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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an 19. 2019

그 테이블보다 한 뼘 더

영화 <더 테이블>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간은 머무르고 시간은 흘러간다. 서울의 어느 한 카페, 하룻동안 한 테이블에 머무르며 앉았다 간 사람들의 대화를 지켜듣는다는 상상의 전면에 4인의 여배우들이 들어선다. 캐스팅만으로 흥미가 돋았던 김종관 감독의 장편영화 <더 테이블>의 이야기이다. 





정오부터 늦은 밤까지 꼬박 하루를 채우는 네 가지 대화 모두 어딘가 성치 않다. 오전 열 한시에는 한 때 연인이었던 배우 유진(정유미)과 창석(정준원)이 만나 뜬금없이 연예계 뒷이야기를 나누고, 오후 두 시반 경진(정은채)와 민호(전성우)는 오랜만에 재회했음에도 근황의 앞뒤가 영 맞지 않다. 오후 다섯 시엔 나이차가 꽤 나는 은희(한예리)와 숙자(김혜옥)가 사기결혼 전 계획을 위해 자리하며 비가 오는 저녁 아홉 시엔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이 운철(연우진)에게 불륜을 제안한다. 테이블 위로 쏟아지는 빛의 크기가 달라지고 그림자가 기울어질수록 대화에는 하나같이 당혹스러운 순간이 존재한다. 끝내 가면을 벗으며 가식적이고 자연스럽지 못하도록 '훅 치고' 들어오는 사건으로 들어선다. 





가는 말과 오는 말이 결코 곱지 않은 상황. 그들의 '오버 더 쇼더' 샷엔 동등한 위치의 액션과 리액션을 찾아보기 힘들다. 반대편의 상대방이 쉽게 무례해지거나(정유미와 정은채) 주인공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대화의 물꼬를 틀고(한예리), 어렵사리 건넨 제안을 거절하는 상대를 지켜보는 표정(임수정)을 클로즈업한다.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은 카메라 가까이에 찍힌 여자 배우들의 난처한 표정이며 내몰게 하는 것은 그들의 말을 단선적인 리액션으로밖에 그치게 하는 상대방의 액션이다. 





한 시퀀스만은 예외이다. 해질녘 은희의 사기결혼을 위해 숙자가 동참하는 자리인 줄로만 알았던 그 장면은 우연히 서로 죽은 엄마와 딸의 사연을 공유하며 예상치 못하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둘러쳐진다. 순간이지만 진심으로 딸과 엄마라는 호칭을 통해 동등하게 설 수 있었던 그들과 달리 연예계 찌라시를 묻는 전 남자친구, 자신의 근황 얘기만을 털어놓다 보고 싶었다는 말로 끝맺어버리는 하룻밤 상대, 불륜을 제안하면서도 미련이 남은 듯 행동하는 남자를 앞에 두고 선 나머지 여성들은 자신의 액션을 응수해줄 상대 없이 '반응으로서의 반응'만으로, 당황스럽게 짝이 없는 표정으로 전시되고 만다. 잔여물처럼 남아있는 일련의 찜찜한 감정들만 맴돌다 사라지는 그 '테이블'들에 이름 석자만으로 기대를 일으키는 배우들을 앉혀놓고 아쉬운 연출이 아닐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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