는 동시에 서로에게 완전히 무관심해질 수 있는 자신만의 일방적 혼잣말을 일컫고 있기도 하다.





한편, 아버지 금산은 동네 수영장을 다니다 은행원 자영과 레일 너머로 인사를 나누게 된다. 금산의 제의로 같이 맥주 한 잔을 나누게 되는 자영은 영화 초반 금산에게 반찬을 들이미는 그의 제수와 동생 외에 그가 처음으로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한 사람이다. 자영은 어딘가 불편하고 이상한 캐릭터였다. 아니, 불편하고 이상한 판타지였다. 안면식만 있는 중년 남성이 술을 마시자는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고 마치 데이트를 하듯 그와 이 주제, 저 주제를 나누다 집에 바래다주는 길에 설레어하는 웃음을 지어보이는 '젊은 여성'의 상은 실제의 중년 남성이 잘 알지 못하는 여성에게 던지는 추파만큼이나 영화에서의 현실과 동떨어진 재현이었다. 보는 내내 불쾌했다. 



아니나 다를까, 금산에게 그녀가 한 발자국 더 다가서려는 순간 금산은 그들 사이에 그어진 선을 알고 있다는 듯 한 걸음 물러난다. 그에게 어떤 자극제라도 되었는지 그날 밤부터 금산은 글을 써내려갔다는 것에서 자영은 한 남자에게 영감을 건네주고 사라지는 인물이려니 싶었다. 그러나 카메라는 금산이 없는 금산에서 그를 종종 그리워하고 영화관에 초대받아 완성된 영화를 보는 그녀를 비추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는 어떤 수동체가 아니라 영화를 보고 기뻐하는 온전한 관객으로서의 한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누군가의 판타지와도 같은 캐릭터 앞에서 내 개인의 경험이 무력해지고 무기력해지는 순간들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함을 안다. 그렇기에 영화가 자영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편으론 스스로가 안전해짐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다보니 영화 속에서 진행되는 서사가 한편으론 캐릭터 '자영'에 대한 오해를 푸는 개인적인 과정이 되어버렸다.)



예원 앞에 선 스데반처럼, 호프집에서 자영은 금산과 대화한다기 보다 말을 쏟아내고 내뱉는 것처럼 보였다. 맥락이 없는 맞장구를 친다던가, 자신이 알고 있는 단선적인 지식들을 말하는 모습들은 마치 대화를 제대로 나눠본 것이 오래된 마냥 대화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사람같아 보였다. 그러나 자영이 그 외로움을 안고서 결국 영화로 충만한 관객으로 변모한 것처럼 스데반 또한 예원과의 관계를 마무리지으면서 그에게 혼잣말하듯 내뱉던 말들에 대한 대답을 듣거나 그들의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 앞에서 악수를 나눈다. 서로를 향한 외로운 사람들의 대화는 영화와 함께 완전해지고 완성에 가까워진다. 모금산이 자신이 만든 영화에서 '미스터 모'로 분하며 뭔가를 표현하고 드러낸다는 지점에서 영화 속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이 외로운 사람들이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사제 폭탄을 삼킨 사나이>는 외로워하는 이들의 대화 그 안에 문법처럼 존재하는 영화다. 젊은 시절 배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는 모금산의 연기는 어떤 장면에선 굉장히 탁월하기도 해서 배우 기주봉의 것과 혼동되어 보이기도 한다. 어딘가 녹슬어있어야 할 중년 남성의 움직임은 배우 기주봉의 매끄럽고 유연한 몸에 의해 묻혀있다. 그러나 그런 간극을 생각할 새도 없이 흑백의 스펙트럼을 오고 갔던 모금산의 일상 속 공간이 재조명 되면서 내내 무심했던 금산의 얼굴에 연기로나마 미소 혹은 찡그림이 도래한다. 다시 돌아가, 아들이 아버지의 암소식을 전해듣고 그의 친모가 밝혀지는 현장 당일에 서울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바삐 돌아다니며 찍은 장면은 마치 쫓고 쫓기는 그들의 대화처럼 묘한 기시감을 주기도 한다. 



뱃속에 있는 폭탄을 터뜨리기 위해 스위치를 번번히 누르고 마는 캐릭터는 마치 자기 전마다 울분으로 배게를 내리쳤던 금산과 흡사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터뜨리기에 실패하고 끝내는 불발되는 폭탄을 안고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영화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듯 영화를 보고 난 그의 지인들은 모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상영날 저녁, 정작 영화의 주인공인 금산은 자신의 완성본을 보지 못한 채 병원에 입원해있다. 병실 안의 환자들은 잠들어있는 와중에 갑자기 창밖에서 불꽃놀이가 터진다. 흑백영화에서 밝은 색은 더 하얗고 밝게, 어두운 색은 더 검고 어둡게 그려지는 특징은 가장 어두웠던 금산의 얼굴이 창밖 불꽂으로 인해 가장 밝게 그려지는 순간을 자아낸다. 크리스마스이자, 아내의 기일이기도 하며 영화의 개봉날이기도 한 그 날 금산은 불발된 폭탄을 안고서라도 다시 인생을 살아낼 것만 같다. 그에게 건네는 인사 뒤로 이어지는 대화처럼 인생은 서툴어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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