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본 영화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지 Jan 08. 2019

이제 블록버스터가 무슨 소용이랴

영화 <PMC : 더 벙커>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때깔이 좋다"고 한다. 영화의 화려한 캐스팅에, 거대한 스케일에 이 말은 심심치않게 적용된다. '척 보기에 괜찮아 보인다'는 말은 언제부턴가 '돈을 많이 들인 것 같아 보인다'는 영화로 그 뜻이 옮겨간 듯 하기도 하다. 돈을 많이 들인 영화라는 주제 아래엔 그 금액을 듣고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많이 들었단 말이야?"라며 반문하게 만드는 영화와 스케일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영화가 있다. 하정우와 이선균이라는 두 배우의 출연과 남한과 북한이라는 맥락을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는 소재로서의 액션, 여기에 CG기술까지 더해 <PMC : 더 벙커>(이하 <PMC>)는 그 후자에 가까운 영화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영화 실정에서 돈을 많이 들였다는 스케일은 곧 영화의 실속, 관객의 마음이 동할 정도의 정교한 만듦새와 안타깝게도 직결하지 못하는 것 같다. 



2018년 극장에서의 마지막 관람으로 이 영화를 택했고, 필자가 자리한 31일 오후에 극장은 가족 단위의 관객들로 인한 만석이었지만 영화에 대한 호평이 생각보다 좀처럼 들려오지 않았던 연말처럼 올 한 해의 시작으로 이 나라 영화의 앞날을 걱정하게 만드는 글을 쓰게 될 줄은 사실 몰랐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024년이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영화는 한국과 북한, 미국 삼국의 외교적 갈등과 냉전상황을 뉴스씰과 관련자들의 인터뷰영상으로써 역동적으로 나열한다. 이후 미국 대선이 실시되고 한반도에서의 일촉즉발인 상황에서 CIA는 대선주자의 의뢰를 받아 글로벌 군사기업 PMC 블랙리저드와 손을 잡게 된다. 



불법체류자들로 구성된 이 기업의 캡틴 에이헵(하정우)은 그의 크루들과 함께 DMZ 지하 비밀벙커에 내려가 그들의 타깃 인물을 잡을 것을 기다리던 와중에, 북한의 실세인 킹을 보고 작전을 급하게 변경한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킹에게 걸린 거액의 현상금으로 지하 생활을 접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쉽게 그들의 손에  킹이 생포되고 에이헵은 그 자리에서 킹의 주치의인 윤지의(이선균)을 만난다. 그리고 중국이 고용한 또다른 군사기업에 의해 블랙 리저드가 포위되고 CIA의 꼬리 자르기에 의해 그들은 위기에 빠진다.





<PMC>의 화려한 액션과 그를 좇는 카메라를 말하기 이전에, 기존 한국영화에서 쉬이 쓰여왔던 전형적인 인물상을 새롭게 쓰고자한 시도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북한, 혹은 분단상황을 다룬 한국의 극영화가 스파이-첩보물 장르에서 점차적으로 기존의 경찰-조폭영화가 다뤄왔던 '버디무비'의 장르를 이어받아 남한의 남성과 북한 남성 간의 '우애'를 다룬 스토리라인으로 대체되었고 그들이 대세였음을 이제는 모두가 알 것이다. 육체가 강조되는 북한 남성, 온전한 시민권을 가진 남한 남성이 서로가 가진 결핍에 대해 손을 뻗고 동맹을, 나아가 형제간의 정을 그려내는 모습은 매년 배우만 바꿔가며 동어반복의 영화들로 양산되기도 했다. <PMC>는 이 화합의 장을 미국이라는 변수를 좀 더 직접적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의사라는 엘리트 직업의 북한 남성과 미국 불법체류자이자 강한 신체의 소유자인 남한 남성의 상황을 통해 이제까지와 정반대의 시도를 꾀해본다. 





또한 영화 초반에 제시되는 자료 화면들이 방송화면이라는 상황 하에 공식적인 공용언어로서의 영어를 구사하고 있다면 이후 제시되는 영화의 인물들, 블랙리저드의 멤버들은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그들의 배경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악센트와 문법을 보여준다. 특히 에이헵이 CIA의 요원 맥(제니퍼 엘)과 접촉하며 현상황에 대한 파악, 앞으로의 흐름과 협상까지 단번에 이끌어내는 리듬감 속엔 그가 서있는 공간을 십분 활용한 인물의 동선 외에도 배우 하정우가 연기해내는 생활영어에 대한 쾌감, 그의 연기에 대한 재확인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에이헵이 맥과의 협상 끝에 킹이 자리한 테이블로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부터 '공간을 누비며 영화적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전제는 영화 내내 고수된다. 에이헵이라는 한 인물이 다중의 시점을 통해 상황과 장소를 통제한다는 전제는 비트감있는 음악과 핸드헬드의 카메라로 증폭시키고자하는 의지가 보인다. 문제는 이 장소활용의 시점이 단일하고 단선적인 플롯 안에서 맴돌기만 하다 끝난다는 것이다. 





<PMC>의 장소 활용은 감독 김병우와 배우 하정우의 첫번째 합작이자 전작인 <더 테러 라이브>를 연상시킨다. 라디오 뉴스를 진행하던 아나운서 '윤영주'가 폭탄 제보와 관련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고, 라디오 녹음실에서 TV 뉴스의 스튜디오로, 폭파된 방송국의 참변으로 상황은 장소를 거듭해나가며 악화되고 심화한다. 건물 폭파와 더불어 사회 고발이라는 이면이 드러나는 과정, 그리고 실시간으로 수화기 너머 범인과 전화를 주고 받는 아나운서와 스태프의 리액션, 이 상황을 중재하러 온 협상가와 정치가의 제스처를 통해 상황을 추리하게끔 유도하는 입체적 캐릭터들은 관객이 그 상황에 직접적으로 연루하게 만든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의 방송국 건물 안 상황 보도가 <PMC>에서의 지하 벙커의 복잡한 도면과 화상 채팅으로 변모할 때 <더 테러 라이브>처럼 제한된 공간 안에서의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들의 생동이 가능할지가 이번 영화에 주목되는 포인트 중 하나였을 것이다. <PMC>에서는 포위되고 그 안에서조차 동료의 배신을 한 차례 겪은 에이헵이 의족을 다친 상태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공간적 한계를 설정한 뒤에 도면 위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적진에서의 상황으로 관객의 시선을 돌리게끔 유도한다. 





마치 게이머와 같은 하정우의 자리를 변호하듯 그의 동료들이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1인칭 시점의 총격전 장면이나 그들의 좇으며 전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동그란 카메라 등으로 대체된다. 거기에 벙커가 한차례 무너지면서 연결된 의사 윤지의와의 화상채팅을 추가하면서 총소리, 발소리, 고함은 상황을 전달하고 전달받는 급박한 모양새의 대화와 뒤섞이고 하정우의 고정된 장소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나열되는 레이어들은 마치 플롯이 정교해보이는 듯한 착시효과까지 낳으려 애를 쓴다.





안타깝다. 여러 개의 레이어를 쌓은 연출 안에서 상황은 당장에 역동적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결국 형제애 나아가 가족애로까지 수렴되는 단조로운 이야기선은 아무리 액션으로 카메라를 흔들어재낀들 지루함을 피해갈 수 없다는 교훈만 낳은 것 같다. 



크루들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며 가족과 집에 대한 귀환을 열망하는 것과 동시에 화상으로 서로의 개인사까지 주고 받으며 생존이라는 명분 하에 피를 나눈 형제보다 진해진 의사 윤지의와 에이헵의 우정이 드러난다. 핸드폰 바탕화면 속 가족사진, 나아가 모든 고난을 끝내고 따뜻한 집으로부터 도착한 아기의 이미지는 모 대기업 스마트폰의 광고 영상을 연상시키기가지 한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건 무작정한 신파의 이미지들이 아닌 방송국이라는 장소와 수화기 너머의 진범과의 통화라는 청각적 장치 등 영화를 추리하고 도출해내게끔 하는 제한된 조건 그 자체, 거기서 비롯한 연출의 정교함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영화의 원제를 완성하기 위해 배우 하정우가 해내는 액션은 언제부턴가 한국의 상업 영화 모두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정서에 대한 호소에 맞물려 우스꽝스럽게까지 보인다. 설정 상 뒤바뀐 듯 보였던 북한남성과 남한남성의 상황은 그들의 완전무결한 형제애를 통해 다시 제자리 걸음을 한다. 완전한 가정과 그에 대한 가족애, 어디서 본 듯한 남자 간의 우정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 영화 전체에 대한 실패인 것 마냥, 설명적이기 짝이 없는 영화의 재현은 공용 언어로서의 영어로 이뤄진 뉴스씰 이상도 이하도 이뤄내지 못한다. 이 정도 블록버스터를 만들어서 무엇하겠냐는 힘없는 푸념은 다른 피부색을 지니고 있어도 모두가 앵무새마냥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에서 오며 이대로 괜찮겠냐는 영화 시장에 대한 절망에서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로운 사람들이 대화하는 방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