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본 영화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흰지 Jan 19. 2019

인심만으론 어려운 역사 쓰기

영화 <말모이>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40년대 경성, 내선일체라는 구호 하에 한국인에 대한 일제의 착취가 날로 심해진다. 극장 일을 하던 김판수(유해진)는 직장에서 해고된 후 돈이 필요해 기차역을 나오던 류정환(윤계상)의 가방을 훔치게 된다. 그러다 판수의 형무소 동지이자 정환의 동료인 김홍파(조갑윤)를 통해 '조선어학회'의 존재를 알게 된다. 한글과 한국말에 대한 단속이 본격화된 와중에 감시를 피해 우리말 사전을 만들던 학회 사람들과 어울리던 판수는 점차 글을 배우고 글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가며 그들의 작업에 동참한다.





<말모이>는 한국의 기존 역사 영화가 그러했듯 까막눈이었다가 글을 배우고 역사 의식에 대해 계몽 당하는 김판수의 입장에서 쓰여진다. 일단 대중이 보는 상업 영화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이상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들의 시선부터 다시 가르쳐보고자 하는 태도는 인터넷 강의라는 매체를 빌려 '역사 강의'로서 영화 홍보를 하는 마케팅과도 관련이 깊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밑바닥부터 계몽의 행보를 따라가다보니 역경과 희생은 꼭 따르는 법이며, 이에 역사 영화는 역시 '눈물 짜내기'라며 자조까지 하는 분위기 속에 왜 우리는 이렇게 납작한 태도만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가 질문하고 싶다.





대표적인 한 인물의 이름이나 얼굴을 떼어다 미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룰 것인지, 역사에 묻혔으나 다시 들출 만한 가치를 지닌 발자취를 다룰 것인지에 대해 <말모이>는 우리가 주변부라고 가리켜왔던 소재를 들여온다. 국어학자 주시경 사후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사전 편찬에 기울인 노력 속에 어느 한 사람의 이름만으로 수렴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플롯 외에도, 학회의 주요 활동지역인 경성에서 그들이 사전에 다루고자 했던 '지역 사투리'가 가진 존재감은 조금 특이하다. 기존의 한국 영화에서 웃음이나 희화화의 코드 중 하나였던 사투리가 학문적인 위치의 연구 대상으로 대두된 이상 자막까지 붙인 제주 토박이의 사투리나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국어 선생님들 간의 대화는 쉽게 코미디로 작용하지 않는다. 학문이라는 이름 하에 위협받지 않고 안전해질 수 있었다는 그 위치가 엘리트 중심적인 한계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그동안 주변부를 주변부라 칭하며 대해온 비하의 태도를 생각하면 다시 돌아볼만한 재현임에는 틀림이 없다.





'눈물의 말모이, 웃음의 말모이'라더니 그 말이 맞긴 맞더라. 유머에 특화된 유해진 배우의 호흡이 영화의 감정선 전반을 주도하는 건 탁월하지 않더라도 무사히 관객의 정서에 안착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러닝타임 동안 겪는 감정의 기복은 그 폭이 넓어질수록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는 충만감은 들게 할지라도 역사의 신파로부터 굳이 돌아가지 않으려는 행보는 역사 소재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꿰뚫기 어렵게 만든다. 이 한계를 극복하려는지 관객과 영화 사이에 무언가 하나 더 끼어든다. '설명하는 연출'. 이 설명은 재현을 앞선다. 판수의 아들이 영화관에서 보는 선동 영화의 일부가 직접 삽입된 장면이나 엔딩 이후 보여지는 우리말 사전의 원고 실물 영상은 '이왕이면 좋은 내용 알기도 쉽게'라는 스토리에 대한 재확인이자 영화가 미처 탐구하지 못한 역사 본질에 대한 여분을 채우려는 수단으로도 보여진다. 





누가 봐도 귀여운 판수의 딸 순이 또한 녹록치 않다. 판수와 그의 큰아들이 잠든 순이를 다독이면서 아이만은 보호하고자 하는 남성-가장의 어깨는 역사 속 고행으로 대체된다. 전과자인 판수의 영입을 반대하던 정환이 번번히 학회 사람들의 웃음과 인심으로 넘어가야만 했던 것처럼, 우리는 사실 가족 영화를 보러 온 것이 아님에도 민족이라는 이름의 역사는 인심이 동하는 정서를 통해 '가족사적 축선'으로 너무 쉽게 교체된다. '우리'라는 낱말이 이 얼마나 한국적인가를 설명하는 영화에서 '우리'라는 개념으로 퉁쳐질 수 있는 얼굴들은 제한적이다. 다소 안전한 형태의 역사쓰기는 사람 좋은 웃음과 마음 씀씀이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한계를 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창문을 열면 불어오는 바람처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