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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본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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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지 Jan 18. 2019

창문을 열면 불어오는 바람처럼

영화 <일일시호일>

***본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무살이 된 노리코(쿠로키 하루)는 그해 봄 옆집에 이사온 할머니 다케타(키키 키린)로부터 다도를 배우게 된다. 아직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그에게 다도는 처음부터 그리 매력적인 일은 아니었다. 손을 뻗고 발을 내딛을 때마다 하나 하나의 예법을 따라야 하고, 차를 한 모금 마실 때까지 뒷받침되는 준비를 여러 차례 해내야 한다.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에서 한없이 단순하지만 그 모든 규칙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없이 복잡한 이 작업에 대해 영화는 '배우는 자' 노리코의 시선을 따라간다. 더불어 고인이 된 배우의 유작으로서 키키 키린에 대한 마지막 인사를 써나간다.





노리코와 사촌 미치코(타베 미카코)이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 첫 시작으로 다케타는 찻수건을 잡는 방법부터 알려준다. 정확히 말해서 찻수건을 접었다, 폈다가 옷깃 속에 넣었다, 뺐다가 다시 등분을 나누어 접었다, 펴는 과정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한다. 말로만 들었을 땐 쉽게 따라할 수 있지 않나 싶어도 아니, 말로도 그 과정을 따라잡기가 어려워 손바닥만한 수건에 쩔쩔매는 둘의 표정을 보며 다케타가 웃는다. 볕이 드는 다다미방에서 두 여성은 배우고, 한 여성은 가르쳐주는 그 장면은 카메라를 눈높이 혹은 눈높이보다 조금 아래에 두어 영화를 보는 시야가 다도 과정을 해나가는 한 사람만으로 가득 차게 한다. 더 아래에서 겸손해하거나 더 위에서 자만하는 일이 없는 무던한 시선으로 영화는 다도의 한 과정처럼 노리코 곁에 머문다.





배우는 과정은 여름을 지나 겨울에 당도한다. 여름 내 배운 만큼 조금은 익혔나 싶은 다도를 겨울엔 겨울의 예법을 통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눈으로 찻주전자를 보고 귀로 선생의 가르침을 듣다 손이 이제 익었을 때즈음 다시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과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겨울이 지나, 1년 사계절을 다 돌고 오면 좀 더 능숙해질까. 해가 갈수록 인생에 얻고 잃음을 반복하던 노리코는 새로운 수강생들과 어울리거나 헤어지며 때론 행복을 때론 좌절을 느낀다. 그가 종사하는 직업이나 사귀고 있는 애인의 존재만큼이나 다도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실력만이 순탄하게 늘어가는 일 없이 다도는 어떨 땐 비교 대상과 자책으로, 어떨 땐 그럼에도 삶의 위안과 깨달음으로 순환한다. 





결국은 사람이 행하는 일이다. 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인생사를 두고 영화 내내 카메라가 인물의 발끝부터 머리끝 사이를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노리코나 노리코가 배우는 다도를 보며 관객은 자신의 인생사에 한 번 더 이입시키고 몰입하게 된다. 다도의 형식 그 너머 주변에 대한 관찰로 인한 상상, 삶이 불러일으킨 환상이 중간중간 인서트로 삽입되어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지난하지 않은 순환의 과정은 타성이 아니라 그 자체로 분명한 방향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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