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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an 16. 2019

더 이상 이 남자들을 소비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영화 <마약왕>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관에 간다. 티켓의 값을 지불하고 영화를 본다. 좌석값이 오르고, 영화를 볼 시간을 내기가 힘들어지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킬링타임을 향유하고 싶은 관객들은 값어치 그 이상의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하는 종류의 상업영화를 원하기도 한다. 한 영화에 들이는 관객의 시간이 정기적인 취미이든 비정기적인 여유이든 간에 1시간에서 길게는 3시간까지의 러닝타임이 그만큼 소비 가치를 행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곧 '영화의 가성비'라는 말까지 유행하게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대형 멀티 플렉스로 대표되는 지금의 한국 영화관에선 국내 블록버스터에 따르는 관객수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다. 지난 여름방학 기간과, 추석 시기에 잇다른 대형 영화들의 흥행참패 이후 2018년 연말 개봉한 <스윙키즈>, <PMC : 더 벙커>, 그리고 <마약왕> 모두 부진한 관객수를 기록하며 '성공'은 커녕 가성비마저 노릴 수 없는 현실이 놓여졌다.





2018년 말에 개봉한 <스윙키즈>, <PMC : 더 벙커>, <마약왕> 이 셋의 공통점을 꼽자면 첫번째로는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영화가 상영되는 현재 시점과의 시간적 간극을 설명적인 그림 나열과 나레이션, 즉 뉴스화면(혹은 그와 같은 영상)으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밀수꾼 이두삼(송강호)이라는 남자가 마약밀수, 더불어 그 수출까지 손을 대고, 당시 한국 근대사의 흥망을 함께했다는 실화는 곧 신화가 된다. 물론 설명적으로. 아주 쉽게. 시대에 대한 거리두기 없이. 문제는 우리가 언제까지 실화 핑계를 대가며 시대를 답습하는 시대의식의 부재를 영화화할 것이냐에 있다. 





송강호의 첫등장에 뒤이어 남자들이 나온다. 남자들만 나온다. 주구장창. '이두삼'이라는 인물이 사건의 전개를 거듭할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송강호의 여러 가면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양상은 더 이상 신선하지가 않다. 대배우의 얼굴 하나만을 박아놓은 <마약왕>의 포스터가 일전에 화제가 됐더랬다. 흥행의 보증수표이기도 한 그 얼굴이 어디 가겠는가. 그러나 송강호의 자가복제와도 같은 남성 배우들의 혹은 송강호 그 자신의 천편일률적인 표정과 캐릭터 설정이나, 그들의 입을 경유한 사투리, 욕설, 남성적인 농담들이 영화 속 시대상을 다루는 서사를 '리얼'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눙쳐버린다. 



<마약왕>이 그리는 1970년대 한국의 모습은 이두삼이라는 인물과 더불어 시스템과 시스템 간의 차고 넘치는 빈틈, 허술한 균열과 명분조차 없는 공란에서부터 시작한다. 애초에 이두삼이 몸담고 있던 마약 밀수업에 대해 법원 관련 부처가 없었던 것처럼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빽', 오고 가는 '정'으로 치환될만한 회유와 그에 걸맞는 돈 등 이두삼의 권력과 그에 대한 욕심은 시대의 빈틈을 먹고 자란다. 시대의 빈틈은 곧 시대의 이면이며 이때 이두삼이라는 인물 한 명, 송강호의 얼굴 하나는 이미 관객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로 대체되기에 무력하고 단선적이다. 이두삼이 밀수업을 시작하고, 마약 제조를 배우며 그것들을 수출하는 등 삶의 굴곡을 지나올 때마다 마주치는 다른 인물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독재 대통령이 살아있던 그 때 그 시절과 더불어 짓는 살벌한 표정들은 현재의 관객들에게 더 이상 무서울 대상이 아니다. 단순한 소재의 문제일까? 질문 이전에 시대의 도상으로서 소재를 진부하게 나열하는 그 시선의 주체를 의심해보고 싶다. 이제까지 '알탕영화'로 치부되어온 한국영화들이 그랬듯이. 




 

<마약왕>에는 두 여성 배우가 나온다. 공교롭게도, 김소진이 남편다운 남편을 잃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게 하고, 배두나의 뺨을 치거나 머리 '끄댕이'를 잡히게 하는 설정이 줄지어 등장한다. 두 배우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붙는 장면은 다름 아닌 이두삼을 두고 부인 성숙경(김소진)과 첩 김정아(배두나)이라는 관계로 대치했을 때이다. 남성 캐릭터들의 리얼을 빙자한 얼굴을 시대의 이면으로서 대체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이 두 여성 캐릭터를 쓰는 맥락은 기존의 여성혐오적인 이미지에 대한 단순한 차용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순한 현모양처의 전담이 아니라 인간 이두삼을 사랑하고, 사랑해서 그를 위해 뒷바라지한다는 성숙경의 선택이나 김정아가 이두삼과의 연애를 두고 돈과 권력이 오가는 관계임을 끊임없이 가시화하며 냉정한 거리두기의 위치를 점한 것은 캐릭터의 무시할 수 없는 지점이다. 그렇게에, 오히려 연기력이 캐릭터를 살린다는 호평은 <마약왕>에서만큼은 저 두 배우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라 판단된다. 이두삼이 본격적인 권력을 쥐자마자 그의 앞에 트로피처럼 떨어진 로비스트 김정아의 화려한 전신샷이나, '성내는 아내', '바가지 긁는 아내'로 일정부분 희화화되는 성숙경의 연기샷은 앞서 언급한 남성 배우들의 얼굴과 더불어 시대를 재현하다 시대를 답습한 퇴보에 가깝다. 김정아의 대사를 빌려 "불구경보다 재미있는 미친년 구경"밖에 되질 않는다.





티켓값은, 가성비라는 유행으로 치환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특정 맥락에 대한 영화를 소비하지 않겠다는 사적인 다짐 내지 공식적인 선언으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더 이상 재밌질 않아서' 관객수가 줄어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실패는 그동안 비판 받아온 남성 중심의 영화, 그것으로 봉합되는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폭력적인 재현 등 '영화가 안 봐도 비디오'라는 진담을 성립하게끔하는 이미지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마약왕>을 결국 봤고, 할 말이 없어진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영화 티켓을 사지 않음으로써 오는 의견의 피력만큼이나 영화의 장면들을 밝혀 이를 기록하고 담론화하는 비평의 과정 또한 유효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 이제 이런 영화를 소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영화의 특정 이면들을 지적하고 이를 더불어 바로잡으며 더 나은 소비로 나아가고자 하는 힘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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